* 성찰배경: ‘세존염화(世尊拈花)’란 공안의 유래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2권 가운데 ‘세존께서 가섭에게 정법(正法)을 전수(傳授)[咐囑]한다’[我今所有無上正法悉以付囑摩訶迦葉]란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후 이 대목은 12세기 무렵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과 송(宋) 나라 때 회암지소(晦庵智昭)가 지은 〈인천안목(人天眼目)〉에서 더욱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선종(禪宗)에서는 이런 일련의 각색(脚色)된 기록들을 바탕으로 불교의 여러 종파들 가운데 독특한 ‘인가(印可)’ 전법 제도를 드러내며 그 정통성을 다지는 동시에 수행자들 사이에서 선지(禪旨)의 요체를 깨우치기 위한 화두로도 널리 활용되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비록 이 화두가 역사적으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불교의 교조인 석가세존께서 생존해 계실 때 유일하게 인가를 받은 마하가섭 존자를 선종의 첫 번째 조사(祖師)로 삼고 있기 때문에, 시대적 흐름의 출발점인 이 공안(公案)에 대해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무문관 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
본칙(本則): 옛날 석가세존(釋迦世尊)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설법하셨는데, 이때 ‘청중들 앞에서 다만 꽃을 들어 올려 보이셨다.[염화시중拈花示衆]’ 이때 제자들이 모두 그 뜻을 몰라 묵묵히 있었는데, 오직 가섭존자만이 파안미소(破顔微笑)를 지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법문(微妙法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教外別傳)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부촉(付囑)하노라.”
평창(評唱): 무문 선사 가로되, 누런 얼굴의 석가[구담瞿曇, 고타마의 한자식 표기]는 사실 횡폭하기 그지없다. 그는 선량한 사람을 나쁜 놈으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비유컨대 상점 간판에 양머리를 걸고 양고기를 판매한다고 선전하면서 개고기를 팔기도 하는 것처럼, 정말로 못 되어 먹었다. 혹시나 어딘가 귀에 솔깃한 구석이 있는가 하고 기대를 하였었는데 (알고 보니 형편없는 사기꾼이었네).
그런데 만일 그때 대중이 모두 웃었었다면 정법을 어떻게 전수하였을 것인가? 설사 가섭이 웃지 않았었다면 또한 정법을 어떻게 전수하였을 것인가?
만약 정법이 전수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누런 얼굴의 석가늙은이가 순박한 시골사람들을 속인 것이 될 것이며, 만약 정법이 전수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왜 (뛰어난 10대 제자들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제자들 가운데) 오직 가섭에게만 전법(傳法)을 허락했을까?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세존께서) 꽃을 들어 올리니/ 꼬리까지 (그 정체를) 몽땅 다 드러났네./ (한편 오직 홀로 그 뜻을 꿰뚫어 본) 가섭의 파안미소/ 인간계와 천상계를 통틀어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하리.[頌曰 拈起花來 尾巴已露. 迦葉破顏 人天罔措.]
서산 대사의 ‘일원상(一圓相)’
후에 서산대사께서 저서 <선가귀감(禪家龜鑑)>의 첫 대목에서 정법 전수에 관해 ‘염화(拈花)’ 대신 ‘일원상(一圓相)’으로 바꾸어 제창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탁월한 견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본래부터 밝디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생기지도 않았고 없어지지도 않았으므로, 이름 지을 길도 없고 모양으로 그려 낼 수도 없느니라.
‘한 물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서산대사께서 허공에) ◯ (즉, 일원상을 그려 놓으시고는) 옛 어른의 게송偈頌을 빌어 가로되, 옛 부처님들이 아직 나시기도 전에/ 이미 뚜렷한 한 물건인 동그라미/ 석가세존께서도 오히려 몰랐거늘/ 가섭존자가 어찌 전할 수 있으리![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이 한 물건은 일찍이 생기지도 않았고 없어지지도 않았으므로, 이름 지을 길도 없고, 모양으로 그려 낼 수도 없는 까닭이니라.”
참고로 필자는 이 ‘한 물건’에 대해, 한 참선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제창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찍이 생기지도 않았고 없어지지도 않았다는 이 한 물건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게송으로 가로되, ‘이 물건을 찾으려 하지 마라./ 곳곳에 언제나 드러나 있네./ 일원상으로 그리지도 말아라./ 모양마다 모두 잘 들어맞네.’[莫尋此物 處處常顯 莫畵圓相 刑刑都善]”
한편 서산대사께서는 석가세존 자신도 모르는 ‘법(法)’, 즉 ‘한 물건[一物]’을 어떻게 가섭존자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또한 선종의 초조(初祖)인 가섭존자 역시 (이를 이조二祖인 아난존자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셨습니다. 자, 여러분! 이제 문제가 커졌습니다. 전법이 가능하다는 불교의 교조인 세존이 옳습니까? 아니면 전법이 불가능하다는 불제자(佛弟子) 서산대사의 지적이 옳습니까? 만일 여러분께서 이에 대해 즉시 ‘한마디[一轉語]’ 이를 수 있다면 진정으로 인간계와 천상계를 통틀어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불립문자’에 대하여
끝으로 세밀히 살펴보면 결국 위의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불립문자(不立文字)’로 귀결되고 있기에 이에 대해 좀 더 세밀히 살피고자 합니다.
선종사(禪宗史)에 따르면 세존께서는 영산회상에서 마하가섭 존자에게 법을 부촉하시면서 선종의 전법(傳法) 전통의 기틀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나는 일생동안 한 마디도 설한 바 없다![일자불설一字不說] 그러니 문자에 얽매이지 말라![불립문자不立文字]”는 유훈(遺訓)을 남기고 입멸(入滅)하셨습니다.
한편 종달(宗達) 선사께서는 ‘불립문자’에 대해 <선문화> 1976년 3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매우 친절하게 제창하셨습니다.
“우리 선가(禪家)에서 ‘불립문자’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런데 이 뜻은 글자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다는 말이다. 글자를 쓰는 것은 그 사물을 표현하기 위함이나, 선(禪) 자체는 글자로 표현할 수 없다. 사실 다른 모든 학문이나 사물은 글자로 표현하여 그를 해득(解得)할 수 있는데, 왜 선은 그렇게 못하느냐하면 결국은 무(無)이고 공(空)이기 때문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무나 공이라는 말도 안정되지 않으니 글자로 쓰려고 해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를 남에게 알리려면 부득이 글자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불립문자’란 글자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고, 글자나 언어에는 한계가 있어서 그로서는 충분히 표현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 와서 선종에 특히 서적이 많다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불립문자를 친절하게 알리기 위하여서는 많은 문자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말을 듣거나 글을 읽어서 그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체험하여 비로소 진실을 파악한다. 즉 선 수행 체험을 바탕으로 문자나 언구를 꿰뚫어보라는 말이다.
한편 ‘불문(不文)의 가르침[교敎]’이라는 말도 있다. 즉 천(天)은 아무 말 없이 이 사시(四時)를 운행하여 만물이 ‘생(生)’하듯이 ‘꽃은 빨갛고 잎은 푸른 것’도 그대로 진실을 드러내고 있어서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다. 꽃은 아무 말 없이 핀다. 또한 유마 거사의 ‘일묵(一默)은 뇌(雷)와 같다’고 우레 소리와 같은 큰소리의 ‘묵(默)’ 이가 위대한 체험이다. 실(實)은 묵(默)이 아니고 진실의 음성인데, 우리 중생들은 이를 듣고도 듣지 못한다. 이는 그 음성과 한몸[일체一體]가 되는 때에 가능한 일이다.”
군더더기: 석가세존께서 대중들에게 ‘염화’, 즉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신 일이나 서산대사께서 ‘일원상’을 그렸던 것이나 모두 ‘달[法]’ 자체가 아니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즉 ‘지월(指月)’의 경계일 뿐이니, 부디 ‘염화’나 ‘일원상’에 미혹(迷惑)되지 마시고 그 의도를 머리가 아닌 ‘온몸[通身]’으로 꿰뚫어 보시기를 간절히 염원 드려 봅니다.
그리고 필자가 틈날 때마다 거듭 말씀드리고 있지만 비단 간화선(看話禪) 수행만이 최선의 길은 아닙니다. 화두 참구 등을 포함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수행을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병행하면서 온몸을 던져 맡은 바 전문직 책무를 다하노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드시 어느 날 문득 통찰(洞察)과 나눔[布施]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실천적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인득(認得)하는 때가 도래할 것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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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나타내고 연설하고 분별하고 열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이 일이 있으므로 그 일이 있고, 그 일이 일어남으로 이 일이 일어난다. 즉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고, 내지 남을 인연하여 늙음·병·죽음과 근심·슬픔·괴로움·번민이 있다. 이리하여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는 것이다.
옳고 그름 분별/없는 통찰/통보불이 삿된/허언(不二)등
부처님이 하시지도 않은 법으로 불법성을 왜곡
이런 삿된소견 있으므로 스스로 파멸로 이끌 무간지옥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