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우상파괴(偶像破壞)’의 계절
[특별기고] ‘우상파괴(偶像破壞)’의 계절
  • 온라인팀
  • 승인 2018.03.0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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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前한국기자협회장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시간에 역사의 중대한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선지자의 귀환을 기다리던 히브리인들은 점점 불안해져서 모세의 형 아론에게 우상(偶像)을 요구했고 아론은 결국 요청을 받아들여 금붙이를 모아 황금 송아지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질탕하게 놀았다. 성서에는 ‘뛰어놀았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이교의 숭배의식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성적으로 난잡한 상태를 의미한다.

산에서 내려와 난장판을 목격한 모세는 율법이 새겨진 석판을 깨뜨렸다. 그는 우상을 불태우고 부숴 가루로 만든 다음 물에 뿌려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다. 신은 백성들에게 역병을 내려 벌을 준다. 구약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1956년 영화 ‘십계명’에서 다루어졌고, 수많은 화가들의 소재가 되었다.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는 오페라 ‘모세와 아론’을 썼다.

#미투’…문화예술계 스타급 인사들의 오욕 명단 날마다 늘어
우상파괴(偶像破壞)의 계절이 닥쳐왔다.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이후 소셜미디어 상에서 #를 붙여 고발하는 ‘미투’ 캠페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상륙한 ‘미투’ 신드롬은 내로라하는 법조계 등 지도급 인사들을 지나 이윤택, 고은, 최일화, 조민기, 조근현, 오태석…대표적인 시사만화가 박제동 화백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계 스타급 인사들의 오욕 명단을 날마다 늘려가고 있다. 


‘미투’ 현상을 놓고 온 국민들이 이런 저런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돼야 할 요소들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쉽게 분석하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을 만큼 이 현상에는 다양한 측면들이 내재돼 있다. 가치관의 이동, 윤리관의 변이, 전통적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의 막장, 세상 수컷들의 본능인 파종성(播種性)…생각하면 할수록 들여다보아야 할 대목은 기하급수로 번진다. 


분별없이 집적거리는 사람 모조리 스타덤에서 아웃될 기세
의도되었건 아니건 간에, 작금 ‘미투’ 캠페인 형태로 나타나는 ‘성추문’은 시대의 우상으로 일컬어지는 유명 인사들을 향한 고성능 방아쇠가 됐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현상들은 아마도 엄청난 세태변화를 불러올 변곡점이 될 개연성이 높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뜨거운 피를 견디지 못해’ 분별없이 집적거리는 습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조리 스타덤(stardom)에서 아웃될 기세인 것이다. 


모두가 알듯이, 현재 폭로되고 있는 성폭력은 ‘빙산의 일각’이다. ‘여자들 중 성폭력 한번 안 당해본 사람이 있을까’라는 한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성(性)’ 문제는 철저하게 ‘금력’을 포함하는 ‘권력’의 문제였다. ‘도덕’은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수치심’을 일으켜 함구하게 만드는 족쇄 역할을 해왔다. 성공한(?), 또는 묻어버리고 지나간 ‘성폭력’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김어준의 ‘음모론’, 피해자들 ‘자기검열’에 빠트리는 데 성공
그런데 잇따른 ‘미투’ 폭로의 한가운데에서 상투적인 음모론이 등장했다. 딴지일보라는 괴짜 진보 패러디 매체를 만들어 히트를 친 김어준은 ‘예언’을 빙자해 “(미투 운동은)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건 아무리 살펴보아도 불의에 발생한 혓바닥 에러가 아니다. 순수하지 못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교묘한 작전으로 읽힌다. 


미투 운동을 정파적 이해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피해자들의 고발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작동원리를 정확하게 간파한 용의주도한 작전명령일 것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발이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는 행위가 아닐지 자기검열을 시작했을 것이다. 고발 자체가 공작의 결과로 낙인찍혀 신상털이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됐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뒤로 사라지고 정권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먼저 계산하는 정치적 셈법만이 남게 된 것이다. 


원치 않는 접촉, 반대급부에 인색한 권력에 대해서 용서 안 해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담을 타고 넘어가 아녀자를 보쌈해오는 풍습도 미담이 되던 시대에서,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 지위가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세상이 달라졌다. 이런 세상이 초래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경제적 풍요와 함께 성장한 ‘평등’ 사상일 것이다. 여성들의 스스로의 생존이 걸려있어서 꺼내놓지 못하던 말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된 극적인 세상 변화의 산물이다. 


여전히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윤락’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런 설명을 뒷받침해준다. ‘윤락’은 반대급부가 보장되고, 이에 만족하는 수요공급의 원리가 통하는 합의적인 ‘성행위’ 거래관계인 까닭이다. 행여 밥그릇 깨질까 두려워 말 못하고 살던 시대가 지나가면서,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이나 반대급부에 인색한 불공정한 권력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제 용서하지 않기로 결의하고 있는 것이다. 


‘음모론’ 따위의 정파적 구더기들 들끓지 않도록 경계해야 
온 세상 사람들이 불공정이나, 불합리한 권력에 대해 더 이상 인내하지 않기로 한 시대적 변화가 지구촌에서 가장 해괴한 ‘우상숭배’ 방식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까지 영향을 미칠 희망적인 상상을 해본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찾아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북한 동포들에게 진정한 풍요와 자유가 조금 더 주어지기만 하면 필경 못 견딜 것이다. 세계적인 ‘미투’ 운동은 결국 ‘성폭력’의 문제를 훌쩍 넘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우상파괴’의 계절은 아무래도 운명적인 새 시대의 도래다. ‘평등’의 진정한 가치가 사라진 자리, 정상적인 ‘신심(信心)’이 무너진 자리에 기생하는 ‘우상숭배’는 철저히 부서져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투’ 운동의 건강성이 유지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로남불’, 패거리의식, ‘음모론’ 따위의 정파적 구더기들이 들끓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모세가 잠시 시나이 산으로 하늘의 계명을 받으러 간 사이에 무한 난잡에 빠진 군중 한 복판에서 망연자실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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