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맛있을 것이라 느끼게 만드는 다기”
“더 맛있을 것이라 느끼게 만드는 다기”
  • 한유미/한국차심평원장
  • 승인 2018.02.1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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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생 한유미의 차와 놀자] (18) 자사호랑 찻잔이랑
▲ 자사호의 한 종류.(사진=한유미 원장)

자사호(紫沙壺)는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이다. 보통 다관이라고 한다. 돌가루를 빻아 가루를 내어 만든다. 중국에만 있는 돌이어서 중국에서만 생산된다. 끓여마시는 차에서 우려마시는 잎차(엽차) 문화로 바뀌면서 명나라 때부터 유명해졌다. 차를 쌀에 비유한다면 자사호는 솥에 해당된다. 그만큼 차와 자사호의 긴밀함은 깊다.

“찻잔에 따라 차맛도 달라질까”

지인 중에 차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하는 일도 미적세계에 몸을 담고 있어서인지 차보다 자사호를 더 많이 좋아한다. 하루는 함께 차를 마시는데 찻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그가 묻는다.

‘찻잔에 따라 차의 맛도 달라집니까?’

수년 전에도 이 질문에 해당되는 글을 쓴 적이 있었고, 몇 주 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또 같은 질문을 한다.

‘찻잔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하는 사람이 제법 있는 모양이지요?’

그렇다고 한다. 여기서 차의 맛이 달라진다는 말은 ‘화학적 변화’를 의미한다. 커피는 커피를 타는 기계와 방법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난다. 여기까지는 모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커피를 추출한 이후의 단계인 커피잔에 대해 생각해보자. 커피를 커피잔에 담지 않고 머그컵에 마시면 커피맛이 달라질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머그컵 보다는 예쁜 커피잔에 담은 커피가 훨씬 맛있다고 할 것이다. 또 자연산 송이버섯국을 한번 생각해보자. 그 송이국은 꼭 국그릇에만 담아야 할까? (송이국은 배부르게 먹는 국이 아님을 명심하면서) 밥공기나 머그컵에 담으면 맛이 달라질까?. 무의식중에 밥공기?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겠다.

그러나 그 귀하신 가을 송이의 향기를 흠뻑 음미하고자 한다면 가장자리가 넓은 국그릇보다 밥공기가 효과적이다. 국을 밥공기에 담는다는 관례의 이탈이 낯설어 그렇지, 밥그릇에 국을 담았다고 맛 자체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커피 역시 꼭 커피잔이나 머그컵이 아니라 막걸리 사발에 부어먹어도 문제될 것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맛이 달라지지 않으면 국그릇이든 밥그릇이든 안 될 이유가 없다. 커피를 커피잔 이외의 그릇에 담아 맛이 달라진다면 커피잔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렇다고 커피나 비싼 송이국을 냄새가 배어있는 뚝배기에 일부러 부어 마시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커피를 커피잔에 마시면 따뜻함이 유지되고 향기보존에 유리하지만 그것이 절대적 이유는 아니다. 마시는 양이 한 대접이나 되어 김빠진 콜라처럼 오랜 시간동안 마시다 쉬다 쉬다가 마시면서 배를 채우는 음료도 아니지 않은가. 천하에 맛있는 커피라도 식으면 맛이 없어 사람들이 마시지 않기에 따뜻할 동안 조금씩 자주 마신다.

그러면 차는? 차도 커피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지인의 질문에 대한 답은 ‘찻잔에 따라 차의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가 되겠다. 여기서 말하는 찻잔이란 우리가 사용하는 수준의 상식적인 일반적 도자기 종류다. 설령 찻잔에 따라 차맛의 차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너무나 미미하여, 혀에 영향이 있을까 말까한 정도, 감지가 될까 말까 하는 정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또 찻잔의 재질이나 두께에 따른 온도감각의 차이로 인한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보온성에 따른 느낌의 차이)고 해도 마찬가지다.

▲ 찻잔의 한 종류.

“찻잔을 소중한 여기는 마음 존중해야”

그러나 우리네 삶이 두부 잘리듯 반듯하고 선명하다면 번뇌도 108개나 되지 않았을 것이고 사는 것이 훨씬 덜 복잡했을 것이다. ‘찻잔에 따라 차의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정답이기는 하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선 좋은 답(개운한 답)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차와 더불어 찻잔을 지극히 애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존중을 간과하였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종종 찻잔과 다구를 차와 한 몸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자사호를 제외한 찻잔과 다구를 한 몸으로 여길 정도로 애용한다고 해서 차에 대한 자사호의 중요성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보다 먼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 ‘차 문명의 시작’을 알린 《다경》의 저자 ‘육우’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 아래 내용은 필자 저술의 《육우다경》 p188~196 찻사발에 대한 내용을 부분 발췌하였다.

“찻사발은 (중략)······ 어떤 사람은 형주의 찻사발이 월주 것보다 상품이라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중략)······ 월주와 악주 자기는 모두 푸른색이다. 푸른색은 차의 탕색을 더 돋보이게 하는데 차의 탕색은 백홍색이 된다. 형주 자기는 백색이어서 차의 탕색이 홍색(백홍색보다 어둡게)으로 보인다. 수주 자기는 황색이어서 차의 탕색이 자줏빛(홍색보다 더 어둡게)으로 보이며 홍주 자기는 갈색이어서 차의 탕색이 검게 보이는데 이 모두가 차에 바람직하지 않다.” (*월주는 중국 절강성 청자 생산지. *형주는 중국 하북성 백자 생산지.)

육우는 청자와 백자 중에 차의 탕색(당대는 차를 솥에 끓였기 때문에 찻물색이 붉은 빛)에 맞는 찻사발이 푸른색(청자)라고 했다. 청자 찻잔이 좋은 이유는, 붉은 색이 우러나는 찻물을 ‘투명’하게 보이도록 하기 때문이란다. 즉 ‘더 돋보이게 한다’는 말은 맛을 변화케 하는 직접적 연결이 아니다. 백자는 투명한 붉은 색인 찻물을 어둡게 보이게 하여 덜 좋다고 하였다.

“찻잔보다 심리적 심리가 차맛 돋워”

청자는 남방을 대표한 자기였고, 북조 북제 때 등장한 백자는 북방을 대표한 자기였다. 여기서 남청북백(南靑北白)이라는 말이 생겼다. 육우가 백자보다 청자를 더 선호한 것은 일반인이 가질 수 없었던 옥에 대한 전통적 열망(민족의 정체성)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는 칙칙한 갈색 찻잔들은 차의 탕색(찻물색)을 맛없게 보이도록 하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육우를 통해본 찻잔은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 다구가 아니라 심미적 심리에서 차의 맛을 돋우는 역할임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잔에 담긴 찻물색이 보기에도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선입견)은 결국 차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이다. 그와 같은 마음의 문제는 사람마다 달라 정답이 없다. 마음의 문제이기에 육우 시대에도 백자를 선호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따라서 자사호는 차의 맛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다기이지만, 찻잔은 시각적으로 차를 ‘보다 더 맛있을 것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다기(이를테면 기분의 맛)’이다.

▲ 자사호의 원료인 니료(泥料, 사진=한유미)

총합적으로, 찻잔은 ‘차의 맛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맛있다고 느끼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거나, ‘찻잔에 따라 기분이 좋아진다’로 정리하면 그럭저럭 시원한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단 찻잔에 대한 기분은 심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 일상생활에서의 일반적 경우를 전제).

차의 여러 도구(다기) 중에 자사호는 ‘차와 한 몸(차맛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효과적이라는 의미이지, 차와 물의 중요성에 비할 바는 아님)’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적 가치를 넘어 감상적 가치로서의 자사호에 대한 문제는 일단 보류하였다. 자사호의 공예성과 예술성에 대한 부분은 따로 논의할 문제지만, 제 아무리 예술성이 좋아도 ‘차를 위한’ 실용적 가치에 충실하지 않는 자사호, 차와의 긴밀한 관계성이 바탕이 되기보다는 독립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자사호는 쓸모없는 돌가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기회를 따로 가질 생각이다.

좋은 찻잔에 담긴 찻물이 혀를 적시면 차의 바다를 항해하는 기분이 든다. 때로는 찻잔을 입술에 머금은 채 나비가 되어 노니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독자들이 애용하는 찻잔은 어떤 것일까. 그 사람을 보듯이 동일시된 저마다의 찻잔이 궁금해진다.

*이 원고 후속으로 자사호에 대한 실용적 쓰임에 대해 좀더 깊은 글을 쓰려고 취재하였다. 인사동 자사전문점 ‘천예명호’를 운영하는 배금용 님이 취재를 응해주었다. 설명이 명쾌하였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을 급히 전달하기가 부담이고, 보충·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있어 시간을 더 갖기로 했다. 미리 양해를 구하였으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자사 구입을 하려는 초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부탁했는데 그대로 전하면 다음과 같다.

“상인의 추천을 바라기보다 먼저 자기 기준에서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는 것, 조금이라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면 됩니다. 마음에 거리낌이 있는데도 상인이 좋다고 추천한다고 해서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차선생 한유미(韓有美)

중국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 심배화 선생에게 차심평(Tea Tasting)을 배웠다. 2003년부터 심평과 가공, 차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주해서 《육우다경》과 《동다송·다신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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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즐겨 2018-06-16 23:26:28
찻잔에 따른 맛 차이는 잔 형태 때문일 확률이 큽니다.
와인 잔의 경우는 이런 잔 형태에 따른 맛 차이에 대한 연구의 결과로 와인 종류에 따라 잔 모양을 다르게 만들죠.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들이 마시게해줄 때에도 잔의 가격 차이에 따라 맛 차이가 나는지 해보세요. 구별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상인은 중국 백자 잔의 유약 종류(정확히는 가격)에 따라 맛 차이가 난다고 고가 잔을 팔더군요. 그래서 차를 마시는 도예가에게 물어보니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더군요.

헤헤 2018-02-20 06:39:44
잔을 몇개 늘어놓고 비교해 보세요. 다관도 그렇고 분명히 틀려요. 좋은 의도로 한없이 사치스러지는 다관하나가 일반인한달 월급정도 까지 올라가 버린 풍토를 염려해서 쓰신글이면 모르겠는데..그렇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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