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혜개의 자서
신무문관: 혜개의 자서
  • 박영재 교수
  • 승인 2017.12.29 10: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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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31.

성찰배경: 혜개(慧開) 선사(禪師)는 국력이 날로 쇠락해 가던 남송(南宋) 시대인 1183년 항주(杭州) 전당(錢塘)에서 태어나 1260년(78세)에 입적(入寂)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천룡굉 선사 밑으로 출가하였으며 그후 열대여섯 분의 선사들께 참문하며 구도(求道)의 여정을 이어가다가 마침내 당대 최고의 선사 가운데 한분이셨던> 월림사관(月林師觀) 선사 문하로 입문하였습니다.

그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공안을 가지고 월림 선사 밑에서 6년간 열심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때를 알리는 큰 북소리를 듣고 갑자기 깨달음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뒤 그는 ‘무(無)’자(字) 화두 타파 체험을 바탕으로 46세 때 동가의 용상사에서 48칙의 공안들을 제창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편찬한 것이 바로 선종 최후의 공안집이라고 할 수 있는 <무문관(無門關)>입니다.                                           

한편 요즈음 인간의 수명이 대개 80세 정도로 늘어나 오래 살게 되었다고는 하나, 이론물리학에서 예측하고 있는 우주의 나이인 138억 년에 비하면 하루살이의 수명이나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짧은 삶입니다. 혜개 선사는 이를 꿰뚫어 보고 수행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허송세월 한다면 이 짧은 삶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지나가고 만다는 가르침을 자서自序의 말미에서 단적端的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무문관>을 편찬한 연유가 담긴 그의 자서를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혜개(慧開)의 자서(自序)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란 무엇인가?) (선가禪家에서는) 불심(佛心)으로 근본을 삼고 무문(無門)으로 법문(法門)을 삼는다. 그런데 이미 문이 없는데 무문을 어떻게 투과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문을 통해 들어온 것은 가보(家寶)가 될 수 없으며 인연 따라 얻어진 것은 언제 변화되고 소멸될지 알 수 없다.’라는 말도 듣지 못했는가! (그러나) 이들 일화(逸話)는 바람 없는 바다에서 파도를 일으키고 건강한 피부를 일부러 상처를 내서 흉터를 만드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일화나 문자나 언구(言句)에 집착해 해석하려고 하는 등의 행위는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은 마치 작대기를 가지고 달을 쳐서 따려는 것이나 발이 가려운데 구두 위를 긁는 것과 같은 것이니 선의 참뜻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나, 혜개(慧開)는 1228년 여름, 동가(東嘉)에 있는 용상사(龍翔寺)에서 운수(雲水)들의 제일 윗자리[조실祖室]에 앉았다. 이때 납자(衲子)들이 가르침을 청하자 드디어 그 청을 받아들여 옛어른[古人]들의 공안(公案)들을 (무문관을 열리게 하기 위한) 문을 두드리는 기왓장으로 삼아 운수들의 역량(力量)과 성품(性品)에 따라 지도하였다. (그러면서) 이들 공안들과 평창(評唱)을 기록해둔 것이 어느 새 상당히 모아져 48칙이나 되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순서대로 가르치며 나열했던 것은 아니며 이를 통칭하여 ‘무문관(無門關)’이라 부르기로 하겠다.

만일 용기 있는 수행자라면 위험을 돌보지 않고 똑바로 (무문관을 향해) 돌진해 갈 것이다. 이러할 때 팔비(八臂)의 귀왕나타(鬼王那陀)라 할지라도 그가 가려고 하는 길을 결코 막을 수 없다. 심지어 인도의 스물여덟 분 조사(祖師)들이나 중국의 여섯 분 조사들도 이와 같은 용맹스런 수행자 앞에서는 다만 외경(畏敬)스런 마음으로 그저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와 같은 용맹스런 수행을 주저한다면 마치 창밖을 질주해가는 말을 쳐다보는 것과 같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가 소중한 인생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송頌해 가로되, 대도는 무문으로/ 그곳에는 셀 수 없는 많은 길이 있나니/ (만일 어느 길을 통해서든지) 이 문없는 관문을 투과한다면/ 우주 속에서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걸림 없는 삶을 살리라! [大道無門 天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제창(提唱): 먼저 맨 처음 나오는 첫 구절인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은 제목인지, 아니면 ‘선에는 문이 없다.’라는 문장인지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제시 되어온 구절이나 여기서는 전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경향에 따라 이 책의 제목으로 삼겠습니다.

자서(自序)의 앞부분에서 혜개 선사는 우선 선의 근본적인 성격과 그것에 대한 그의 언어적 표현에 관한 태도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불심(佛心)을 근본으로 삼고 무문(無門)을 법문(法門)으로 삼는다.[佛語心爲宗 無門爲法門]’라는 처음 두 구절은 본래 <능가경(楞伽經)>에 있는 말로 마조(馬祖) 선사가 이를 인용해 제자들에게 제창해 쓴 말입니다.

그는 이 두 구절을 인용해 간단명료하게 선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는 ‘무문(無門)’이라는 선어(禪語)도 들어있어, 이 책의 이름과도 잘 상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우리는 중간 부분에 있는 ‘옛어른들의 공안들을 문을 두드리는 기왓장으로 삼아 운수들의 역량과 성품에 따라 지도하였다.[將古人公案 作敲門瓦子 隨機引導學者]’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역량을 갖춘 선의 스승이라면 자기가 철저히 투과했던 하나의 화두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옛어른들의 공안들을 낱낱이 꿰뚫은 다음, 이를 자유자재하게 활용하며 각기 개성이 천차만별인 제자들에게 그들과 코드가 맞는 공안들을 제대로 주고 이를 타파하게끔 지속적으로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간화선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남송 시대를 살았던 법연(法演)의 제자 원정(元靜)은 법연에게서 즉심즉불(卽心卽佛)·목주담판(睦州擔板)·남전참묘(南泉斬猫)·조주구자(趙州狗子) 등을 일일이 투과(透過)했다는 것이 선종어록인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만일 이와 같은 용맹스런 수행을 주저한다면 창밖을 질주해가는 말을 쳐다보는 것과 같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가 (소중한 인생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設或躊躇 也似隔窓看馬騎 眨得眼來 早已蹉過]’인 마지막 대목에서는 인생을 허송세월하지 말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 각자의 지금까지의 인생은, 어떤 이는 불행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잘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다 깊은 뜻이 있으며, 중요한 것은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각자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과거의 잘못을 참회(懺悔)하며 뼈 속 깊이 새기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켜가면서, 날이 갈수록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를 보다 철저히 온몸으로 실천하며 앞으로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보기를 들면 한 주정뱅이 아버지 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아버지를 잘못 만나 자신 역시 술주정뱅이가 되었다며 인생을 한탄하며 허송세월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나는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 아래, 가치 있는 삶의 길을 진지하게 성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세상에서 아버지와 같은 술주정뱅이를 한 사람이라도 더 치료해 그 자식들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알코올 중독자를 고치는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앞으로 다음 글부터는 기존의 무문관 48칙을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관점에서 순서의 변화 및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신무문관(新無門關)을 본격적으로 제창하고자 합니다.

참고자료:
오늘이 인생의 전부: http://www.seondohoe.org/107291
고목선과 제자선: http://www.seondohoe.org/528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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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2018-01-01 09:50:22
교수님~저희 佛子들을 위해 눈동자보다 더 귀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매번 이렇게 잘 모르던 사실들에 대해서 좋은 글을 나눠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Happy New Year 되세요!!
_()_

삼계도사 2017-12-29 21:31:27
중생을 가르칠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습니까? 화두를 타파하여 답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괜히 나서지 마세요.그 과보는 무간지옥입니다.고통이 쉴 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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