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올 걸 왜 올라가?"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의 고봉 14개를 모두 오른 김창호에게 그의 어머니가 던진 질문이다.
그는 산소통을 쓰지 않았으므로 죽을 확률이 더 컸다. 등정 후 같이 하산하던 동료가 8,000미터 고지에서 자다가 산소부족으로 죽은 적이 있다.
모두의 질문은 "죽을 걸 왜 살아?"와 같은 질문이다. 사람은 무에서 생겨나 다시 무로 돌아간다.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을 왜 유(有)가 되었을까?
수정란에서 태아를 거쳐 어머니 몸 밖으로 나와 의식이 발달하면서 삶과 죽음을 알게 되면, 바로 그 시점에서 의식을 더이상 발달시키지 말고, 어차피 언젠가 죽을 것 살지 말아야 할까?
사람들은 서로 헤어지지 않고 살아도 결국 언젠가는 헤어진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때문이다. 그럼 누구를 만나도 결국 헤어질 터이니 아예 처음부터 만나지 말아야 할까? 결국 죽을 목숨, 아이도 낳지 말아야 할까? 아이는, 언젠가 무로 돌아갈 터이니, 무에서 유로 불러오지 말아야 할까?
결국 죽을 목숨이지만 당장 죽지 않고 살 거라면, 결국 다시 내려오더라도 올라가는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삶의 의미는 삶 너머에 있는 게 아니다. 삶 자체가 삶의 의미이다. 그래서 내려올 걸 올라가고, 죽을 걸 사는 것이다.
김창호는 어머니의 질문에 답을 못했다. 답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른다고 했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것 자체가 바로 답이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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