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다르다고 반드시 다른 것 아냐
이름 다르다고 반드시 다른 것 아냐
  • 안재철 교수
  • 승인 2017.10.01 08:39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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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안재철 교수의 열린강원 3. 질문에 답합니다 (2)

이름이 다르다고 반드시 다른 것은 아니다.

도가에서는 道와 德을 말한다. 도가에서 말하는 道는 우주의 총원리로, 마치 불가의 眞如이며 부처이고, 空이며 一心이고, 또 위음왕불威音王佛 저편 다시 저 저편(向威音那邊更那邊)[父母未生前]의 것이며,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에서 말하는 一이라고 할 것이고, 德은 각 萬物의 원리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

또 불가에서는 간혹 상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常의 사전적 의미는 ‘항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항상’ 등과 같이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가의 전적典籍인 도덕경道德經에서는 상常뿐만 아니라 현玄, 음陰, 곡谷 등도 도道에 비유한다.

우주가 막 생겨나자 있었다는 위음왕불은 시작인 듯 시작이 아니다. 시작이라고 말하고자 하나 그것 이전에도 시작은 있었을 것이니, 고정하여 지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존재한다고 가정한 그 무엇을 일러 一物이라고 하고, 그것을 부처라고 하는데, 그것은 있다고 말할 수 없어서 단지 인식認識할 수 있을 뿐이니 그것을 일러 空이라고 한다.

불가의 一物을 때로는 부처라고 하고 때로는 空이라고 하여, 그것들의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결코 서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것의 여러 가지 속성屬性 중에서 어느 속성을 대표하여 이름으로 삼았는가로 말미암아 이름이 달라졌을 뿐 결코 다른 것은 아니다.

마치 필자가 학교에서는 선생이지만, 집에 가면 아빠이고 남편이며, 은사님께는 제자이고,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자식인 것처럼, 비록 이름은 다를지라도, 나는 다 같은 나인 것과 같다.

도가에서 말하는 道도, 道라고 부르지만, 그것의 속성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萬物이 변하는 것과는 달리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있으니, 그것을 일러 常이라고 하며, 또 그것은 만물이 분명하게 나누어 진 것과는 달리 혼재混在하여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아득하며 까맣고 붉은듯하니 그것을 일러 현玄(현(玄)은 실을 꼬아놓은 모습이라고 하기 때문에 아래 부분의 요(幺)가 들어있는 글자는 실과 관련이 있고(실 사絲, 끈 뉴紐, 실 선綫), 실에 물감을 들이는 것으로 인하여, 색깔을 나타내는 글자는 대개 糸가 들어 있다.(검은 치緇, 흴 소素, 초록빛 록綠, 검색 감紺) 또 흔히 玄을 ‘검을 현’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실과 같이 꼬인 가죽이며, 가죽의 색깔이 검기 때문이다. 玄이 들어간 글자 중에서 그것이 가죽으로 쓰인 경우는 牽이 있다. 牽에서 玄은 소를 끄는 고삐를 그린 것이다.)이라고 하므로, 道가 곧 常이요, 常이 곧 玄인 것이다.

불가에서는 모든 萬物의 시작을 위음왕불(一物)이라고 하고, 다시 그 만물은 위음왕불로 귀일歸一한다고 한다.

암컷의 음陰은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하는 시작이니, 그것은 마치 一物이 만물의 시작인 것과 같기 때문에, 道를 또한 陰이라고 하고, 산봉우리의 온갖 것들이 골짜기(곡谷)에 모여 바다로 흘러드니, 그것은 마치 萬法이 하나에 모이는 것과 같아, 道를 또한 谷이라고 한다면, 道는 陰임과 동시에 谷인 것이다.

이와 같이 도가에서 道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는 常이나 玄 등은, 불가에서도 그저 ‘항상하다’나 ‘검다, 깊다’로만 쓰이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 용어 속에는 이미 변하지 않는 속성의 眞如(常)와 아득하고 그윽한 속성의 진여(玄)라는 의미가 전제된 것이니, 그것은 道家에서 道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과 결코 다르다고 할 수 없다.

누구나 무심코 지나칠 만한 예로 불가의 작품에서 현허虛玄를 들어 설명해보자.

妙道ᄂᆞᆫ 虛玄ᄒᆞ야 不可思議니 忘言得旨라ᅀᅡ 端可悟明이리라 남성우, 『六祖法寶壇經諺解󰡕
微妙ᄒᆞᆫ 道ᄂᆞᆫ 虛코 기퍼 어루 ᄉᆞ라ᇰᄒᆞ야 議論티 몯ᄒᆞ리니 말ᄉᆞᆷ 닛고 ᄠᅳᆮ 得ᄒᆞ니ᅀᅡ 正히 어루 아라 ᄇᆞᆯ기리라

미묘(微妙)한 도는 허(虛)하고 깊어서 가히 생각하여 의논(議論)하지 못할 것이니, 말[言]을 잊고 뜻을 얻어야 바로 가히 깨달아 밝힐 것이다.

(微妙한 道는 텅 비고 깊어서(그윽하여) 생각하여 議論할 수 없는 것이니, 말(言)을 잊고 뜻(旨)을 얻어야, [비로소] 반드시 밝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위로부터 각각 언해諺解, 언해에 대한 한글번역, 필자의 번역 순으로 적은 것이며, 필자는 ‘可(가)’, ‘端(단)’, ‘悟明(오명)’ 등의 용법을 고려하여 다시 해석하였다.)

텅 빈 방을 환하게 밝힌다는 의미의 허실생백虛室生白은 장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불가에서 방하착放下著하는 대상인 마음을 비워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虛가 도가의 용어인 줄은 안다. 문제는 玄도 또한 도가의 용어임은 위의 설명을 통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문一物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眞空)이기 때문에 허虛라고 표현하고, 일문一物은 그래도 있다고 전제하여야 하는 것(妙有)이기 때문에, 그윽한 그 무엇으로 인식하여 玄이라고 표현했다면, 허현虛玄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합하건데 소요逍遙나 좌탈입망坐脫立亡과 같이 누구나 도가의 용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단어는 물론이고, 불전佛典에 사용되는 꽤 많은 용어가 격의불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덧붙여 생각할 것은 한자는 단어를 택할 때도 뜻뿐만 아니라 소리까지도 고려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다.

즉 虛玄은 마치 방불彷佛(髣髴)의 한국한자음의 初聲이 ‘ㅂ’이듯이, 그것의 초성이 모두 ‘ㅎ’이고, 소요逍遙나 망양魍魎 등은 中·終聲이 유사하여, 일정한 어떤 원리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에 대한 증명을 하자면 중국언어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략하낟. 그러나 사실만은 독자가 믿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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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 2017-10-04 07:03:18
앗차! 본의가 빠졌네. '이름이 다르다고 반드시 다른 것은 아니다'란 말은 안선생의 말대로 안대도 아니죠.이 말의 뜻을 헤리는 게 아니라 이 말이 가르치는 걸 봐야합니다.이말은 보리살타의 부처를 가르치는 말입니다. 수많은 이름의 보살이며 부처가 많기는 하지만 오직 이보살성이며 이부처의 불성임을 알라는 말이죠. 위음왕불요? 이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첫구절을 바르게 알지않고는 모릅니다. 태초에 뭐가 있죠? 12연기의 무명입니까? 무명성으로써의 보살을 봐야죠. 관세음,지장,문수 한없죠'이름이 다르다고 반드시 다른것은아니죠.또끝이네

설봉 2017-10-04 00:51:13
에구, 날라가 버렸넹! 우짰든지 이런 해석이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관 아득한 거죠. 망언득지란 말은 저 뜻이 아닙니다. 말에서 얻은 뜻을 버리고 잊어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으로 알아야 한다는 거죠. 유`도교완 다르다는 거죠. 비록 저들의 말을 빌려쓰긴 하지만. 이 일이 좀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 불교닷컴 지대방 자유게시판 도올의 금강경 오해란 글을 보시지요. 소인이 올리는 건데요(죄송), 궁금함이 좀 가실지도 모릅니다. 혹 더 어지러워진대도 그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 솔직히 여긴 자리가 넘 좁아요.

설봉 2017-10-04 00:23:34
'이름이 다르다고 반드시 다른 것은 아니다'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은 여기 명제의 이름이며, 또 그 같고 다름을 따지는 분별에 있는 것이 아니죠. 이름이라면 이 이름이, 다르단다면 이 다름이, 안 다르다면 안 다른 이것이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부처이며 선임을 밝혀 증명한 것이죠.이 밝힌 증명으로 중국토착의 사유체계를 담은 언어를 빌려쓰고 있는 것이죠. 여기 예로든 妙道며 虛玄 따위는 다 이것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들을 빌려쓴 불교가 저들, 중국토착의 사유체계보다 반드시 우월한 것이라는 건 아닙니다. 격의불교

수행자 2017-10-01 23:05:28
삼배하옵고, 교수님 강론 중에 앞부분...(도가에서말하는)...德은 각 萬物의 원리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 요~ 부분에 대한 이해가 언뜻 잘 안갑니다. 인연법을 강조하는 불교에서 왜 德이 상대적으로 道에 비해서 덜 다루어졌는지(저의 짧은 경전지식에 비추어보면요)...오히려 더 많이 다루어져야 하지 않았는지...德不孤必有隣(論語, 里仁篇)처럼 말이죠.
궁금합니다. 즐거운 추석되시구요! _()_

따라서~이젠!/택법!뿌린대로 2017-10-01 18:34:39
부처님은 정말로 말법시대에는 말법을 찬양
바른법을 찻아라 하면 도리어 무시하고
바른지헤없는 무명으로 용수말법을 주야창창 주장 하면서~


이젠 더이상 바른지혜/불도없는 곳으로 나아가고
부처님 원음/부처님의 진실된 가르침법을 비방/훼손/ 왜곡 /하시면서
부처님이가신 부처세계와는 전혀다른 내가/본래부처세계주장/탐욕심/무명심에 물들고 악귀(악마)행으로 지옥가는 생으로 살아간다 하시었고,,

착한 /선근가진 부처님 제자분들은
어서빨리 천인사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거룩한 지혜얻는 법등명 하시어서
고귀하고 거룩한 삶 이루어 나아간다라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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