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영암사지는 불꽃 모양의 아름다운 황매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라 시대와 고려시대에 있었던 사찰로 알려지고 있다. 합천 영암사는 기록이 없어서, 그 규모와 쌍사자석등, 삼층석탑과 석축 등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고 있어서 궁금증을 더하는 곳이다. 886년에 세워진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비(보물 제446호)에 영암사가 기록되어 있고, 영암사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이 8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사찰의 창건연대는 9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북현무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등 풍수적 요소가 남동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 자연 지형인데 불구하고 건물은 정동향으로 지어졌다. 참고로 빗물도랑이 남쪽으로 흐르게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 물은 남쪽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지형으로 보인다. 많은 사찰이 의도적으로 남쪽으로 짓고 있으며, 지형을 살펴보아도 사찰의 건물을 남동쪽 또는 남쪽으로 짓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반하여 동향으로 지은 까닭이 궁금하다.
합천 영암사의 금당 축대에 새겨진 문양과 출토물 등으로 밀교적인 수행방식이 나타난다고 하나 통일신라시대에는 구산선문을 위시한 선종과 교종은 밀교적 교리를 받아들였다는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밀교적 요소가 영암사의 건축 방향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만 그 이유를 알기가 어렵다. 추정일 뿐이지만, 금당에 부처님을 모신 기단석이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주불이 아미타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에서 동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산 즉 금당을 뒤에서 받쳐주고 있는 산은 황매산으로 불꽃같은 모양이 선명하다. 화강암은 단단하여 집을 짓는 기초로 유용하며, 석불을 새기거나, 석등을 만들고, 석탑을 세울 때 매우 적합한 재료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찰의 입지로 우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사지로 남아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영암사의 동향구조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도적으로 여겨진다. 위대한 불보살을 모신 사찰이라고 해도 사찰 운영의 주체는 사람이므로 자연을 모태로 한 풍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금당을 위시한 건물들을 동향으로 지었기에 좌청룡과 우백호 능선의 진행방향이 금당을 외면하게 한 것과 어떤 연관성은 없었을까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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