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음을 벗어난 최소한의 좋음”
“좋지 않음을 벗어난 최소한의 좋음”
  • 한유미/한국차심평원장
  • 승인 2017.09.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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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생 한유미의 차와 놀자] (9)국민녹차 오설록 세작(3)
▲ 오설록 홈페이지 갈무리ⓒ불교닷컴

증제차든 덖음차든 통틀어 오설록 세작(오직 세작 한 상품에 한정함)은 ‘국민녹차’의 위상에 변함은 없지만, 분류로는 대표적인 증제녹차다. 찻잎을 솥에 덖어 만들면 쉽게 덖음차라고 한다. 증제차는 센 압력의 증기로 찻잎을 쪄서 익히기 때문에 증제녹차라고 한다. 떡가루를 쪄서 떡을 만들 듯 찻잎도 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만드는 방법에 따라 증제차, 덖음차로 이름을 붙인다. 덖음차의 특징은 ‘감칠맛’, 증제차의 특징은 ‘신선함’이다.

예전에는 화개(하동)는 덖음차를 주로 생산했고, 보성은 증제차를 주로 생산한 지역이었다. 요즘은 기계화가 많이 되어 지역에 따른 차의 특징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기계화에 무턱대고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균일도가 낮은 수제차보다 기계에 품질 장점이 많아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더 이익이다.

증제차를 생산하는 곳은 완전히 기계화가 이루어져 있다.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수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생산량이 적은 다원들도 기계들을 갖추어 가고 있다. 그런 곳은 주로 덖음차(덖음 살청기)를 생산한다. 기계차라고 기계만 쓰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섬세한 공정에서는 손을 필요로 할 때도 많다. 특히, 명차는 물량도 적고 섬세함을 요구하기에 기계뿐만 아니라 진정한 손기술과 가공지식을 더 필요로 한다. 기계화로 인해 차의 가격이 많이 낮아졌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아직 섭섭한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오설록 세작은 기계차이다.

기계·손기술 모두 차 품질로 드러나

기계를 잘 다루는 것도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다. 기계로 차를 만든다고 해도 결국, 그 기계를 다루는 사람의 능력이 품질을 만든다. 기계든 손기술이든 만든 사람의 역량은 품질(차)에 모두 나타나 숨길 수 없다. 마치, 내시경이나 X-레이로 인체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차에서는 그 일을 하는 심평 외에 대안이 없다).

기계차라고 해서 개성 없음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값싼 걱정이다. 기본 없는 개성을 추구한답시고 혹은 옛 전통을 살린답시고 품질에 한참 못 미치는 탄차를 만들곤 하는데 그런 차는 불량이라고 한다. 개성도 기본을 딛고 탄생한다. 전통도 방패가 되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논리와 가치를 따져본 후에 나서는 것이 안전하다.

기본을 무시하면서 개성 운운 하는 사람들은, 기본을 회피하고자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다. 기계화가 되면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손을 써야 품질에 유리한 일을 귀찮고 힘들다고 쓰지 않고 점점 기계에 자신의 일을 미뤄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편한 만큼 상품성이 떨어지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만큼 가격이 조절되는 것도 아니면서. 이 부분은 명차와 가격에 해당되는 주제이므로 이쯤해서 넘어가겠다.

증제차의 청향, 오설록 세작이 교과서

오설록 세작은 ‘청향’의 향기를 가진 차이다. 청향은 덖음차에도 나타나지만 증제차에 주로 많이 나타난다. 청향은 신선하고 상쾌한 맑은 향기다. 높은 산에 올랐을 때 멀리서 바람을 타고 오는 솔향기의 청아한 분위기랄까. 청향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여러 종류라는 말은 청향의 점수대가 여럿이라는 뜻이다. 오설록 세작은 좋은 녹차의 첫 관문이기도 하면서 청향의 첫 관문이기도 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소비자나 생산자나 청향의 교과서로 활용하기 좋다.

생산자는 생산자대로 본보기가 없으니 좋은 품질에 대한 객관적 기준(본보기)이 막연하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무엇이 맛있는 차라는 것인지 늘 첫 선택을 망설인다. 품질이 좋아서 비싼 것인지 비싸서 비싼 것인지 기준이 없으니 누구 말을 참고해야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혀(맛)를 길들이는 차의 선택은 평생을 보증하는 일이므로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한 번 길들여진 입맛은 쉽게 바꿔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을 말한다는 말처럼, 그 사람이 마시는 차도 역시 그 사람을 대변하는 부분이 있다.

2017년 오설록 세작(한 통에 80g, 가격은 40,000만원. 7월 17일 인사동지점 구입)의 향기는 청향의 문턱에 막 들어선 향기이다. 이 청향을 기준으로 아래로 내려가면 청향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이 기준에서 위로 올라간 청향이라면 품질점수가 더 올라간다. 향기의 종류는 차의 마음이 아니라 생산자, 즉 사람의 마음이다. 아마추어와 장인의 차이란 ‘마음먹은 대로 표현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능력 차이가 있다.

아마추어는 차 속에 있는 성분으로 자신이 원하는 향기를 마음대로 만들지 못한다. 차를 만들고 보니 ‘이런 차가 되었네’ 혹은 ‘차는 원래 이래’ 하고 만다. 소위 운빨에 인생을 맡기고 사는 것과 같다. 향이 좋으면 ‘얻어걸린 것’이고 아니면 ‘차가 원래 그런 걸 낸들 어쩌나’ 하면 그만이다. 또 차를 만들다 실수를 하면 차를 망쳐버린다. 구제할 능력이 없다. 운빨을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생산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오’ 라는 뜻이다. 차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마는, 가치 행위의 정당성이 없는 그런 사람이 만든 차를 시래기라 부른들 누가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에 반해, 장인은 청향을 만들고 싶으면 청향을 만들고, 밤향을 만들고 싶으면 밤향을 만든다. 물론 등급에 따라 한계가 있지만, 그런 것 다 고려한다. 장인은 실수를 하더라도 대안과 해결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계획된 상품이었던 것처럼 변형이라도 하여 살려낼 줄 아는 차이가 있다. 불안정한 운빨과 믿고 맡기는 생산능력의 차이랄까.

▲ 오설록 세작. 오설록 홈페이지 갈무리.

우리나라 차생산자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그 차이의 이해였다. 경험도 체계적인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쓸모가 있다. 어디서 보고 배운 적이 없으니 피부에 닿지 않아 가공을 배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우리나라 증체차중에서는 오설록 세작의 등급보다 더 좋은 원료를 사용하면서도, 오설록 세작과 같은 차를 아직 만들지 못했다(있다면 연락하기 바란다. 공개적으로 과정을 중계하겠다).

핵심은 향기의 종류나 점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좋지 않음을 벗어난 최소한의 좋음’에 해당되는 차, 좋음의 시작이 되는 차를 기준으로 제시할 뿐이다. 오설록 세작이 그 기준에 현재 안성맞춤이니 소비자에게 ‘손실’이 없어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뿐이다. 개성이니 명차니 하는 것들은 최소한의 기본이 갖춰진 이후의 일들이므로 지금 논의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 오설록 세작보다 더 좋은 것에 대한 욕구도 별개이므로 소비자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정(情)이란 품질의 ‘믿음’을 주는 일과, 그 믿음에 대한 대가의 지불을 아까워하지 않음이지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국민차 오설록세작, 차 선택 초기설정

오설록 세작의 가격 문제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이다. 지금으로서는 비교 대안이 없다. 품질을 바탕으로 한 차의 선택 기준에 대한 설명을, 전적으로 오설록 세작을 구입하라는 말이 아님을 살펴주었으면 한다. 만약 오설록 세작보다 맛이 조금 덜하지만 가격이 더 저렴해서 다른 차를 구입한다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차 구입에 대한 판단이 확실하지 않아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본보기를 될 만한 차를 참고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차의 선택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한 초기 설정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기준을 세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선택이 한결 쉬워진다.

단순히 가공의 단점이 없는 차 정도는 기계화로 인해 흔하게 볼 수 있다. 또 눈썰미만 좀 있어도 단점이 없는 차 정도를 만드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다. 십여 년 전에는 단점이 없는 차를 좋은 차라고 했지만, 지금은 수준들이 높아져 그런 정도로는 관심을 받기 어렵다.

오설록 세작을 국민차로 주장한 이유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신문사로 원고를 보내주길 바란다. 공개적인 일은 공개적으로 반론을 제시하고 설명해야 유효하다. 사회적 자산 가치를 형성케 하는 반론이라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열과 성의를 다해 응하겠다.

오설록 세작은 영리한 차이다. 향기 보완의 과정으로 ‘마무리’(덖음차가 아님)는 덖음건조다. 경제성과 관계가 있겠지만, 강한 유념과 가루의 비중이 개인적으로 좀 아쉽다.

#오설록 세작, 5회까지 이어집니다. 아울러 공개 질문을 받습니다. 댓글에 질문을 달아 놓으시면 주제들을 선별하여 소비자나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토록 하겠습니다. 실물을 다루는 분야의 한계로 부득이 질문을 선별해야 함을 양해바랍니다.

차선생 한유미(韓有美)는
중국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 심배화 선생에게 차심평(Tea Tasting)을 배웠다. 2003년부터 심평과 가공, 차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주해서 《육우다경》과 《동다송·다신전》 이 있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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