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해원사
진도의 해원사
  • 김규순
  • 승인 2017.09.13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114.

전라남도 우측 끝자락에 진도가 있다. 진도라는 이름은 신라시대부터 불리던 지명이다. 진돗개로 유명한 섬이지만 한때는 팽목항으로 기억되는 섬이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읍을 향해 10리를 달리면 금골산(金骨山)이 나온다. 산 위쪽이 화산석으로 드러나 있어서 금골산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금골산의 좌우에 펼쳐진 너른 평야가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바닷물이 해원사 부근까지 들어찼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백성들은 고기와 소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다지 농사에 힘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농사지을 만한 비옥한 토지가 없어서 그러했을 것이다. 그 시대 백성들의 팍팍한 삶이 다가온다.

▲ 금성초등학교 한 켠에 서 있는 진도금골산오층석탑(보물529호)

금골산에는 고려시대의 사찰이 있었다. 사찰이름은 해원사(海院寺). 일반적으로 원(院)자가 들어가면 숙소로 제공되던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해원사가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관리의 숙소였을 것이다. 해원사는 섬 사찰이면서 평지사찰이다 보니 진도가 겪은 잦은 전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삼별초의 란으로 섬 전체가 피바다를 이루었던 적이 있고, 정유재란으로 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이 전사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 해원사 터에는 금성초동학교가 있다. 그 우측에 진도금골산오층석탑이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고, 금골산 정상 부근에 마애여래좌상이 들판을 굽이 살피고 있다. 사라진 사찰에서 고려시대의 바다사람들이 의지하였던 부처님을 모셨던 자리이다. 전형적인 풍수지형이긴 하지만, 바다와 가까워서 고려 말 왜구의 침탈을 저지하지 못하여 사찰은 소실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에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여 섬을 비우고 모두 내륙으로 옮긴 역사적 사실이 있다.

▲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금골산 정상 부근 화산석 절벽에 새겨져 있다
▲ 금골산과 오층석탑 그리고 금성초등학교의 조화

천년고찰도 중요하지만, 그 때마다 백성들의 필요에 따라 지어지는 사찰도 중요하다. 이런 사찰은 수행처라기 보다는 섬 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금골산 주위로 너른 평야가 펼쳐지고 벼가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아마 동서의 평야를 합치면 진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일 것이다. 지금은 오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 만이 천년 세월의 주민들의 애환과 질곡을 간직하고 있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