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불련의 설계자, 최고의 교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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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범/고려대장경연구소장
  • 승인 2017.09.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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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과 스님들' ⑧ 북한불교의 개막과 홍화두 고문

홍화두 “조불련의 원형적(原形的) 인물”

20세기에 출범한 조불련

오늘날 북한불교를 대표하는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약칭 조불련)는 1945년 12월 26일 평양 용화사에서 출범하였다. 조불련 초대위원장에 김세율(金世律) 스님을 선출하고 한춘, 유보암과 한영규 스님 등 총 16명의 상무위원과 375,438명을 구성원으로 하여 연맹을 공식 창립하였다.

20세기 중반에 출범한 조불련은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불교에서 벗어나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복무하기 위한 종교조직으로서 탄생한 ‘자생적 단체’이다. 이러한 탄생의 배경에는 창립 1개월 전인 1945년 11월 26일을 기해 결성된 북조선불교도총연맹(약칭 총연맹)과 북조선불교연합회 중에서 총연맹을 그 모체로 하고 있다. 당시 총연맹은 불교의 통일단결과 신앙의 자유를 주요한 강령(한국불교의 종헌과 같음)으로 정하고 위원장에 김세율, 부위원장에 한춘, 장상봉 위원에는 김세율, 한영규, 김해진, 한보국 스님 등 30명으로 발족하였다.

▲ 홍화두 고문. 1989년 4월 평양 용화사ⓒ불교닷컴

해방 이후, 북한의 조불련은 조직활동에서나 구성원들이 다분히 정치적 성향을 띄고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김세율, 유보암, 이보화, 공락문, 김영저, 박장일 등 여러 스님들은 북한지역을 기반으로 출발했고 김용담, 장상봉, 김해진, 한보국 등의 스님들은 월북 승려로 참여하였다. 특히 김세율 조불련 초대위원장의 경우는 1948년 4월 18~3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전조선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남북협상 등으로 부르는 남북연석회의(南北連席會議)에 참가해 4월 19일 오전,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 예비회담 축사를 하는 등 해방정국에서 남북의 정치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목표로 논의하고 합의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김세율 위원장은 북한에서 불교조직을 다시 건설하는 등 조불련의 창립자 또는 창시자로 꼽힌다.

해방정국에서 북한지역의 불교는 김일성 주석이 1949년 7월 내각 제21차 전원회의에서 “종교를 장려하지도 박해하지도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체제 안에서 구도활동이 허용’하는 신앙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받게 되고 북한 내의 자생적인 종교조직으로서 조불련이 불교를 대표하는 단체로 정착하게 된다. 교학 및 사찰운영 등 종교조직으로서의 기반을 구축한 조불련은 승려모집, 사찰운영과 복원 심지어 무속 등에 이르기까지 전승적인 요소를 발굴하게 된다. 또한 일본 등 유학파 승려의 등용과 인재발굴을 다방면으로 추진하였다.

조불련은 6.25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침체기에 있다가 1955년경에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각 시․도위원회를 공식적으로 조직화하였다. 이때의 주도적인 인물은 홍화두 고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모란봉의 용화사 법등(法燈) 홍화두 스님, 묘향산 보현사의 청운(靑雲) 최형민 스님과 평양 조불련 중앙위원회의 학림(鶴林) 박태호 스님 등 40대 후반의 젊은 스님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 홍화두 고문과 김일성 주석. 1991년 2월 평양 광법사.ⓒ불교닷컴

북한 조불련의 설계자

북한 최고의 학승(敎學僧)인 법등 홍화두 고문은 오늘날 북한불교를 대표하는 조불련의 마스터 플래너(master planne)이다. 출가 후 일본에 유학하여 교학적인 이론을 쌓고 사회주의 체제에서 불교가 걸어가야 할 계획을 미리 체계적으로 수립한 장본인이다. 기존의 불교와는 다르게 새로운 불교의 개막을 알린 분이기 때문이다. 홍화두 고문은 승려교육기관인 불학원(佛學院)의 개원과 승려들의 위상을 규정하는 법계(法階) 제도를 완성하는 등 북한불교의 교육과 운영, 불교의 법령과 제도 등에 관한 최고의 이론가인 동시에 교수(敎授)이었다.

1960년대에 40대 후반의 나이로 북한불교계를 대표하는 3대 인물 가운데에 고(故) 박태호 위원장은 인사와 조직부문, 최형민 보현사 주지는 수행과 가람수호 그리고 고(故) 홍화두 고문은 행정과 교육 등의 분야를 맡았다. 홍 고문은 1960년대말 70년대 초에 이미 조직상의 직함인 부위원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조직사업 부문에 참가해오던 조불련은 1972년 9월 4일을 기해 공식 활동을 재개하고, 1976년 7월 26~28일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불교도평화회의에 홍화두 부위원장 등 2명을 일본에 파견하였으나 입국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이때, 일본의 조총련 불교도위원회(위원장 장태성) 지원으로 국제불교기구에 정식 가입하는 회원국의 지위를 얻었다. 조불련은 내부적으로 1980년 9월 27일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11월 25일에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강령 개정과 조직 실천사업 등을 공식 채택하였다. 그리고 1983년 3월 2일 ‘남조선 불교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는 등 남한 불교계와 접촉을 처음 시도하고, 1984년 8월 21일 평양 용화사에 열린 조불련 제8차 확대전원회의에서 불교교류와 종교․문화재관리 등을 위한 국내외적인 조직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홍화두 고문은 1982년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북한 전역에서 추진된 대규모 건설사업에 따라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시행된 사찰 복원과 복구, 수리 등에 있어 사찰의 원형 복구와 수리, 관리운영 등에 대한 사업방안을 수립하였다. 특히 종전(終戰)이후 북한에서 처음으로 열린 ‘석가탄신일 기념법회’가 1988년 5월 5일 묘향산 보현사에서 공식 행사로 열릴 때 불교 전통의식에 대한 이론과 실질적인 의례로 재현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맡았다고 전한다. 또한 홍화두 스님은 김일성 주석이 1991년 2월 평양 광법사(廣法寺)를 방문하자 사찰의 유래를 비롯하여 전각의 이름과 불상 등에 대해 직접 설명한 분이다. 대성산 광법사는 392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영명사 등 평양의 아홉 사찰의 한 곳으로 창건되어 조선 말기까지 중창과 중건을 거듭하다가 한국전쟁 기간인 1952년 7월 11일~8월 29일까지 3차례 걸친 미(美) 극동공군의 평양 소개작전(疎開作戰) 때에 전부 소실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고구려 시대의 건축양식과 기법에 의한 목재와 콘크리트 혼용의 방식으로 1989년에 복원을 시작하여 1990년 12월 완공한 사찰로 국보유적 제164호이다.

분단 이후, 북한식 사회주의 건설에 복무하는 북한 사회에서 불교는 봉건잔재 또는 척결의 대상으로 분류되었고 보현사, 표훈사 등을 비롯해 각지의 현존사찰은 대부분이 ‘력사박물관’으로 개성의 성균관도 ‘력사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982년 초기까지 그나마 규모가 컸거나 문화재적인 보존가치가 있던 사찰들은 거의 복구하거나 수리되었다. 유물문화총국과 같은 국가기관의 주도로 시작되었지만 사찰들의 개건(改建)과 수리, 보수 그리고 문화재의 가치는 홍화두 고문과 같은 승려 등 불교전문가의 조언과 기술을 반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1974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국‧보물급 문화재로 분류되는 것은 평양의 조선역사박물관으로, 불교문화재 등은 묘향산 보현사로, 유교와 과거 문화재들은 개성 성균관(현재, 고려역사박물관)으로 집결시켜 현재까지 보존 관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유물로는 1984년 9월에 묘향산 보현사로 옮겨진 금강산 유점사의 범종이다.

▲ 홍화두 고문과 김일성 주석. 1991년 2월 평양 광법사.ⓒ불교닷컴

북한불교 최고의 학승(學僧)

1980년대 말까지 북한사회의 중심에서 북한불교를 이끈 법등(法燈) 홍화두(洪華斗) 고문은 1998년 8월 법랍 58수, 세수 86~87세로 평양에서 입적하였다. 1910년대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한 홍화두 스님은 29살 나이에 묘향산 보현사로 출가하여 당시 주지이던 향천(香川) 김법룡(金法龍) 스님을 은사로 모셨다.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1995년 출간한 『태양의 따사로운 품』에서는 “(스님은) 일제강점기에 양친을 잃은 후 세속의 인연을 끊고자 29살에 출가하여 법룡 스님으로부터 계(戒)를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여러 자료에서와 같이 대한불교조계종 종정과 고불총림 백양사의 초대방장을 지낸 고(故) 서옹스님과 일본 교토(京都)의 임제대학(현재, 하나조노대학花園大學)에서 동문수학했던 사이로 알려진 분이다. 스님의 은사인 김법룡 스님 등 2~3분의 보현사 스님들도 그 당시 일본에 유학하였다.

법등 홍화두 스님은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과 분단 이후 북한지역에 불교를 오롯이 이은 분이다. 그것은 은사와 상좌체계를 통해 알 수 있다. 2004년 9월 8일 갑자기 입적한 금산(錦山) 황병준 조불련 부위원장, 제5대 위원장을 역임한 심상진 대선사, 1990년대 중반까지 광법사, 정릉사, 법운암 등에서 수행했던 안황계, 어명식, 리동철 스님 등 여러 수행자들이 모두 홍화두 대선사의 제자이다. 또 다른 증거로는 법맥을 이은 출가 수행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독일의 여류 소설가인 루이제 린저(Luise Rinser)가 1980~83년까지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저술한 『북한방문기』에서 “우리를 맞은 그 승려는 깊은 산 중에는 아직도 수도승들이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한 것처럼 북한 스님들의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법등스님은 승가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범패(梵唄)의 어장(魚丈)과 같이 북한식 염불의 처음이자 마지막 승려로 평가된다. 그로부터 조불련 불학원의 염불교육과 실습(習儀)이 행해지고, 경전강독 및 교리 등의 학습체계가 이루어짐으로서 법등스님에 의해 북한불교의 원형(原形)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홍화두 스님의 은사인 법룡스님은 1963년 5월 한 언론을 통해 “일제시대에도 여러 스님들이 시도했다 좌절하고 말았다”며, “완전한 팔만대장경을 번역하여 출판함은 매우 기쁘고 반가운 일”이라고 할 만큼 역경사업과 승가교육, 전법(傳法)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홍화두 스님도 북한 사회과학원 산하의 민족고전연구소(당시 소장 홍기문, 벽초 홍명희의 아드님)를 중심으로 추진된 팔만대장경 역경사업에 실질적인 자문과 더불어 교정 등 감수를 맡았다.

여러 불교종파로 나눠진 남한과 달리 오로지 ‘조선불교도연맹’으로 단일화된 북한불교는 승려교육과 법계(法階), 조직인사 등 종무행정이 박태호 위원장과 홍화두 부위원장, 심상진 서기장 시기에 모두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조불련의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배경에는 영원한 비서로 통칭하는 고(故) 김용순 비서의 역할이 컸다고 윤이상음악연구소 명예회장으로 평양에 머물고 있는 이수자 여사의 전언을 통해 알 수도 있다. 특히 1991년 2월 북한 김일성 주석 앞에서 불교와 사찰에 대해 해설하고 유일하게 안내를 맡았던 홍화두 고문이 중심에 서있었다. 보현사를 자주 찾던 김 주석의 경우에도 사찰에서 별도의 해설을 듣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함경남도 양천사 등을 수차례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였다고 전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아직까지 어떤 사찰방문(현지지도)도 하지 않고 있다.

평양방문이 극히 제한적이던 1990년대 말까지 북한 승가(僧伽)에서도 ‘남법등(南法燈) 북청운(北靑雲)’이란 말이 회자되었다. 평양에 법등스님을 교학승으로 묘향산에 청운스님을 선승(禪僧)으로 각기 선교양종의 상징으로 손꼽아 불렀다. 오늘날 보현사의 청운스님은 살아 있는 부처(生佛)로, 1998년에 입적한 법등 홍화두 스님을 최고의 학승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북한불교의 고승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마지막 고승인 청운 대선사가 곧 세연(世緣)을 다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지금처럼 교착상태에 빠져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남북간 대화와 교류에 남녘과 북녘 고승들의 지혜로운 사자후(獅子吼)가 절실하다.

#다음 편에는 ‘조불련의 중흥조 박태화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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