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의 덕산
남명의 덕산
  • 김규순
  • 승인 2017.08.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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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110.
▲ 남명 무덤

1501년에 경상좌도의 안동에서 퇴계선생과, 경상우도의 합천에서 남명선생이 이 땅에 태어났다.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는 학자 관료인 사대부가 되는 것이 마땅하였으니, 퇴계선생은 관직으로 나아갔으나 남명선생은 재야 선비의 길을 걸었다.

남명 선생은 5세 때 문과 급제한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입성하였고. 15세에는 단천군수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함경도 단천으로 갔다. 이때부터 그는 제자백가・천문・지리・의학・병법 등을 섭렵하였다. 그는 18세에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기묘사화(1519)로 숙부 조언경이 조광조의 일파로 몰려 수난을 당하고 부친은 좌천당한다. 이에 그는 과거를 멀리하고 학문에 정진하기로 한다. 남명은 1530년에 김해로 이주한다. 처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이 김해에 있었기 때문이다. 1545년 모친을 여위고서 합천으로 돌아가 시묘살이를 한다.

합천에서 태어나 한양과 함경도 단천 그리고 김해를 돌아 산청 덕산에 둥지를 틀었다. 살아가는 땅도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해 준 유전자와 궁합이 맞아야 한다. 남명은 합천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 매이지 않았으며, 한양과 단천은 인생 공부를 풍부하게 해 준 곳이었고, 처가인 김해에서 아들을 얻었으나 다시 잃은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인연이 없는 곳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교통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지리산 유람을 수차례 거행하였다. 그에게 삶의 터전이란 하늘을 견디는 공간을 찾는 일이었다. 관직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리라. 하동으로 넘어가는 지리산의 회남재는 남명이 더 볼 것 없다면서 덕산으로 되돌아간 고개이름이다. 남명은 1561년 지리산 아래 덕산에 산천재를 지어 기거하였다. 산천재 뒤편 능선에는 그의 무덤도 있다.

▲ 산천재

그의 덕산생활은 인생의 황금기였다. 50년 인생을 접어두고 새로 시작한 곳이었다. 덕산에서 그는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였고 그곳에서 아들도 낳았으며 제자들을 길렀다. 산청 덕산이야말로 남명에게는 천하의 대지(大地)였던 것이다. 덕산에서 그는 왕을 나무라고 고관대작들을 호통치며 유교가 가르치는 경(敬)과 의(義)에 인생을 걸었다. 종명지가 된 덕산에서 “창문을 열어라 아침 해가 너무 청명하구나” 라며 천지의 기운을 엮으며 하늘로 돌아갔다.

남명은 세상의 도를 일찍이 깨달은 우리의 표상이다. 왕에게 충성하고 관직에 매달리기보다 학문으로 그들을 질책하고 올바른 제자를 가르치는데 성심을 다 하였다. 덕산은 남명의 삶을 완성시킨 공간이다. 덕산은 지리산과 들과 물이 어우러진 이상적인 공간으로 한양이라는 정치적인 공간과 동떨어진 세계였다. 남명은 이곳에서 유교의 이상향인 대동사회를 맛보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풍수실력이 점지한 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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