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사회가 만든다
마음은 사회가 만든다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7.07.20 09:51
  • 댓글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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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158.

아무리 전생에 고승이었어도 갓난아이 때 무인도에 버려지면, 절대로 스스로 불교 교리를 기억해낼 수 없다. 말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교리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윤회·연기·업·지옥·천당·아귀·아수라 등을 무슨 수로 혼자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4성제·8정도·3법인·유식학·말라식·아뢰야식·백정식·진여·여래·부처 등을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번뇌라는 개념을 과연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겸익·혜초·법현·현장·의정 등 수많은, 신라인들과 고대중국인들이 불교를 배우기 위해 인도로 갔음을 기억하라.

참나(眞我 true atman)라는 망상을 할 수 있겠는가? 정법은 고사하고 망상도 하기 힘들 것이다. 망상도 고도의 정신 기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항상 망상 속에 산다. 폐기처분되는 망상은 무수하다. 과학자들의 마음속에는 끝없이 망상이 탄생하고 사라진다. 시간과 공간과 다른 사람들의 검증을 통해 살아남은 망상인 과학적 진리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서양인들 중에, 전혀 읽거나 듣거나 배우지 않고, 스스로 불교용어와 교리를 기억해낸 사람이 없다. 전생의 고승들이 서양에는 환생한 적이 없다는 증거이다. 특히 무한한 자비심과 연민심을 특징으로 하는, 업에 의한 타력윤회(他力輪廻)가 아니라 서원에 의한 자력윤회(自力輪廻)를 하는, 환생하기 싫은 곳에 할 수 없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 환생하고 싶은 곳에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다는, 그리고 위대한 깨달음을 이룬, 동양의 대승보살들 중에 어째서 서양에 태어나 스스로 불법을 기억해내, 서양인들에게 불법을 전해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어찌하여 대승보살들 중에, 종교적 광기로 종교재판·십자군전쟁 등 야만적이고 잔혹한 일들로 만연한 중세암흑기 유럽에 태어나, 불법을 전파하며, 유신론적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을 교화한 사람이 없었단 말인가? 타방불(他方佛)의 존재를 이야기하면서 어찌하여 타방대륙(他方大陸) 보살이 없었는가?

예수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나라에서 인간세상으로 강림하듯, 보살은 외도들을 구제하기 위해 외도들의 세계로 환생해야할 것 아닌가?

하지만 생전에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곳을 어떻게 (자기 마음에) 떠올려 혹은 떠올라 ‘저곳에 한 번 가보자’고 마음을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전지전능한 또는 모든 걸 다 아는 '일체종지적(一切種智的)인 참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참나가 우리 안에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된장찌개가, 어머니가 해주기 전에, 어딘가에 미리 존재하고 있다가 나타난 것인가?

우리가 살인을 하기 전에, 어딘가에 살인이 미리 존재하다가 나타난 것인가? 특정인에 대한 살인이 미리 존재하다가 나타난 것인가? 미래의 살인 행위가 과거에 미리 존재하는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어딘가 미리 존재하다가 나타난 것인가? 아직 그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만난 적도 없어서,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모를 때부터,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미리 존재하는 것일까? 심지어 그 사람이 아직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미리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마음에 미리 존재하고 있는 걸까?

1992년에 73살 스승과 30살 제자가 결혼한 김흥수·장수현 화백 부부처럼, 나이차가 자그마치 43년이나 나는 경우에, 그 사람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미리 당사자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사이가 나빠 헤어지는 경우에, 미리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존재하는가? 어디에? 우리 마음에? 한마음에? 만약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는 미리 특정인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존재하는가?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구현될 사랑과 미움이, 미리 우리 마음에 동시에 존재하는가? 이것은 운명론 또는 숙명론과 어떻게 다른가? 같은 것 아닌가?

사람은 최소한 수백만 년 동안 사회 속에서 살다보니 자기가 사회 속에 사는 동물이라는 걸, 즉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걸 잊었다. 자기 마음이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과 형성되었다는 것을 망각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을, 그리고 공기 속에 사는 사람이 공기를 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리고는 마음은 사회와 전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무리에서 유리된 개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듯이, 사회에서 유리된 개인 역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군사 없는 장군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갓난아이 때부터 무인도에 버려진 아이는 인간의 언어와 문화 그 어느 것도 얻을 수 없다.

설사 그 무인도에 백만 권 소장도서를 자랑하는 도서관이 있다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언어를 배운 적 없는 그 갓난아이에게 모든 책은 암호일 뿐이다. 커서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언어학자들도 사라진 많은 고대문명의 문자는 해독하지 못한다. 상나라 갑골문자, 크레타 상형문자, 마야 상형문자, 수메르 쐐기문자, 이란의 원시 엘람어, 고대 멕시코 올멕 문자, 이집트 와디 엘 홀 문자, 불가리아 시토보 명문(銘文), 이스터섬의 롱고롱고(Rongorongo) 문자 등이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인간세계에서 교육을 받는다면 쉽게 배울 수 있는, 수학·물리학·화학 등 과학서적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이 아이가 회교인에게 구조된다면 아랍어·알라신·이슬람교·이슬람문화를 취득할 것이고, 서구 기독교인에게 구조된다면 유럽어·하나님·기독교·기독교문화를 취득할 것이고, 중국 불교인에게 구조된다면 중국어·부처·불교·불교문화를 취득할 것이다.

당나라 때 구조된다면 당나라 종교관·세계관·우주관을 습득할 것이고, 중세에 구조된다면 중세 종교관·세계관·우주관을 습득할 것이고, 현대에 구조된다면 현대 종교관·세계관·우주관을 습득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즉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육체적·정신적 일들이, 미리 정해지지 않았다면, 즉 결정론이 아니라면, 그의 마음 역시 미리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사회에서 자아를 형성해 간다. 미리 정해진 게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국의 교육과 문화를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일본에 대한 미움도 만들어 간다.

갓난아이 시절에 미국에 입양되어 간 한국아이에게는, 이런 정체성이 없다. 이 아이에게는,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에게 있는, 일본에 대한 미움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정체성이란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다. 전생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본래 정해진 자아가 없다는 뜻으로, 무아(無我)라고 하는 것이다. (본능이 아닌 문화는, 개체가 아니라, 타인과 집단을 통해서 전달된다. 고등문화일수록 그렇다. 예를 들어, 인간의 눈에는 하찮은 기술에 지나지 않는, 침팬지가 돌로 견과를 깨어먹는 것은, 본능이 아니라 성체들에게 배우는 것이다. 하나둘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가 중첩되어 있는 문화는 개체가 절대로 혼자 다 고안해 낼 수 없다. 반드시 배워야만 습득할 수 있다.)

한 가문과 사회와 국가가 쌓아온 문화는 개인을 통해 유지되고 전달되는 게 아니다. 집단을 통해서 유지되고 전달되는 것이다. 지구의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무아(無我)라고 하는 것이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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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2 2018-05-19 14:49:33
선 이런분이 세상에 올땐 자기가 원하는 곳을 정해서 나투신다고 하죠
강교수님도 이런 점이 납득이 않갈거고
노파심님은 오늘 댓글 읽어보니 불교공부 많이 하신분 같고 한데
어쩔덴 그래요!
근데 왜? 욕을 먹을까요? 흠!
불교공부 하다가 하다가 싫증이 날때도 있겠죠
그러면 바람도 휙 쒜고 싶고 자유롭게 나다니고 싶고, 먹고 싶은것도 먹고
세상사람구경도 좀하고 저자거리가 신통방통하기도 하지요
노파심님을 은근 싫어하고 했는데
오늘 댓글보니 이분 괜

2018-05-19 14:35:09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런 비슷한 생각 한적 있어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로 바꿀수도 있겠죠.

근데 만약에 불심이강한 사람이 있다고 치면 그사람이 불교와 무관한 곳에 태어나
불교사상을 꽃 피우기까지가 힘들고 아무래도 필요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는점에 있어서 덜 효율적이겠죠
그리고 어릴때는 뭐든지 약해서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감히 그런 사상을
내비치기나 할수 있겠으며 까딱 잘못하면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겠죠

부처님같은 정도의 분은 벌써 전생부터 엄청난 복덕을 쌓아 오신분이기에
대승에

강짐바다/님 2017-08-03 21:41:30
찻집 앞마당으로 오시오^^

강진바다 2017-07-31 06:07:43
깨달음에 관한 논쟁 및 공부는
인간의 본성적인 것을 자극하기에 흥미롭습니다.
혹시 그런 깨달음은 없다 라는 책 보셨나요?
그리고 님..
참나, 공, 진아, 불성, 마음, 본래면목을 구분하는지요?
섬세하게...
예를들면, 참나란...거짓 나라는 자신의 아를 부정을 통해 도달한 아, 참나

노파심 2017-07-29 11:19:02
이해는 깨달음이 아니다.
불교는 생사해탈이 목적이니, 깨달음을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
궁극의 깨달음은 이해가 아니니, 견성이요, 발견이다. 말 그대로 성품을 보는 것이요.
곧 마음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견성이다.

궁극의 깨달음은 오로지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견성=성품을 보다,(마음을 보다)
깨달음 =마음을 보는 것이다,
깨달음=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보고 성불한다,(直指人心 見性成佛)

불교 경전을 보고 이해가 되면 다음은 견성을 하기 위해서 화두를 드는 것이고
그래야 백방으로 날뛰던 산만하고 헐떡이는 마음이 가라앉고 단 하나 이뭣꼬? 로
돌아감에 마음을 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즉, 하나의 의문에서 마음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는 것이다.

다른 깨달음과 비교 할 수 없는 궁극의 깨달음으로 깊은 잠속에서도 내가 무엇인지
알아야 대오 각성한 것이니, 해탈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고 난 뒤 어떻게 되는지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은 깨달음 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깨달음의 중요함을 종종 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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