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바뀌면 차 맛 달라, 정직한 물이 최선
물 바뀌면 차 맛 달라, 정직한 물이 최선
  • 한유미/한국차심평원장
  • 승인 2017.07.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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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생 한유미의 차와 놀자] (5)보이차에 좋은 물(2)

백두산 하늘샘 물(마법의 물)의 마법과 삼다수(정직한 물)의 진실이 충돌했다. 오지랖은 깊이 있음(넓어야 깊음도 있다)을 구실로, 낄 데 안 낄 데 좋은 일 궂은일 가리지를 않고, 복잡함과 난처함을 만든다. 대체 무슨 문제일까?

삼다수를 찻물 기준으로 선택한 이유는, 여러 종류의 물중에서 차 가공의 사실적 진실(정직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가공의 진실이란 차를 만드는 솜씨, 즉 장점이나 단점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잘 만들면 잘 만든 대로 못 만들면 못난 그대로 드러나게 해주었다. 차 품질(맛)에 미치는 가공의 영향이 커서 가치를 평가하는 데 삼다수가 적합했다. 차의 맛은 곧 가공의 맛이며 가공의 맛은 재료의 맛으로 연결된다. 기준은 혼란과 헛수고를 막아주는 방향의 지표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자연에도 삼다수보다 더 나은 물이 있을 수 있고, 또 시중에 파는 물중에서 삼다수보다 차에 더 좋은 물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차 생활을 하는 데 물을 구하는 것이 어려우면 차를 멀리하게 되고, 불편하면 대중화되기 어려운 점을 우선 생각하여 많이 알려진 물을 선택하게 되었음을 알린다.

백두산 하늘샘은 삼다수가 지녔던 가공의 정직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차를 탄생시켰다. 단순한 새로움을 넘어선 ‘근본적 참신함(차의 질병이 생명으로 되살아난 정도의 혁신적 변형)’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관능으로 차의 향기를 표현할 수 있는 종류는 10여 가지 안팎이다. 한 종류의 차에서 10여 가지의 종류가 한꺼번에 뿜어져 나오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 마법의 물은 수십 가지의 향기를 한꺼번에 다투듯 터져 나온 듯했다. 하물며 풋냄새도 신선한 향기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현실감 없는 그 마법, 변화에 넋이 빠져 몸의 감각도 잊게 만들었다. 맛의 산뜻함과 향기의 현란함이 시공간을 초월케 했다. 그러나 흥분과 놀라운 의식도 잠시, 차 한 모금을 채 넘기기도 전에 어떤 불안감이 엄습했다. 정말이지 깨달음이란 종류도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아무데나 널려 있음을 실감케 했다.

머릿속에서 일어난 불안감의 정체는 정직함과 마법의 충돌이었다. 정직함을 무시하고 마법을 선택하면 차와 사람이 위험해진다. 마법을 버리고 정직(원칙)함을 고집하면 능력을 갖춘 다양성(원칙에 구애되지 않는 개성)과 발전을 포기해야 한다. 정직함을 지키면서 보다 더 좋은 가치의 물을 찾는 일은 심평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임무라고 생각하기에 포기할 수 없다. 이 충돌의 딜레마를 어찌하면 좋을까.

두 종류의 물은 소비자의 입장과 상인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 입장에 따른 사용과 상황에 따라서는 신경전을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 국가와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른 충돌은 늘 일어난다. 지금 논하는 차와 물의 관계도 결국 사람의 이익에 관한 일로 연결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마법의 물과 정직한 물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해야 한다. 마법의 물(백두산 하늘샘)을 사용하려면 정직한 물(삼다수)을 먼저 사용해야 좋다. 마법의 물을 사용하면서 정직한 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큰 곤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큰 곤란이란 당연히 배경지식·정보부족에서 오는 경제적 이익의 손실이다.

정직한 물이 최선, 경제적 손실 줄일 물

소비자의 입장에서 마법의 물로 차를 시음하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상인과 소비자가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거나, 가공과 두 가지 물에 대한 특징을 파악할 정도라면 문제가 될 것 없다. 그러나 단순히 차와 물의 관계를 넘어선 전체적인 관계(가공과 물)까지 참고하여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마법의 물에 대한 관능(官能: 시각, 촉각, 후각, 미각을 이용하여 품질을 평가하는 것)은 필자가 심평수업에서 가르친 물 수업과도 차원과 방향이 달라 가르치지 못했다. 물 수업은 물의 발견에 따라 유동적이다. 따라서 소비자가 차를 구입할 때, 가공의 근원을 흔들어버리는 마법의 물을 사용하지 않아야 손실을 떠안지 않음을 물의 발견자로서 당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상인의 입장에서 마법의 물은 어떠한가? 차를 판매할 때 마법의 물을 사용하면 판매에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어떤 차들은 가공의 큰 단점도 흔적도 없이 장점으로 바꾸어버렸다. 믿어지지 않는 그 위력을 생각하면 영업에 기여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영업을 목적으로 상인이 마법의 물을 사용할 때 소비자와의 충돌 가능성, 염려는 바로 이 상반된 입장에 있음을 알린다.

마법의 물 위력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영업에 활용되면 이익이 크겠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마법의 물로 영업이익은 반칙이라는 생각에서다. 만약 차 품질이나 물에 대한 정보나 차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소비자가, 마법의 물을 사용한 차를 시음한 후 맛이 좋다고 구입했다고 하자. 차를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가 일반적인 물이나 삼다수로 차를 우려마시면, 자신이 맛보았던 차가 아니어서 속았다고 생각할 위험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소비자나 상인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차선생 한유미(韓有美)는

중국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 심배화 선생에게 차심평(Tea Tasting)을 배웠다. 2003년부터 심평과 가공, 차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주해서 《육우다경》과 《동다송·다신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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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 2017-08-04 07:56:31
진실이 결여된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 곁에는 진실이 빠진 지식을 불교라 하고 있다.
차에서 물이 중요하듯,-
불법에 참되고 진실됨이 녹아들지 않는다면 중생을 희롱하는 말장난인 것이다.
진실이 없다면 승가도 아니고,
참됨이 없다면 불법도 아니며,
중생의 고통을 짊어질 마음이 없다면 승복도 벗으시길 바랍니다.

노파심 2017-08-03 21:37:25
조사님들은 언어 학자가 아니다.
어떤 것이 정법이냐 따지고, 캐내어 분별함에는 눈 밝은 깨우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니 먼저 깨치지 않으신 우리 중생들은 불법의 전통을 캐내고, 경전을 해부하기 보다는 부처님이나 조사님들이 전해주고자 하는 그 뜻을 잘 헤아려 공부함이 마땅하다, 조사님들은 언어학자가 아니다.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잘 살펴야 한다.
흰말 엉덩이를 백말 똥구멍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해도 잘하는 것이 우리불자가 공부 잘 하는 것이다.

불성이란?
불성, 본성, 진공묘유, 여래장, 묘용, 마음, 등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본성을 설명함에 있어, 영생이나 영원도 맞지 않다. 영생은 태어난 적이 없었으니, 틀렸고 영원도 찰나의 반대말이므로 맞지 않다.

우주에 두루 한다고 한 표현도 맞지 않다. 간접적으로도 있다, 라고 하거나 없다, 라고 하면 틀린 표현이다 이건 있고 없고 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참나’(眞我)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대상의 반대말이다. 내가 있으면 대상인 네가 있어야 된다.
때문에 참나 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여기에는 너와 내가 없기 때문이니...

물론 자성(自性)도 맞지 않다,
자성은 자신의 성품이란 뜻이니, 자신이 들어가면 옳지 않다.

참나(본성)=열반, 이것 또한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열반은 용(用)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본성에는 용(用)과 체(體)가 함께 있다.
그래서 열반은 본성이 온전히 체로 돌아갔을 때 열반 이라 한다.
이렇게 언어 선택이 오해를 부르기 쉽다.

노파심 2017-07-31 20:35:45
한유미 선생님!
앞마당좀 빌려서 놀아도 될까요?
강교수님이 놀부 영감처럼 문을 닫아걸어서 불자들이 놀데가 없어요...
차에 관해 질문해도 답해 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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