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광 스님, "용기 있는 자만이 참회한다"
혜광 스님, "용기 있는 자만이 참회한다"
  • 김원행 기자
  • 승인 2017.06.23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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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태고종 전남 장흥군 덕양사 주지
출가전 부산 영도 '기남이파' 보스로 33명의 주먹 거느려

 

▲ 장흥군 덕양사 주지 혜광 스님 ⓒ2017 불교닷컴

인생은 '깐 깐의 아쪼(미얀마어로 인과응보의 뜻)'다. 건달 33명을 거느렸던 전국구 주먹출신 혜광 스님(한국불교태고종. 전남 장흥군 소재 덕양사 주지)의 첫 워딩이다. 올해로 법랍(法臘) 21세다. 혜광 스님은 부산 영도를 주름 잡았던 '기남이파' 보스였고 별명은 '무대포'였다. 닥치는데로 때려 부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폭력을 휘두른다고해서 붙은 별명이다. 지금도 살기(殺氣)빠진 주먹은 무쇠덩어리다.

 혜광 스님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16살 그는 전라도 장흥에서 부산 영도로 가출했다. 건달들 밑에서 잡심부름을 하는 속칭 '꼬마생활'로 삼시세끼와 잠자리를 해결했다. 다행히 전과가 없어서 21살에 우여곡절 끝에 현역으로 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 30개월을 꼬박 채웠다.

 군대 시절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국회의원(스님은 기 의원을 사슴 같이 맑은 분이라고 표현했고, 제대후 연락이 끊어졌다고 했다.)과 같은 내무반을 썼다. 제대한 혜광 스님은 다시 건달의 세계로 돌아 온다. 온갖 이권에 개입했다. 33명의 건달들에게 거마비와 숙소를 제공하기 위해 부산시내를 헤집고 다녔다.

 사찰에서 이권관련 문제가 생겼다고 연락오면 어김없이 긴급출동(?)해 주먹으로 해결0했다. 그 와중에도 혜광 스님은 묘한 경험을 했다. 사찰에 함부로 들어설 수 없었다. 사천왕상 앞에만 서면 등골이 오싹했기 때문이다.

 28세 되던 해부터 종교적 갈등이 찾아왔다. 건달 생활을 청산하고 참회의 인생을 살기로 다짐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불교닷컴>은 혜광 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아왔으며, 왜 스님이 됐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혜광 스님은 주저 없이 답했다.

▸인생은 한마디로 뭐라고 생각하나?

- 깐 깐의 아쪼다. 미얀마 말인데 인과응보라는 뜻이다. 기쁨이 있으면 반드시 슬픔이 온다. 인생 장담마라. 온갖 못된 짓을 했더니 위 2/3 절제, 신장 1개 제거, 췌장 상당부분 제거...아! 참 대장도 잘라내고, 12지장도 성치 못하다. 죗값 받고 있다. 항암 치료 중이다. 다행히 늦게나마 부처님법 만나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도피의 목적으로 스님이 된 것은 아닌가? 사실이라면 다른 스님들께 누가되는 결정이다.

- 29살에 정식으로 (태고종)스님의 길로 들어섰다. 집안 대대로 기독교다. 주먹이나 쓰는 내 자신이 싫었다. 역겨웠고, 한번쯤은 참회하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택했다. 스님이 된 결정적 계기는 꿈이다. 어느날 꿈속에 큰 범종이 빙빙 돌아가는 꿈을 꿨다. 범종에 글이 새겨져 있었다. (건달)생활할 때도 사천왕상만 보면 등골이 오싹해서 절 근처도 가지 않았던 나였다. 꿈에 신장님들이 나타나셔서 내 목을 치더라. 알고 지낸 던 큰스님을 찾아가 해몽을 부탁드렸다. 삭발하라했다.

▸행자생활은 힘들지 않았나? 

- 행자생활은 과거 (건달)생활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 같았다. 시키는데로 다 했다. 문제는 못된 습이 빠져 나가기까지 5년이 걸리더라. 종단에 무슨 일(주먹쓰는 일로 추정)이 생기면 큰스님들이 부르더라. 타의에 의해서 호종국장까지 지내야 했다. 업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못된 짓 하는 스님들은 솎아내야 한다는 소신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스님 되니 어떤 느낌이 들었나?

- 처음에는 어벙벙했다. 옷(승복)도 이상하고...여튼 멍때리기 일쑤였다.

▸고향(전남 장흥)으로 돌아와 스님생활을 했는데 동네 주민들 반응이 어떠했나?

- '무슨 저런 놈이 중이라고...비웃음...' 아랑곳하지 않았다. 논두렁에 박힌 큰돌들을 죄다 뽑아 주었다. 시골에 어르신들 밖에 계시는데... 명색이 스님인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지극정성으로 노신도님들을 봉양했다. 소식이 알려지면서 어르신들 자제분들이 한분 두분씩 찾아오더라. 그 때 알았다.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면 통한다는 것을. 얼굴이 바뀌더라. 온화해지더라.

▸스님 되고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

- 스님 되기 전에는 항상 불안했다. 형사들이 또 언제 잡으러 올까. 밤이면 외롭고 쓸쓸했다. 그러나 스님이 된 이후 마음이 안정되더라. 먹고 입고 쓰는 것은 비록 과거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었으나 마음만은 더 없이 편해지더라. 죄를 짓지 않았고, 참회에 참회를 계속했다. 부처님께 하루 3,000배씩 참회의 절을 올렸다. 왜 내가 과거에 그토록 모질고 못된 짓을 했을까하며 부처님께 기도하니 눈물만 나더라.

▸행동은 어떻게 바뀌었나?

-일단 지르고 보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건달)생활할 때 무대포로 불렸다. 참선을 하고부터는 생각 후 행동하게 되더라. 우리 절 옆에 두꺼비바위가 있다. 그곳에서 참선을 했다. 무심결에 주운 돌을 저수지에 던지니 원이 그려지더라. 끝내 잠시 나타났던 원은 사라지더라. 그때 천지공유무(天地公有無)라는 말이 떠오르더라.

▸덕양사 신도들의 신행활동을 알려달다

-신도가 한 200여분 된다. 전라도는 기독교세가 워낙 강해 각 사찰에 불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봉사하는데 때가 따로 있나. 닥치는데로 돕고 또 돕는게 봉사지. 날 잡아서하는 봉사는 봉사가 아니다. 매년 노인들을 위한 잔치는 기본이고 '국태민안 남북통일 호국영령 영산대제'도 봉행하고 있다.

▸불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인생은 공허한 것이다. 망상보다는 이해와 용서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참회하고 또 참회해라. 용기 있는 자만이 참회한다. 참회하면 인생이 확 바뀐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dasan25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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