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이 조계사 주지(재산관리인)를 교체한 뒤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심지어 선원 수좌들의 수행을 지도·지원하는 선원장 마저 총무원장 용퇴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15일 오전 조계사 신도회가 갑작스런 주지 교체로 신도들이 흔들리고 있다며 종단 인사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데 이어, 이날 오후에는 봉화 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 노현스님(중앙종회의원)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용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돌입에 앞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부처님 앞에서
3배를 올리는 노현스님.
다른 선원과 달리 여전히 결제중인 태백선원 수좌들과 함께 있어야할 노현스님이 왜 갑자기 총무원장 사퇴라는 카드를 내밀었을까.
단식에 들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는 노현스님은 총무원장 지관스님에 대해 지도자로서의 능력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제주 관음사 사태를 비롯해 마곡사 사태, 신정아 학력위조 후폭풍 등이 끝나가는데, 이번에는 종도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인사로 또다른 내환을 낳는 등 종단을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현스님은 총무원장이라면 설사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더라도 종단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하고 잡음 없는 인사로 종도들의 신망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 총무원장은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1998년 조계종사태를 일으켰던 정화개혁회의의 핵심인물을 총무부장으로 임명한데 이어 '한국불교 총본산의 상징' 조계사의 주지를 겸임시킴으로써 분란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현스님은 "누구도 종단이 이렇게 운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총무부장 원학스님의 해임도 아울러 요구했다.
조계사 주지에서 해임된 원담스님에 대해서는 주지직에 연연하지 말고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가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노현스님은 단식에 앞서 일부 선원수좌회 구참스님들과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져, 동안거를 앞둔 수좌스님들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현스님의 단식과 관련해 중앙종회 종책모임 무차회는 15일 오후 대책회의를 열어 향후 대처방안과 임시종회 소집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단식에 돌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계종 호법부장 정만스님이
노현스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다음은 호소문 전문.
총무원장 지관 큰스님의 용퇴를 호소합니다 태백산 각화산 선원장 소임을 맡고 있는 저는 선원수좌로서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고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원장이라는 소임 이전에 이토록 참담한 나락으로 떨어진 종단 현실을 두고 좌복만 지킬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종단의 위계가 땅에 떨어지고 삼보가 능멸당하는 참담한 현실이 참회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종단의 청정성을 훼손하는 각종 사건에 대해 총무원장 큰스님이 솔선하여 참회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앙망해왔으며 원융의 기틀을 확립하여 종단이 하루 속히 안정되길 간절히 기대해왔습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만년대계를 책임지고 있는 종단은 화합과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98년 해종 행위에 앞장선 인물을 요직에 앉혀 분란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추락한 종단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할 집행부가 헛된 탐심에 사로잡혀 종도들을 끝없는 절망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지관 총무원장스님의 용퇴를 간곡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일찍이 원적하신 탄성 큰스님께서는 종단이 풍랑을 맞아 흔들릴 때마다 묵묵히 수행자의 근본을 지키며 종단의 버팀목이 되셨습니다. 두 번의 종단 사태 때마다 스님은 종단의 난제를 해결하는 구심이 되었으며 사태가 정리되면 수행자의 본분으로 홀연히 돌아가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러한 자세를 견지한 어른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간절한 호소가 전달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 정진에 들어갈 것이며 추호의 흔들림없이 신념을 지켜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원 수좌스님들을 비롯하여 종도들은 한결같이 종단이 안정되길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직영사찰 인사와 관련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는 해당사찰 주지 스님들 역시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보다 종단을 위하는 마음가짐으로 현명하게 대처해줄 것을 호소합니다. 비록 지난 노고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수행자라면 그 본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리고 대신 가벼운 걸망에 초심을 담아 산으로 돌아가십시오. 불기 2551(2007)년 11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