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불교 최고 범패승…북한식 염불마스터”
“북한불교 최고 범패승…북한식 염불마스터”
  • 이지범/고려대장경연구소장
  • 승인 2017.04.10 10: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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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과 스님들’ ④ 리영호 책임부원과 불교학원

2000년대부터 북한을 자주 왕래했던 분들조차도 아직, 또 우리들이 곧잘 하는 말들 속에서 “진짜, 북한 스님들이 있어요.”, “우리처럼 수행하고 있나요”라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에 대해 자기식대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관성화된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정초나 특별할 경우에 종교에 관한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생각만 해도 이런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종교는 인간의 문제를 넘어 근원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기에 북녘 하늘밑에서도 신앙화된 측면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세기동안 제한된 형태로 북한사회에서 종교를 이끌고 있는 수행승과 불자 그리고 그 분들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쓴이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 혜안 리영호 스님(조불련 책임부원) 사진=이지범 소장.ⓒ불교닷컴

“북한불교 최고의 범패승(梵唄僧)”
“대강백 홍화두 고문의 의식계승”
“염불 등을 교육하는 불학원”
“봉축탑돌이, 살아있는 북한불교의 모습”

음력 사월초파일이 되면, 북녘 사찰에서도 기념 법회와 탑돌이 등 봉축행사가 열린다. 평양 대성산 광법사, 평북 묘향산 보현사, 황해도 구월산 성불사, 내금강 표훈사, 강원도 안변 석왕사, 함북 칠보산 개심사 등 전국사찰과 각종 법회에서 염불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북한식 염불은 ‘중저음으로 조금 느린 듯한 리듬’과 ‘염불 중간에 주의주장을 담은 내용을 랩(Rap)풍으로 더 추가하는 것’이 가장 큰 특색이다.

이러한 북한식의 염불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의해 교류가 모두 단절되면서 거의 다 접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2017년 3월 파면당한 박근혜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내세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그 작동됨이 전혀 없는 페이퍼(paper) 플랜으로 사장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남북 불교교류에까지 박근혜 정부의 통제가 추진되면서 가장 확실하게 일구어 갈 수 있었던 불교적 동질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 초파일을 기해 남과 북녘 하늘밑에 울려 퍼질 고즈넉한 산사의 염불 소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북한불교 최고의 범패승

오늘날 북한식 염불의 대가는 혜안(慧眼) 리영호 스님이다. 현재, 조불련 중앙위원회 책임부원(部長)의 직책과 선사(禪師)의 직위를 가진 혜안 스님은 북한의 승려교육기관인 불학원에서 염불을 배우고 익힌(習儀) 1기생 출신이다. 현재, 북한불교 최고의 범패승(梵唄僧)으로 꼽히는 혜안 스님은 1965년 량강도 중흥사(重興寺)에 설치되었다가 1989년 12월 평양으로 이전한 불학원의 학인으로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염불 승려이다.

북한 조불련에서 키가 제일 큰 혜안 스님은 신장이 1m78cm로 인해 ‘장대스님’으로도 불린다. 법랍이 25년 남짓한 혜안 스님의 나이는 약 55세 전후다. 고향 등 출신지나 경력사항이 알려진 것은 없다. 필자는 2000년 10월 9~13일까지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 때 남측 참관단으로 평양 조불련 청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고려항공이 평양과 김포공항을 직항하면서 43명의 남측 참관단이 방북해 이뤄진 일이다.

▲ * 혜안 리영호 스님(앞쪽 키가 큰사람) 사진=이지범 소장ⓒ불교닷컴

혜안 스님의 은사는 학림당(鶴林堂) 박태화 스님이지만, 염불은 불학원에서 법등(法燈) 홍화두 고문으로부터 어산범패(魚山梵唄)를 직접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홍화두 고문은 1998년 3월, 박태호(화) 위원장은 2005년 11월에 각각 입적하였다. 법등 홍화두 고문은 1940년을 전후하여 일본 교토의 임제불교대학(현, 하나조노花園대학)에 유학했던 학승(講伯)이다. 또한 홍 고문은 1991년말 완공된 평양 광법사를 이듬해 2월에 방문한 김일성 주석에게 사찰을 직접 소개하고 바로 옆에서 안내했던 북한 승려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기까지는 조불련 고문이던 법등 홍화두 스님이 주로 염불 강의와 진행을 맡았으나, 그 후로는 조불련 부위원장인 연암(蓮庵) 리규룡 대선사가 1990년대 말까지 주관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혜안 리영호 스님이 염불의식을 대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혜안 스님은 ‘북한식 염불의 마스터(master)’라 불린다. 2010년 이후에는 묘향산 보현사, 금강산 표훈사, 칠보산 개심사, 개성 영통사, 평양 광법사 등 각 사찰별로 주지스님이나 별도의 부전스님이 명절법회 등 염불의식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북한불교의 각종 의례의식은 혜안 리영호 스님을 중심으로 행해진다.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주관하는 행사는 물론, 대표적인 법회의식 등에서 염불과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司會)는 혜안 스님이 맡고 있다. 혜안 스님이 직접 맡은 염불의식은 먼저, 분단이후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하여 2003년 3월 2일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가진 ‘3.1절 기념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꼽을 수 있다. 이 합동법회를 통해 처음으로 북한식 염불이 남측 언론과 불교계에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2007년 7월 22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조불련 전국신도회와 조계종 중앙신회가 합동으로 개최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조국통일기원 제1차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등과 2010년 1월 31일 평양 조불련 청사 법당에서 조계종 총무원 집행부와 북측 스님들이 공동으로 가진 방문기념 법회에서 혜안 스님이 직접 목탁을 잡고 집전한 사례가 있다. 또한 혜안 스님은 2015년 11월 3일 개성 영통사에서 열린 북측 조불련과 남측 천태종간의 합동법회에서도 북측 사회와 집전을 맡았다.

그간 공식적인 행사와 법회에서 염불의식을 주관해온 혜안 리영호 스님의 염불은 남성 특유의 중저음을 기본으로 하여 다소 빠른 느낌의 행진곡 리듬의 목탁소리에 맞추어진다. 북한에서 흔히 사용하는 목탁은 공장에서 기계작업으로 미끈하게 만드는 남한의 목탁과 다르다. 조각칼 등을 사용해 직접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목탁 속이 다 파여지지 않고, 반타원 형태로 물고기 모양에 가깝도록 의미적 형상을 많이 가미하였다. 이와 같이 거칠고 투박한 목탁에서 나는 울림소리도 남성적 음색을 띄고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의식에서 반드시 들어가거나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 후반부에 선전선동적인 가사(주의주장)를 1분가량 또는 5~6줄 분량의 내용을 랩(Rap)식의 염불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특이한 형태이다.

남성중심의 북한식 염불

지금, 북한지역에서 행해지는 염불을 한국불교와 비교해 보면, ‘회심곡’(1978년)과 ‘금강경’(1989년) 등 1970년대말 카세트테이프 등으로 발표되고 널리 알려진 김성공 스님의 다소 무겁고 장중한 음색과 리듬이 비슷하다. 개인별 음색은 취향차이가 크기 때문에 딱히 음색이 좋다의 기준이 모호하겠지만, 북한식 염불은 ‘낮고 무거운 듯한 거친 중저음의 남자소리’가 전형을 이루고 있다. 조금 굵고 묵직한 느낌의 음색으로 나타는 북한식 염불의 전승은 지금까지 남자들만이 염불을 하는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남한의 기존 염불가사(元曲)에 비해 리듬이 강화된 점이나 파워풀한 랩이 가미되어 다소 이질적인 느낌으로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주의주장을 반영한 의식 형태와 더불어 비구니스님 등 여자에 의한 염불이 없기(設行)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 평양 조불련 내에 있는 불학원 건물. 사진=이지범 소장.ⓒ불교닷컴

불교 수행방법으로 흔히, 경전을 익히는 교학(經學)과 참선수행을 하는 화두선(話頭禪) 그리고 기도와 주술적인 힘(呪力)을 키우는 염불(念佛) 등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말로 하는 언어 그 자체로 보았던 고대인들에게 주력은 불행이나 재액을 막아 주는 신비한 힘으로까지 믿었다. 주력을 포함한 염불은 오늘날에도 각종 의례의식으로서 정착되어 구성원들의 행동과 말 등을 하나로 통일시키고 연결하는 주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분단 반세기에 걸쳐 단절되고 이질화된 남북한 불교의 가운데 가장 공통적인 측면이나 통합의 요소에서도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염불이다. 각종 법회와 행사에서 사용되는 염불을 통해 하나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범패인 <영산회상>이나 북한 최고의 무용수로 알려진 최승희(북한 인민배우, 1911.1124~1969.8.8)의 승무(춤) 등 불교음악과 무용이 북한의 사찰과 불교계에 전승되지 않는 것은 다른 점이다.

북한식 염불은 불학원(佛學院)을 통해 모두 전승되는 교육제도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이전의 고저장단을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염불은 남북한 불교의 공통분모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고 박태호(화) 조불련 위원장이 1995년 5월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불교 대표자회의에서 “(북한에서도) ‘석문의범’에 따라 염불과 찬불가 등을 가진다”고 말한 바 있지만, 오늘날 북한의 염불 등 불교의례가 중국 위(魏)나라의 조자건(曺子建)이 ‘물고기가 노는 모양을 보고 범패를 익혔다’하여 이를 어산(魚山)이라고 했다는 유래와 우리나라에 진감국사가 옥천사, 즉 오늘날의 하동 쌍계사에 전하였다는 범패의 기원과 전승, 우리나라 범패승의 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 염불하는 혜안스님(2005년 평양 법운암). 사진=이지범 소장.ⓒ불교닷컴

북한의 고 김일성 주석은 1964년 7월 11일 문학예술부문 종사자에게 △ 판소리는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투쟁을 일으키지 못하므로 배제시켜라. △ 조선 사람의 목소리는 원래 고운데 듣기 싫은 탁성(濁聲)을 낸다. 발성과 민족 악기에서 쐑소리(탁성)를 없애라. △ 서양음악을 배운다 하더라도 우리 음악을 먼저 배워라. △ 서양 악기로 조선 곡을 하지 않으면 인민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교시를 내려 북한 음악풍토가 달라지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로부터 북한에는 주체철학(主體哲學)이 강화되는 한편, 악기를 적극적으로 개량하고 우리 음악의 탁성이 배제되는 등 서도식(경기민요풍)의 소리가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북한의 소리문화는 판소리가 양반 지배계층의 감정을 북돋운다고 하여 부르주아(bourgeois) 음악으로 평가되고 장단에서도 진양조와 같이 느리고 처진 부분이 기본이어서 인민의 정서나 미감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해 판소리는 현재 전승되지 않는다. 불교 음악에서도 이러한 점들이 반영되었고, 불교에서부터 파생되어 서도 민요(西道民謠)화된 산염불과 잦은염불, 평양염불, 개성염불 등이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서도 민요는 불교음악이 세속화되는 과정에서 각 지방마다의 특색 있는 창법(語法)으로 다듬어지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그러한 어법(唱法)이나 염불은 그 지방에서 활동하던 무속적인 음악 형태와도 일치하는 등 민중화된 소리문화를 나타내고 있다.

평안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불리는 민요인 서도소리 가운데서도 ‘산염불’과 ‘잦은염불’이 가장 유명한데, 해방 이전의 ‘산염불’은 선소리꾼이 앞에서 먼저 부르는 ‘메기는 소리’인 독창 부분이 ‘받는 소리’인 제창 부분과도 사설의 길이가 거의 비슷해졌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와 불리는 것은 독창 부분이 제창 부분보다 세련되고 길어진 것이 달라진 점이다. 이러한 형식(唱法)이 ‘랩풍으로 주의주장’을 더 넣는 북한식 염불에 영향을 주었거나 조금 반영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염불 등을 교육하는 불학원

북한 승려들이 염불의식 등 모든 교육은 불학원(佛學院)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만 종교기관의 전문 인력은 북한 교육성에서 1987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에 비공식적으로 ‘종교학 강좌’를 개설하였다가 198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을 기점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의 ‘종교학과 개설’이 공식화되었다. 종교학과의 학생 수가 개설 초기 5명이던 정원이 20명으로 늘어난 것도 이때부터이다. 교육과정은 5년으로 해마다 인원을 선발한다.

도제 양성과 역경사업 등을 목적으로 3년제로 개설된 불학원은 조불련 중앙위원회 산하의 교육기관이다. “해마다 불교 전문교직자들과 승려들이 양성되는 등이 순조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종교역사를 비롯하여 경전이론 등 불교교리와 염불기술강습 등 불학원의 교육방식은 ‘한 단위에서 모범을 창출해 놓고 그것을 본보기로 하여 일군들에게 정치사업 방법이나 방식 또는 선진기술의 창안이나 도입 등을 가르치고 실무 수준을 높여줌으로써 모든 단위에서 그 모범을 본받도록 하는 학습방법’인 방식상학(方式相學, mode learning)을 통해 조불련의 예비 승려들을 양성하고 있다.

▲ 내금강산 표훈사 봉축탑돌이(1989년 5월). 1989년 5월 사월초파일을 기해 내금강산 표훈사에서 행해진 ‘봉축 탑돌이’ 행사 장면. 북한에서 출판된 《Buddhist Temples in the DPRK》(1989년刊) 뒤표지 갈무리. 제공=이지범 소장 ⓒ불교닷컴

불학원의 교육은 불교교리 등은 선배 스님들이 전담해 가르치고, 역사 등 다른 과목은 사회과학원 등 다른 연구기관의 인사들을 초청해 진행하고 있다. 3년 과정의 불학원은 매기수당 30명 내외의 인원으로 구성하여 역사(불교사 등), 불교의식 등은 1년차에서, 조선불교사, 교리, 의식, 문화(풍습)과 금강경, 반야경 등 경전해설, 철학 등은 2~3년차 과정에서 진행한다. 또한 일종의 지방순회강습소라 할 수 있는 불교강습소에서는 6개월 과정으로 10명 이내로 조직되어 역사(불교사 등), 불교의식 등 불학원의 1년차 과정을 준용하고 있다.

불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제공하거나 선정한 교재를 사용하고, 염불 등 불교의식에 관한 것은 구전(口傳)강의를 통해 전수를 받거나 외우고, 필사 등을 통해 경전 내용을 학습한다. 북한이 1949년 한자 사용을 전면 폐지하고 한글전용의 원칙을 세움에 따라 불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도 모두 한글화되었다.

불학원은 중국 후한(後漢, 25년~220년)시대에 불교경전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도장(道藏)을 그 기원으로 하지만,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경학 강설당(講說堂)과 조선 인조에서 숙종 사이에 완비된 사찰의 강원(講院) 체제를 전승한 것이다. 근대 중국이나 북한의 불학원은 남한의 승가대학(옛 강원)과 거의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 나라(兩國)의 불학원은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으로 인하여 새로운 시대의 승려육성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1922년에 세워진 중국 무창불학원(武昌佛敎院) 등을 본떠서 만든 불교교육기관이다. 경남 합천 해인사의 전각이름이기도 한 경학원(經學院)은 그 이름이 불학원과 유사하지만 교육기관의 성격보다는 경전 등 불경을 보관하는 도서관의 기능에 국한되어 있다.

북한의 불학원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1965년 량강도 삼수갑산 중흥사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1989년 12월 평양 용화사와 광법사를 거쳐 현재, 조불련 청사로 이전하였다. 평양으로 이전된 불학원을 통해 배출된 인원은 기수당 20~30명을 기준으로 할 때 약 150여명에 이른다. 이중에서 종교기관에 배속되지 않은 경우나 사망 등 자연적으로 제외된 숫자를 뺀 인원이 조불련 등 불교기관과 각 사찰에서 종교업무를 맡고 있다.

현재, 조불련 최고의 염불습의사(習儀師, master)는 혜안 리영호 스님과 함께 조불련 부위원장인 연암 리규용 스님 등이 불학원 1기생으로 어산장(魚山長)과 같은 범패승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리고 개성 영통사 현 주지 혜명 스님과 영통사 전 주지 정각 스님, 금강산 표훈사 주지 진각 스님, 평양 광법사 주지 수덕, 평양 정릉사 주지 룡산, 평양 법운암 주지 대평 스님 등이 불학원 2~4기생으로서 범패 승려의 활동과 사찰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북한불교의 현대적인 염불과 불교의식은 1989년 5월 사월초파일을 기해 내금강산 표훈사에서 행해진 ‘봉축 탑돌이’ 행사 장면이 북한에서 출판된 《Buddhist Temples in the DPRK》(1989년刊)에 뒤표지로 실린 바 있다. 염불 등 불교의식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불학원과 또 이러한 의식이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사찰이 북한 전역에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북한 불교가 살아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음 차례는 ‘청담 유인명 책임부원’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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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라 2017-04-17 10:46:11
믿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못믿어 2017-04-12 12:43:40
중이면 삭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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