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조
명명조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7.02.28 15:31
  •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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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140.

명명조(命命鳥)라는 새가 있다. 한 몸에 머리가 둘 달린 새이다. 경량부가 한 근(根 감각기관)에 의해서 두 식(識)이, 즉 거친 식과 미세한 식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을 이 '일신이두(一身二頭)' 새에 빗대어 설명했다.

경량부의 이 설은, (현대심리학에 의한) 무의식의 발견에 비견되는 위대한 발견이다. 이 이론을 도입함으로써 경량부는 멸진정에 든 사람의 혈액순환, 호흡활동, 체온유지를 멋지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멸진정(滅盡定)에 든 사람에게서 표면의식은 사라질지라도, 신체를 유지하는 미세한 의식(즉 자율신경)은 여전히 작동함으로써 생명이 유지된다는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적으로는 멸진정 대신에 코마에 빠진 사람이나 마취상태의 사람을 생각하면 된다.

대승불교의 유식사상은 알라야식을 도입하였다. 일체 기억을 저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기억이 미래행(未來行)을 일으키는 종자가 된다는 점에서, 알라야식의 발견은 위대한 발견이다.

하지만 이 식(識)을 '모든 행을 주시하는 식(識 의식)'으로 이해하면 잘못된 견해이다. 대승에서 인정하듯이 멸진정에 든 사람은 (미세한 식을 제외한) 일체 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미세한 식은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느끼고 지각하고 인식하고 사유하는 현재의식이 사라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주시하는 식'도 사라진다. 일체를 주시하는 식은 힌두교 투리야(turiya)에 해당하며, 이는 브라흐만(Brahman: 범아일여의 梵)의 식으로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항상 작동하는 식이다. 수많은 개체 의식의 생멸에 관계없이 항상 작용하는 식이다. 이런 식(識)을 주장하면 힌두교 참나(아트만)주의자가 된다.

아트만(atman)은 본시 ‘숨(breath breathe)’이라는 뜻이며, 고대인들이 숨을 신비하게 생각한 이유는 호흡의 메커니즘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신비는 무지에 기초하며, 신비감 자체가 하나의 대단히 매력적인 ‘인식론적 감정’이므로, 신비감은 설사 무지가 소멸하더라도 저항을 하며 소멸을 거부한다.) 고대인들은, 심장과 혈액의 기능을 몰랐으므로, 호흡의 기능을 알 리 만무했다. 산소를 실어 나르는 적혈구와 헤모글로빈의 기능을 알 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숨을 생명이라고 생각했고, 숨이 눈에 안 보인다는 점에서 숨을 신비한 기(氣 prana)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도교와 선가(仙家)에서는 ‘숨을 조절하면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는 생각이 생겨났다. 이런 사상이 서양에는 없고 동양에만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종교인들이 이런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는 이유라는 점에서, 밈(meme)의 일종인 (종교)문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깊은 영향력을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인간은 밈의 전달수단’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신이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사회에 의해 조성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관성적인 좀비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깨어남’이다. 여기에는 지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불교가 지혜의 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유일한 종교라는 점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이다. 하지만 불교적 지혜가, 차가운 지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대한 따뜻한 자비를 키운다는 점에서, 불교는 우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이다.

경량부가 도입한 미세한 식(識)은, 불교의 무아론이 옳다는 것을 더욱 뒷받침한다. (부처님이 설한 대의를 세세히 입증해야 하는 것은 후학들의 의무이다.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현대과학자들이며, 이 점에서, 이들은 불제자들의 환생이다. 부처님은 총론을 이야기했고 후학인 우리는 각론을 이야기한다.) 우리 마음 안에 여러 개의 식(識)이 있으나, 그 여래 개의 식(識)들이 서로 주종관계가 아니므로 무아이다.

이 점을 착각한 사람들은 미세한 식이 주인이라거나 미세한 식과 거친 식 뒤에 제3의 주인의식이 있다고 주장하나, 설사 주인의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멸진정이나 깊은 잠이나 기절이나 코마상태에서는 주인의식이 작동하지 못함을 보면, 그 상태에서는 더 이상 주인이 아니므로, 주인의식 이론이 잘못된 이론임을 알 수 있다.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의식은 더더욱 아니다.

대승이 무구식(無垢識)·백정식(白淨識)·여래청정심(如來淸淨心) 등의 청정한 마음을 설한 것은, 모든 것을 주시하고 감독하고 통제하는 주인의식으로의 식이 아니라, 우리가 수행을 통해 청정하게 될 수 있는 근거를 세우기 위해 도입한 식일 뿐이다. (식(識)은 연기(緣起)이다. 예를 들어,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떠오를 뿐이지, 누가 그 생각을 마음의 영상에 올린 게 아니다.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떠오를 뿐이다. 생각과 식은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이 어울려 일어나는 연기(緣起)이다.)

불교적 우주에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있고 또 영원히 유지된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선악 두 성품이 있다는 걸 말한다. 물론 이때의 선악 두 성품은, 가능태(可能態)로서의 성품이지,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영생불멸(永生不滅)·불생불멸(不生不滅)의 실체는 아니다. 그리되면 선악이원론(善惡二元論)으로 전락하며, 이는 중도연기론이 아니라, 양극화(polarized)된 변견(邊見)이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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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 2017-03-07 03:36:51
탁견입니다.

거울이~ 2017-03-04 15:37:01
필수!

아~참! 2017-03-04 15:33:06
참/나가[참나식(識)] 아니라서 미안해요^^

어느 식에서/ 2017-03-04 15:29:21
나라는 몸과[물질=명색]+식에는
여러가지 몸에
여러가지 식이 있는데~
이글을 쓰야 겠다고 한 식(識)에서 올린글!

어느 식에서 2017-03-04 00:18:52
본문의 글은
어떤 식에서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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