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신은 여러 가지 생각 중에 최선의 생각을 택하는 것일까?
"이 세상은 가능한 세상 중 최고의 세상이다." 이 말은 위대한 긍정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발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분개한다. 어떻게, 이 고통스러운 세상이 그리고 악이 만연한 세상이, 가능한 세상 중 최고의 세상이 될 수 있느냐고 씩씩댄다. 그런데 꼭 그리 열불을 낼 일만은 아니다. 제 설명을 들어보시라.
세상은 완전하지가 않다. 그렇다면 초기상태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니면 (불가사의하게도) 중간에 불완전해졌던지. (전자의 예로는 불교가 있고, 후자의 예로는 기독교가 있다. 바다보다 깊은 신앙심을 지닌 신도들 의견에 의하면, 신은 전지전능하므로 완전한 걸 불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
어떤 경우이건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 완벽하지 않은 조건하에서의 가장 나은 상태 역시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능한 세상 중 최선일 가능성이 영(0)인 것은 아니다.
수학에 존재정리가 있다. 특정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놀랍게도 많은 경우에, 그게 어디 존재한다는 것은 모른다(가장 유명한 예로 '리만 가설'이 있다). 또 그 성질을 다 알 수도 없다. 특정한 성질을 갖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증명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필연적으로 갖는 여분의 성질은 모를 수 있다. 이런 일은 수학 밖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신의 속성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완전한 신에 대해서 완전하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피조물 인간은 언제 신에게 갑자기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 이 점에서 '신의 섭리'란 절망한 인간의 자조적인 한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욥기가 가장 이른 한탄이자 섭리이다. 하지만 홀로코스로 된통 당한 많은 유대인들은 욥의 관점을 폐기처분하고 신을 버렸다.
이 세상의 바로 전 (불완전한) 단계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 중에서) 최선의 세상이 지금 세상일 수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최선이 아니더라도 좋다. 최선과 차이가 충분히 작으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감수 감각작용은 그리 정밀하지 못해 유격(idling)이 있기 때문이다. 유격을 넘어서도 좋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너그러움이 있으므로 지나치지만 않으면 된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자유의지가 설 틈이 없다. 그 (완벽한) 세상을 변화시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세상은 재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전단계로부터 만들 수 있는 다음단계의 (최선의) 세상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흔히 사람들은 최선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여럿일 수 있다. 하나라 고집한다면 왕정이나 전체주의가 될 위험이 있다. 어느 하나를 정할 수 없어 복수의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그럭저럭 증거가 된다. 점심으로 짜장면인지 짬뽕인지를 결정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결정에 따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여러 가지 최선의 상태 중 어느 상태로 이행해갈지는 자유의지의 대상이다.
완벽한 세상이 불완전한 세상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불완전한 이 세상은 처음부터 혹은 처음이 없는 시간 속에서 항상 불완전했던 게 맞다.
초기치인 생(生)이 최종값인 사(死)로 끝나는 걸 인정하면, 우린 완전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 세상이 가능한 세상 중 최선의 세상이라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발끈하지 않아도 된다. 불완전한 부모 자식 가족 친구 동료 배우자와 최선을 다해 같이 살 의지가 생긴다.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열악할지라도 최선의 환경으로 만들 의지가 생긴다. 가장 시급한 것은 불완전한 자기자신과 최선을 다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의 꼬리가 보인다.
이게 가능한 세상 중 가장 나은 세상이라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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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사후에도 인간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수만년이고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예수는 불과 2천년전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 2천년 동안에도 거의 서양의 유럽에만 머물러 있었다. 기독교에서 인류는 오직 예수를 믿고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한다.그렇지 못한 인간(영혼)들은 전부 영원히 불타는 지옥속에 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태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예수를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죽은 수 많은 인간(영혼)들은 전부 영문도 모른채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태어나자 마자 지독한 기아에 시달리다가 죽은 저 수 많은 아프리카인들 은 단지 예수를 몰랐다는 이유로 죽은 후 에도 또 다시 이번엔 영원히 불타는 지옥속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한다. 기독교의 교리로 보자면 우리들이 갈 곳은 오직 천국과 지옥 이 두곳 밖에 없다.예수를 몰랐던 믿지 않았던 윤회가 없는 이들이 갈 곳은 오직 지옥이라는 한 장소 밖엔 없다. 도대체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 될 수 있는 말인가? 그리고 사람마다 짐승마다 천차만별로 태어나는 이 존재들의 불공평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광활한 우주속에 태양계가 오직 우리가 사는 한 곳 밖에 없다는 기독교적인 우주관도 이 넓은 우주에 비해 너무 좁은 의식수준이 아닌가? 상상을 해보라. 저 드넓은 바다속에 오직 한마리의 물고기만 살고 있다는 상상을...
이것이 이 광활한 우주속에 태양계가 오직 우리가 살고있는 한 곳 밖에 없다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