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법난은 정권차원의 불교탄압도 문제지만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한 언론에 의한 불교학살이었습니다"
10.27 법난 27주년을 이틀 앞둔 25일 아차산 영화사에서 당시 총무원장직에 있으면 23일간 서빙고 지하실에서 시달림을 받은 월주스님은 강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스님은 "10.27 법난은 명백하게 신군부가 소위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불교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만큼 정교분리 원칙에 벗어난 불교계 내정간섭이자 인권적인 면에서 불교 탄압"이라고 법난의 성격을 규명했다.
스님은 이날 오전에 있었던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럽다"면서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율적인 방법을 통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외부세력이 사회정화 명분으로 1,700년 역사를 가진 불교를 탄압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월주스님은 1980년 10월 27일 새벽 신군부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서빙고 지하실에서 23일간 고초를 당하다 비위사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져 훈방됐으나 총무원장직을 강제로 내놓아야 했다.
스님은 "(신군부가)원인을 따져보지 않고 잘못도 없는데 불교계에 상처준 것도 잘못이지만 계엄령하에서 국보위 등이 불교계에 엄청난 비리가 있는 것처럼 흘려 이를 방송과 신문들이 3개월 가량 매일 톱기사로 보도한 것은 언론에 의한 학살이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당시 정권과 언론의 보도 때문에 불교계 위상은 추락했으며 신도들의 불교이반이 심해 100만명이상이 떨어져 나가는 등 불교계가 휘청거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스님은 "종교의 생명은 청정성과 도덕성인데 언론의 학살은 그해 10월 30일 3만여명의 군인들이 심야와 새벽에 법당안방까지 군화발로 유린한 것보도 더 큰 상처였다"고 주장했다.
서빙고 강제 연행 및 23일간의 조사에 대해 스님은 "서빙고에 감금당한 채 수사를 한 지 10여일이 지나서 강제로 총무원장직을 물러나게 됐으며 물리적 고문은 없었으나 정신적 고문을 받았다"며 "총무원장 중심주의를 종단 내에서 결의해 그해 4월부터 조계사에서 중앙종회 구성, 총무원장 선출등의 절차를 거치는 등 이미 6개월이상 화합하는 분위기였음에도 갑자기 정권은 10.27법난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는 환부도 없는 성한 사람을 데려다 수술한답시고 개복한 다음 허겁지겁 봉합하고서는 손을 뗀 꼴"이라며 당시의 정권을 강하게 성토했다.
스님은 "그 후유증으로 불교계는 지난 27년동안 회복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며 "비록 정권은 여러차례 바꿨지만 현 정부 차원의 배상과 명예회복 방안을 현 총무원측과 협의해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신군부의 발표대로 꼭두각시처럼 보도한 언론에 대해서 스님은 "당시 강압에 못이겨 그러한 보도를 했더라도 지금은 그 때의 잘못에 대해 언론들은 참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 등의 책임을 물어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며 10.27법난의 직간접적인 책임자로 지목된 전두환씨를 백담사에서 받아 준것에 대해 스님은 "전두환씨를 참회시키기 위해 받아줬던 것이기 때문에 당시 반대하지 않았다"며 "불교는 자비와 관용의 종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니들 말 속에 니들의 실체가 들어있다.
거울이나 보고 찌질거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