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과 현각이 떠난 자리
송담과 현각이 떠난 자리
  • 우희종/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 서울대불자교수모
  • 승인 2016.07.31 17:21
  •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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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커다란 변혁 앞서 늘 사전 조짐이 있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만행)》’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푸른 눈의 승려인 현각 스님이 한국불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한국불교를 떠나겠다고 일갈했고, 이에 교계만이 아닌 여러 일반 언론이 다루면서 주목받고 있다. 조만간 국내 불교계에서는 그에 대한 반론이나 지적도 등장할 것이 예상된다. 종교집단이 지닌 단체문화에 근거해 절 집안으로부터의 직·간접 문중 압력도 그에게 전달 될 것이다.

송담과 현각

이번 현각 스님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2년 전 인천 법보선원 용화사 송담 스님 탈종 사태가 있다. 선종을 표방하는 한국불교에서 간화선을 진지하게 조금이라도 수행한 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한국 선수행의 상징적 수행승이다. 한국 불교의 '마지막 선승'으로 꼽혀온 90세에 가까운 송담 스님이 “수행가풍이 다르다”는 말을 남기고 굳이 평생을 몸담아 온 조계종을 탈종했다.

수행가풍이 다르다는 짧은 한 마디의 무게와 내용은 이번 현각 스님이 한국불교에 대하여 지적한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송담 스님의 지적은 조계종단의 비불교적 상황과 이를 감추고 있는 종단의 허구성을 상기시켜주었고, 이는 깨어있는 신도들이 모여 타락한 조계종단에 의해 굴절된 불교가 전파되는 것을 바로 잡고자 ‘바른불교재가모임‘ 단체를 결성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단 내부로부터의 자성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일 년 남짓한 ’바른불교재가모임‘의 활동은 종단에 비판적인 언론 매체와 함께 종단으로부터 해종 세력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을 뿐이다.

이처럼 현각 스님이 지적한 내용은 한국불교에서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조폭과 같은 위계질서 속에 돈만 아는 집단이자, 신도들의 이타적 신앙으로의 유도라기보다는 개인 기복(복 내지 깨달음의 형태로)으로 고착화시켰다. 승려들에 대한 굴종으로 길들인 신도들 위에 군림하는 승려들의 모습은 조금이라도 깨어서 이를 바라보는 이의 낯을 붉히게 만든다. 구법승으로서 불교의 진리를 찾아 순수한 마음으로 낯선 외국까지 찾아온 현각 스님이 이를 느끼지 못할 리 없다. 평생을 국내에서 수행한 노령의 선승조차 자신이 속했던 조계종단을 떠나는 현실 아닌가.

현각과 한국불교

송담 스님 탈종과 비교할 때, 흥미로운 것은 현각 스님의 발언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의외로 뜨거운 점이다. 한국불교계의 위상에 있어서 더 말할 나위 없는 송담 스님의 탈종에 대해서는 일부 종교 담당기자나 언급하고 일반인들은 물론 불자들도 모르고 지나간 것에 비해 현각 스님은 일반 정시 뉴스시간에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 있어서 현각 스님이 떠나는 것이 화제인 것일까? 아니면 조계종으로 상징되는 한국불교가 그리 무너져 있다는 것이 화제인 것일까? 비록 그 둘은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히 후자다. 그 점에서 송담 스님은 선종으로서의 한국불교의 전통을 상징한다면, 현각 스님은 한국 불자에게는 한국불교와 승가의 현대적 위상이자 일반인들에게는 하버드를 졸업한 전형적인 엘리트 백인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 온, 일종의 민족적 우월성을 보여준 사례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을 졸업한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외국인이 승려로 국내 왔다면 우리가 그리 환호했을까 생각해 보면 된다).

송담에 침묵하고 현각에 이토록 반응하는 우리사회의 모습 속에 한국불교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무리 종단이 참선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간화선을 표방해도 그런 전통적 불교는 죽었다는 것이고, 이는 송담스님 탈종에 있어서 일반 사회뿐만 아니라 승가도 침묵한 것으로부터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속을 떠나 우리는 한국불교가 마치 현대사회에 던져 줄 그 무언가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 점이고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 현각 스님의 등장과 퇴장에 대한 한국 사회의 뜨거운 반응에서 나타난다.

승려만의 문제인가

내용 없는 껍질에 불과한 한국불교의 모습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국내 불자 대학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외치며 대회를 열었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그 자리에서 타락하고 파계승이 활보하는 한국불교 현실을 언급하며, 내용이 없는 세계화란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지적한 발표자는 필자 개인 외에는 없었다. 현각 스님의 지적을 그동안 많은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과연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뻔히 보이는 한국불교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하며 포장하기 바빴던 것일까. 현각 스님의 비판에 따르면 스스로 알건 모르건 그런 학자들 역시 기복불교로 전락한 종단의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 용화선원장 송담 스님.

구법승이 떠나가고 평생을 수행한 승려가 떠나도록 한국불교와 조계종단이 이토록 망가진 이유가 오직 권력과 이득만을 좇는 종단 내 권승들과 파계승들 때문이라면 희망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파계승들이 종단 권력을 잡고 유지할 수 있도록 장식용으로 동참하는 일부 불교 관련 학자들과 침묵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기름진 파계승을 큰스님이라고 떠받드는 굴종의 신도들이 만들고 있는 견고한 구조이자 문화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음식도 구걸하며 누더기 분소의를 입으라고 하신 붓다의 가르침은 어느덧 한국불교에 와서는 억 단위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일반 신도를 개돼지로 보는 상황으로까지 왔다. 이런 모습을 보고 들어도 귀와 눈을 막고 침묵하는 신도들은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수처작주 입처개진’의 주체적 자세로 살아가기보다는 기름진 승려에게 물심양면으로 공양하는 것이 최고인 것으로 생각해 결과적으로 승려의 타락을 방조하게 된다.

종단의 예상 반응

현각 스님이 지적한 동일한 내용으로 종단 개선을 요구해 온 ‘바른불교재가모임’을 해종세력으로 규정한 종단 행태를 볼 때, 이번에 한국불교 현황을 비판한 현각 스님에 대한 종단 측 반응은 다음과 같이 예상된다.

1. 한국불교를 제대로 모르는 이방인의 헛소리로 치부하면서 무시하고 자만에 빠진 자기도취 내지 자기기만형.

2. 현각 개인의 문제점을 찾아 부각시켜서 현각 발언에 특정 의도가 있을 뿐이라고 폄하함으로서 자신들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방어하는 물귀신형,

3. 그동안 한국 종단 밥을 먹은 승려로서 배은망덕한 현각이라고 비난하는 돌쇠 조폭형,

4. 그리고 무엇보다 종종 등장하는 대응방식으로서 좋은 승려들도 많은데 싸잡아 비난하는 현각이 문제라고 함으로서 현각 스님의 비판을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사기꾼 유형 등이 예상된다.

특히 종단이나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입장에 대하여 좋은 승려들도 많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나름 성실한 승려들이 대응하는 방식인데 이는 스스로 흑백 내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줄 뿐이다. 파사현정의 자세로 종단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해당 단체의 잘못된 구조와 문화를 지적하는 것이고 그런 구조적 문제점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승려들에 대한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스님들도 있다는 식의 대응이란 구조적 문제를 개인화시킴으로서 문제의 초점을 흐리는 방식이다.

우리가 검찰을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할 때 검찰 전원이 비리 검사라서 주장하는 것도 아니요, 모범적이고 훌륭한 검사도 있음도 안다. 혹은 누군가 서울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서울대 해체라고 주장할 때 서울대에는 좋은 교수도 있으니 잘못된 주장이라고 대응한다면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구성원의 다양성을 전제하되 집단 전체로서의 올바름과 문제점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공적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개인화 시켜 대응하는 것은 겸허히 그 비판을 듣고 개선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표현 외에 다름 아니다.

특히 이런 변명을 하는 승려들은 타락한 종단 문제가 개인 수행이나 포교를 열심히 하는 승려들과 분리된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열심히 수행하고 포교할 수 있는 것은 가사장삼을 입은 종단 승려이기 때문이다. 수준 낮은 설법을 해도 승려는 보시를 받지만, 재가자가 그보다 훨씬 훌륭한 가르침을 말해도 누구도 보시하지 않는다.

승려로서 신도들부터 보시금도 받고 협조와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것 자체가 타락한 종단의 힘을 이용한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 제대로 수행하고 포교한다고 내세우는 승려는 종단승려라는 것 하나로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서 종단 비리와 타락에 자유로운 자는 없다. 일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정하게 마련한 돈으로 내는 헌금은 받을 수 없다고 한 그 정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종단 승려로서 타락한 종단과 일부 스님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개인논리를 들이대면서 비판이 지나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승려일지도 모른다.

승려의 책임과 의무

종단의 모든 승려는 타락한 조계종단을 바로 잡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신도들의 후원과 종단의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 파계승으로 점유되고 비리와 부정부채가 만연한 종단 개선에는 무관심하고, 나 홀로 청정하면 된다고 말하는 승려들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거나 애써 외면하며, 도피하는 무책임한 자에 불과하다.

그 점에서 송담과 현각 스님은 각자의 위치에서 솔직하게 문제점을 인정하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파사현정의 자세와 실천은 무수히 많은 경전 구절보다 더욱 힘이 있다. 그것은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고 구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간 종단 행태와 종단 구성원들의 모습을 아는 입장에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으나, 현각 스님의 비판이 승가에서 논의를 촉발하고 가르침의 실천 행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현재의 한국불교를 그나마 좋게 보아 비유한다면, 탐·진·치로 배 채우던 자들에게 수행과 깨달음이라는 향기로운 과일로 배 채우게 하며 돈 받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개인 배불림에 불과하다. 탐·진·치를 과일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과일이라 해도 저 혼자 먹으면 비만이 되어 독이 되며, 이는 기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단이 신도들에게 독이 되는 과일 팔고 뒤에서 돈이나 세는 깨달음 장사 집단이 되었다.

한편, 종단 승려들이 뱃속 배설물을 과일로 대체하는 이유나 목적을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다. 오탁의 냄새를 지우고 밖으로 나가 여러 사람들에게 향기 나누며 도움이 되게 살도록 과일을 먹자는 것인데, 요즘 종단 승려들은 신도들이 가져온 과일을 배터지게 먹고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드러누워 배설만 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주류 승려들은 과일은커녕 탐·진·치, 오탁의 것들을 먹는 즐거움에 빠져서 현각 스님의 일갈을 들어야 했다.

이미 송담 선사는 수행 가풍이 다르다는 언급과 함께 탈종했고 현각 스님도 조계종단의 변질을 지적했다. 대지진과 같은 커다란 변혁에 앞서 늘 사전 조짐이 있다. 종단의 상징적 승려들의 탈종과 결별이라는 파열음이 들려온다. 이런 파열음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성찰과 개선 행동이 없다면, 사전 조짐들이 쌓여 임계 상태를 넘는 순간에 종단 체제는 걷잡을 수없이 급격히 무너질 수도 있다. 바른 것도 무너지거늘 하물며 바르지 못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한국불교를 상징하는 조계종단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이 결코 작지 않으니, 탐·진·치로 귀를 막고 있지 않다면 분명히 들릴 것이다. 한국불교의 사부대중은 바른 불교를 향한 작지만 우레와 같은 이 소리를 듣고 있는가. 비겁하게 눈 돌리지 않고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희종/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 서울대 불자교수모임 불이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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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성대 2020-03-05 15:54:38
海底燕巢鹿抱卵(해저연소록포란)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火裡蛛室魚煎茶(화리주실어전다)​ 불 속 거미집엔 고기가 차를 달이네

此家消息誰能識식(차가소식수능식) 이 집안 소식을 뉘라 알리

白雲西飛月東走(백운서비월동주) 흰 구름 서쪽으로 날고 달은 동으로 가고 있네

댓글 다신 분들 !
회광반조 - 다시한번 고요하게 돌아보고 종단의 실상을 꿰뚧어 보셔요.
종단의 참담한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비난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화두를 주신 필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특히 종단의 스님들 섭심반조 바랍니다.

사회적 실천과 회향이란? 2016-08-02 17:41:32
.
불교는 그런게 아닙니다.
소통해보고 싶네요.....

제법공산 2016-08-02 15:13:14
불자라면 스스로 수행하여 선지식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선지식을 알아보고 거기에 걸맞게 대하고
둘째는 자기 자신을 밝히기 위해 처절하게 수행하는 자는 밀어 주고,
셋째는 마지못해 직업으로 생활하는 자는 수행자 취급을 할 필요가 없다.

굴종이라는 단어가 웬 말인가?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우교수 미워요/ 2016-08-02 12:12:37
그냥 침묵이 먼저지요, 기다릴 것도 없어요, 모두 알아서 할일이니~

우교수 미워요 2016-08-01 22:58:44
현각 스님의 말씀을 이용 마세요, 우××님. 당신의 편들가 오히려 현각스님의 맑음을 흐리게 합니다. 당신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 가만 계시는 게 눈 밝은 수행자른 돕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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