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다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다
  • 기연택주
  • 승인 2016.06.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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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평화는 살림 49.

울산광역시 울주군 신리에는 커다란 핵발전소 단지가 있습니다. 고리, 신고리 핵발전소 단지. 고리 핵발전소에는 핵 발전기 4기가 돌아가고 있고요. 신고리 핵발전소는 2기가 돌아가는데, 내년에는 2기를 더 돌린다고 합니다. 이에 더 얹어 신고리 5, 6호기를 새로 세운다며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선지 오래입니다. 신고리 5, 6호기가 더 돌아가면 고리, 신고리 핵발전소 단지에는 모두 10기 핵발전소가 돌아갑니다. 그러면 고리, 신고리 핵발전소단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핵발전소 단지가 됩니다. 문제는 이 핵발전소단지 반경 30킬로 안에 무려 34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 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지난 5월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심의를 하고 있습니다. 탈핵 시민단체들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이곳에 핵발전소를 더 세울 수 없다고 하면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을 막아섭니다. 만에 하나 이곳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후쿠시마 사태에 댈 바가 아닌 줄 다 압니다. 부산을 비롯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일부가 다 죽음 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거듭되는 이런 얘기바람 속에서 떠오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K-19: The Widowmaker’입니다. 소련 핵잠수함 K-19 실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K-19’는 바로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 소련에서 만든 커다란 핵잠수함 이름입니다. 소련 최초로 핵미사일을 올린 것으로 유명한 이 잠수함에는 ‘The Widowmaker, ‘과부제조기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건조할 때부터 화재나 가스질식 같은 여러 사고로 죽은 사람이 열 명이 넘고, 이 잠수함에 남자들이 타기만 하면 하도 죽어나가서 붙은 별명이랍니다.

미소냉전이 극으로 치닫던 1961년. 미국이, 소련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를 사정권에 둔 핵잠수함을 소련 가까이 배치합니다. 소련은 이에 맞서 핵탄두를 실은 핵잠수함 K-19를 미국 뉴욕 코앞에 배치해 대응 타격을 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K-19는 너무도 열악한 지원과 환경 속에 만들어진 탓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 ‘불길한 잠수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 이 잠수함 함장을 맡은 ‘폴레닌’은 결함투성이 잠수함에 부하 목숨을 맡길 수 없다고 버팁니다. 결국 군수뇌부는 폴레닌 대신 평소 피도 눈물도 없다는 평가를 받아온 ‘보스트리코프’를 함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러면서 폴레닌에게 자문을 맡겨 부함장으로 함께 승선시킵니다. 시험운행 임무를 띠고 바다로 들어간 K-19.

보스트리코프는 철저한 군대규율과 오로지 임무 완수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습니다. 보스트리코프는 배에 오르자마자 원자로 관리에는 능숙하지만 술에 취해 잠에 빠진 베테랑 ‘야신’ 중위를 직위해제 시킵니다. 그리고 경험은 없이 이론으로만 무장한 풋내기 ‘바딤’ 중위를 임명합니다. 그리고 승무원들을 한계상황까지 밀어붙입니다. 화재발생훈련, 누수발생훈련 거듭되는 훈련으로 대원들 불만은 극에 이르지만 보스트리코브는 본체만체합니다. 이윽고 잠수함을 최고 위험수심인 수심 300m까지 내려가도록 명령합니다. 수압에 견디다 못한 선체는 곳곳이 오그라들고. 잠수함은 한계상항을 버티고 다시 보스트리코브 명령에 따라 비상 상승해 빙하를 뚫고 수면위로 솟구쳐 올라 곧바로 핵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합니다. 위기감을 빠졌던 대원들은 ‘우리가 해냈다’며 환호합니다. 그러나 부함장 폴레닌은 함장에 맞섭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승무원과 잠수함을 위험에 몰아넣었소. 아울러 2억 소련 국민 안전도 위험에 빠뜨렸소.” 함장 보스트리코프가 반박합니다. “난 우리 잠수함과 승무원 한계를 알아야만 하오. 이제 120명 선원들은 모두 하나가 된 거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함께 이루었으니까, 실전에서도 한계에 도전해서 넘어설 거요. 경우에 따라 죽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할 수 없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니까 말이요.”

시험운행에 성공한 K-19 잠수함은 미국 동부해안을 따라 심장부인 뉴욕과 워싱턴 가까이 다가가는 명령을 받고, 미국으로 가다가 문제가 터집니다. 잠수함 반응로 안에 있는 냉각수 파이프가 터지면서 온도가 미친 듯이 올라갑니다. 그대로 두었다간 원자로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 위기와 맞닥뜨립니다. K-19 승조원들은 달랑 우비 하나만 입고 원자로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냉각수 파이프를 잇겠다고 나섭니다. 자살특공대. 대원들은 1차, 2차, 3차로 나누어 원자로에 들어가고, 하나 둘 처참한 몰골로 원자로에서 나옵니다. 이런 희생으로 다시 반응로 온도는 떨어지고.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용접부위가 다시 떨어져 나가면서 온도는 다시 가파르게 솟구쳐 잠수함이 폭발직전에 이릅니다. 마침 미국 헬기가 잠수함에 다가서면서 구조해주겠다는 사인을 보냈지만, 잠수함을 적에게 내줄 수는 없는 일이라며 버티는 함장. 부함장은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자”고 하지만, 함장이 내린 결정은 잠수함을 깊은 해저로 몰고 내려가 장렬히 자폭하는 것이었습니다. 폭발직전 핵잠수함을 두고 함장과 부함장이 거세게 부딪칩니다.
“비상보트에 선원들을 태워요. 그 사람들은 우리를 구조할 겁니다.” 
“조국 함대를 버리고 달아나 선원들을 미국 선전용으로 바치라고?”
“함장, 이제 당신 임무는 뚜렷해졌오. 당신은 선원들 목숨을 구해야 해요.” “내 임무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고, 나라 지키기를 위해 마지막까지 다 할 것이오.”“당신 주장은 당신 야심일 뿐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오. 저기서 죽어가고 있는 선원들에게 그렇게 말해요. 저이들에게 말해 봐요.”
급기야 반란이 일어나 대원들이 함장을 붙잡아 가두고 지휘권을 부함장 폴레닌에게 넘깁니다. 그런데 이때 기막힌 반전이 일어납니다. 부함장은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을 오히려 가둬버리고 그토록 갈등하던 함장 보스트리코프에게 지휘권을 다시 넘겨주고 맙니다. 지휘권을 되찾은 보스트리코프는 절체절명 위기를 맞아 함장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원들에게 감동어린 연설을 합니다.

“나는 함장이다.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은 절망이다. 반응로 수리를 실패했다. 언제라도 핵탄두가 폭발하면 우리도 폭발할 것이다. 이 폭발로 나토에서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미 전함도 폭발할 것이다. 미소가 긴장 속에 있는 이때 빚어진 이 사건으로 우리 조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우리는 잠수하여 반응로 수리를 다시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제군들 결정을 기다리겠다.”

진솔한 함장 속내를 처음으로 알게 된 대원들은 마음을 열어 함장 결정을 따르기로 한다. 바로 이때, 이리 빼고 저리 빼며 원자로에 들어가기를 꺼리던 원자로 담당 풋내기 장교 바딤 중위가 홀몸으로 원자로로 들어가, 냉각수 파이프 잇기에 성공합니다. 안정을 되찾은 K-19, 때마침 인근을 지나던 소련 잠수함에게 구출되면서 드라마틱하게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영화 말미에서 함장 보스트리코프는 소련으로 돌아가 군사법정에 섭니다. ‘함장으로서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지 못했다’면서 수많은 질책과 마주합니다. 이때 증언에 나선 부함장 폴레닌은 말합니다. “어떤 소련 해군함장도 그와 같은 결정 앞에 마주서보지 못했을 것이다. 잠수정 운명, 승무원 운명, 세계 운명을 두루 이끌, 그런 결정 앞에. 내 삶은 해군이었다.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배에 오직 함장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 뿐이다.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무거운 짐은 함장 어깨에 있고, 함장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함장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 여러분은 거기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있었다. 그이는 우리 함장이다. 그이는 내 함장이다.”

이 영화는 나라를 중심에 둔 리더십을 얘기하는 영화입니다. 희생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고, 리더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말과 외롭게 내린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영화로 저와 생각 결이 조금 다른 영화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영화 얘기를 꺼낸 까닭은 우두머리라면 모름지기 사람 살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려는데 있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하는 까닭도 사람 목숨 살림에 있고, 전기를 만드는 까닭도 사람 목숨 살림에 있습니다. 
 
우리는 북핵문제를 심각하게 여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가진 핵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그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핵발전소 문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걸까요? 감금에서 풀려난 함장 보스트리코프가 한 말과 부함장 폴레닌이 한 말을 남기는 것으로 얘기를 마칠까 합니다.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제군들 결정을 기다리겠다.” 핵 문제에 자신 있게 나서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고요? 목숨보다 앞서는 쓸모는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핵발전소를 거듭 지어나가야 할지 아니면 없애야할지는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요? 부함장 폴레닌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있었다.” 핵발전소, 거기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요?
 

 

   
 

살림 바라지(경영자)는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마음 바탕에서 살림살이를 해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강연을 하는 경영코치이다. 그리고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와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로 ‘무기 없는 평화나라 누구라道 기껍고 도타우面 어울려 살 길 이루里’에 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 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그리고 <달 같은 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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