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한다더니 살인을
살균한다더니 살인을
  • 기연택주
  • 승인 2016.04.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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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평화는 살림 42

“5년 동안 가만히 있던”, “5년 만에”, “5년이 지나서야”, “가습기살균제 파동 5년 전말” 지난 18일 언론에 올라온 ‘가습기살균제 참사’ 기사 제목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까닭을 알 수 없는 허파 질환에 걸려 임산부들과 아이들이 고통을 겪다 죽어가거나 오래도록 앓고 있다, 그 까닭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더라는 얼거리입니다. 정부가 2011년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제조업체 수사는 미뤄왔는데 지난 1월부터 수사팀을 차려 수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모습을 드러낸 건 서울에 있는 어느 큰 병원 중환자실이었습니다. 2011년 4월말 기침과 호흡곤란처럼 급성호흡부전을 호소하는 임산부 환자 28명이 연달아 입원하자, 이상하게 여긴 의료진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했습니다. 환자들은 가습기를 꾸준히 쓰면서 가습기살균제를 한 달에 한 병꼴로 써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넉 달 뒤, 보건복지부는 “가습기살균제(또는 세정제)가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며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는 않았다”며 제품 거둬들이도록 나서진 않았습니다. 안전성 비판이 거듭 일었지만, 업체들은 가습기살균제 판매를 멈추지 않았죠. 같은 해 11월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와 동물흡입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홈플러스에서 파는 6가지 제품만 “위해성이 확인됐다”며 거둬들이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가습기살균제가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가습기살균제 위해성이 또렷해지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 제품을 만들어 퍼뜨린 업체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펼칩니다. 그러나 정부가 내린 조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살균제를 팔면서 제품 용기에 ‘인체에 안전하다’고 허위 표기했다”면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세퓨 모두 4곳에 과징금 5,200만원을 물린 것이 다였습니다.

이제까지 정부 조사 결과 살균제 피해가 확인된 사람은 모두 217명(사망 92명)입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피해신고자까지 포함하면 1,215명(사망 185명)으로 늘어납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살균제 관련 논문을 근거로 잠재 피해자가 적어도 29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을 꾸린 검찰은 석 달 여 동안 가습기살균제와 허파 손상 사이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검찰은 옥시 레킷벤키저(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세퓨 4개사가 내놓은 제품이 사람 몸에 해롭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들 4곳이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습기살균제를 팔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이었습니다. 임산부와 영유아들이 집단으로 죽으면서 눈길을 끈 2011년까지 17년 동안 수많은 피해자들이 까닭도 모른 채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입은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밝히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문제가 불거진 지 5년이 넘도록 가습기살균제를 판 기업들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는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마지못해 유감이라고 한 것이 모두였다고 합니다. 오히려 정부 조사가 잘못되었다며 법적소송으로 맞섰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8일 롯데마트가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모임 대표는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정부가 2011년 까닭 모르는 허파 질환이 일어난 까닭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고 밝혔을 때 피해자들 앞에 사과했어야 했다면서 “5년이 지나 검찰에서 관련자를 소환하겠다고 나오니까 이제야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우리가 영국 옥시 본사까지 찾아가고 가해 기업 관계자를 만나려고 뛰어다니는 동안 가해 기업들 가운데 피해자를 만나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5월 19일자 베이비뉴스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1단계, 2단계 판정을 받은 사망자 92명 가운데 옥시레킷벤키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한 사망자는 71명(77.2퍼센트)이나 되며, 드러난 피해자 221명 가운데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쓴 사람은 177명(80.1퍼센트)이라고 합니다. PHMG(Polyhexamethylene guanidine, 폴리헥사메틸린 구아니딘)는 옥시 가습기살균제 성분입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살균제에 유독물질인 PHMG를 집어넣으면서도 동물실험조차 하지 않았답니다. 옥시레킷벤키저(현재 RB코리아)는 영국 기업인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가 2001년 동양화학그룹으로부터 옥시를 인수해 세웠고 가습기살균제 주성분을 PHMG로 바꿨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지난해 5월 19일~22일(현지시간)까지 영국에 가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알리고 책임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시위 소식을 알리면서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레킷벤키저 본사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디언은 “한국에서 레킷벤키저 제품을 사용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까닭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죽은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이었다.”고 전하면서 “몇 년 간 조사 끝에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밝혀졌다”고 전했습니다.

습도를 이어주는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는 20~30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아파트를 비롯해 단열이 잘되는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실내가 메마르니까 가습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습도가 높은 가습기를 날마다 닦는 번거로움을 줄여준다면서 외국계 대형 생활용품 회사와 국내 기업들이 앞 다투어 가습기살균제를 내놨습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큰 회사들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선전해대니까 사람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가습기살균제를 사다 썼던 것입니다.

검찰 눈길은 가습기살균제를 내놓기 전에 인체 유해성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쏠려있습니다. 2001년 가습기살균제에 유독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처음 사용한 옥시는 유해성을 몰랐다고 하지만, 검찰은 미리 알았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옥시는 자사 누리집에 소비자들이 올린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글을 일부러 지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지난 2월 압수수색 과정에서 옥시가 제품 유해성을 인식하고 동물 실험 필요성을 논의한 내부 문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19일 미디어오늘과 “가습기 사용자 1,087만 명, 이건 연쇄살인이다”란 제목이 붙은 인터뷰에서 “17년 동안 피해가 있었을 것인데 잠재 피해규모를 어느 정도로 보나?”는 문형구 기자 물음에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검찰 추산으로 사용자가 800만 명인데 우린 1,087만 명으로 본다. 검찰은 사용량으로 추산한 것 같고, 우린 지난해 말 서베이를 하고 이를 2011년 당시 인구로 추산했다. 그럼 여기서 실제 고농도 노출자나 피해자는 몇 만 명인가. 옥시가 호서대에 실험했다는 것을 보면 60번 실험했는데 2번이 고농도 노출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걸 평균내서 안전하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여기서 고농도 노출이 60분의 2라고 보면 800만 명(사용자가)일 지라도 26만 명이 된다. 이게 위험인구가 된다. 현재까지 피해신고가 1,528명에 사망자 228명이다. 그럼 이 26만 명 중 피해신고가 안 된 이들을 어떻게 찾을 것이냐가 큰 숙제인데 아무도 안 하고 있다. 행정부도, 검찰도 이건 안 하려 한다. 연쇄살인 사건이라고 치자. 수사를 해서 범인이 나왔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피해자는 더 나올 것이다.”

3.3퍼센트가 고농도 노출이었다면 100명에 서너 명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평균값을 내어 안전하다고 하다니요. 말이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목숨을 숫자나 수치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19일 SBS뉴스에서는 “검찰 조사 결과 옥시 측은 지난 2011년 한국건설생활 환경시험연구원에 의뢰한 실험에서 자사 제품으로 인한 허파 손상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자 이를 숨긴 혐의가 잡혔다. 당시 실험을 맡은 연구원 관계자는 ‘옥시 측이 불리한 결과가 나오자 실험 내용을 자사 기록에 남기지 않기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옥시는 이후 서울대 연구팀에 자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실험을 맡겨 ‘제품이 폐 손상과 관련 없다’는 결과를 얻어낸 뒤, 이 자료만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누리집 창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성준이의 희망>이란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2013년에 만들어 띄었던 해묵은 영상을 다시 올린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2013년 열한 살 먹은 성준이는 호흡장애 1급으로 면역력도 약해 산소 호흡기를 달고 다닌다. 또한 골다공증도 심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태어난 지 14달 만에 까닭을 알지 못하는 허파 질환을 앓아 목숨을 잃을 뻔했다. 병의 까닭을 알게 된 건 십 년이 지나서였다. 가습기살균제가 허파 섬유화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세상을 뒤흔든 사건이지만 2년이 다 된 지금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글이 달린 이 동영상에는 성준이 일상과 성준이 어머니 말씀이 빼곡합니다. 이처럼 여리고 서툰 아이들이 어떤 아이는 앓아누워 있고 어떤 아이는 죽어나갔습니다.

여린 임산부나 영유아들이 목숨을 잃거나 오래도록 앓고 있습니다. 한 목숨 한 목숨이 스러졌습니다. 그렇지 않고 거듭 앓는 삶은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닌 삶입니다. 또 다른 세월호 참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전쟁을 경멸하는 가장 큰 까닭이 여성과 아이 드리고 힘없는 노인네들, 그리고 멀쩡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전쟁 못지않은 참사들이 거듭 벌어지는 걸까요? 모두 ‘경영이 살림’이라는 바탕을 잃은 데서 일어난 탈입니다. ‘다스림’이란 말 뿌리가 죽임에 맞선 ‘다 살림’에서 나왔다는 것을 놓치고 돈만 좇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임산부 입덧 완화제 판매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 1957년 커다란 독일 제약회사가 내놓은 인기 신약 탈리도마이드. 입덧뿐 아니라 통증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입맛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거의 모든 임신 증후군에 빼어나다는 소문에 유럽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약품. 1960년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 진출을 코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통과의례와 같은 심사를 거쳐 손쉽게 판매허가가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美 FDA 신약 허가 담당 공무원 프란시스 켈시 생각은 달랐습니다! ‘임산부와 태아가 참으로 안전할까?’ 수많은 자료를 보고 또 살피고 전문가 의견을 고루 들은 켈시. 눈에 띄는 부작용은 없었으나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결과가 상당부분 맞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상해! 동물에게 발견되지 않은 부작용이 사람에게 나타난다면 어쩌지?’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끈질기게 고민한 켈시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승인할 수 없다!” 상상을 초월하는 제약회사 로비와 압력에도 차일피일 허가를 미루며 신약 안전성을 입증할 뚜렷한 자료를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1961년 세계 46개 나라에서 1만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났습니다. 유럽에서만 자그마치 8천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났죠. 역학조사 결과는 ‘산모가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기형아가 겨우 17명밖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프란시스 켈시가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대규모로 기형아들이 태어나는 비극에서 비껴 설 수 있습니다. 나라 살림꾼이 이모저모를 두루 따지며 보고 살피고 또 살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정 경영이든 기업 경영이든 나라 경영이든 모든 경영자는 ‘살림살이’란 말이 품고 있는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뜻을 놓쳐선 안 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평화는 한 목숨 한 목숨을 보살피고 보듬는 ‘두루 살림’에서 피어오릅니다.
 

 

   
 

살림 바라지(경영자)는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마음 바탕에서 살림살이를 해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강연을 하는 경영코치이다. 그리고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와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로 ‘무기 없는 평화나라 누구라道 기껍고 도타우面 어울려 살 길 이루里’에 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 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그리고 <달 같은 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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