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워도 찍읍시다
아쉬워도 찍읍시다
  • 기연택주
  • 승인 2016.04.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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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평화는 살림 41

정체성, 영어로 ‘Identity’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오래도록 꾸준하게 이어오는 남다름, 나다운 빛깔을 가리킵니다. 물방울이 모여 이루는 물결, 바람이 어울려 빚는 바람결, 머리카락이 어울리는 머릿결처럼. 너와 나, 우리가 어울려 이루는 결이죠. 같은 얼을 가진 이들이 어울려 빚는 ‘얼결’은 우리다움입니다.

내일은 총선일입니다. 지금 제도에는 우리가 뽑아야 하는 국회의원 후보는 정당이 공천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천을 받은 사람들은 개개인이 지닌 얼결이나 뜻과는 상관없이 정당이 지닌 정체성, 얼결에 따라 거수기가 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고립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살려고 사회가 지닌 얼결을 받아들입니다. 소속 집단, 또는 특정 환경에 맞는 정체성, 얼결이 이루어집니다. 이를 받아들여야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드러났던 정당 별 빛깔 차이가 이번 총선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새누리당은 늘 그래왔듯이 북녘을 비롯한 맞수들을 감싸 안기보다는 적대시하는 자기 정체성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전권대표’가 들어오면서 우클릭하고 있습니다. 김종인 대표는 틈이 날 때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니고 있는 운동권 문화를 비판했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지난 2월 9일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해 더불어민주당 얼결인 햇빛정책을 뒤흔들었습니다. 국민의당은 어떨까요? ‘제3 정당론’을 표방하며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겠다고 합니다. ‘합리적 진보’라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럴싸한 이름을 내세웠지만 정체성, 얼결이 보수라고 봐야합니다.

이 변화를 한 번 들여다볼까요? 결이란 사람이 모여서 이루는 것이니 이끄는 사람을 드려다 보면 그 모둠 결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김종인 대표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경제민주화 기조를 빚은 사람입니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에 발을 들어놓은 진영은 박 대통령 인수위 부위원장을 하고, 박근혜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기업가출신입니다. 공동 선대위원장 이상돈은 박근혜 체제 새누리당에서 비대위원을 지낸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새누리당 사람들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국회의원을 한다는 사람들이 몇몇을 빼놓고는 모두 제 앞가림에 눈이 벌게 있어 정체성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공천을 받고 보자 어떻게 해서든지 붙고 보자. 붙어야 힘이 생긴다는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각해볼까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제 빛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다면 누구에게 유리할까요? 말할 것도 없이 새누리당에 유리합니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간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을 흔들어대고 있는 마당이라면 두 말 할 것 없지 않을까요? 더불어민주당으로써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육지계를 쓸 수밖에 없다고 얘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느 사람들은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있는 쪽이 더 듬직하다고 여깁니다. 힘들수록 남다른 자기 정체성, 얼결을 지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 자동차 맞수 도요타와 혼다가 환경을 보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에서 프리우스와  시빅으로 맞붙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프리우스가 시빅보다 7배나 더 많이 팔렸습니다. 도요타가 자동차 판매 세계 1위라고 하지만 혼다도 비행기 엔진을 생산하고 사람에 가까운 로봇 아시모를 만들어낼 만큼 대단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바로 얼결입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환경을 보듬겠다는 얼결을 갖고 있습니다. 도요타에서 만든 프리우스는 생김새부터가 뚜렷이 다릅니다. 그러나 혼다 시빅은 기존 시빅과 생김새가 똑같습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인지 알려면 자동차 뒤쪽에 조그맣게 적바림된 글씨를 봐야 합니다. 환경을 적극 보듬는다는 얼결을 드러내기에 너무 어렵게 멋지음(디자인) 되었습니다. 착한 소비를 하는 사람이라는 얼결을 살리고 그렇지 못하고가 승패를 갈랐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민주당 대통령 예비후보 버니 샌더스 돌풍도 또렷한 얼결을 지녔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 노동당 새로운 리더로 떠오른 정통 좌파 제레미 코빈 열풍 또한 뚜렷한 제 빛깔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당 사람들은 제 빛깔을 드러내기에 힘이 부칩니다.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에 견줘 우리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라고 애써 답답함을 누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그나마 나와 우리 식구를 살리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는 정당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많은 약점을 안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얼결을 이루는데 쓸 수 있는 우리 힘이라는 것이 달랑 투표지 한 장뿐입니다. 대의민주주의를 과연 민주주의라고 해야 할 지? 싶어 헛헛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찮아 보이는 한 표가 물줄기를 바꾸고 우리 얼결을 이룰 수 있는 더 없이 소중한 내 힘입니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비좁더라도 가장 나쁜 선택을 하지 않으려면, 내게 주어진 소중한 이 한 표, 있는 힘을 다해 써야합니다. 먼저 누가 누군지 눈 부릅뜨고 살핍시다. 빠지지 말고 투표장에 갑시다. 그리고 잘 찍읍시다.
 

 

   
 

살림 바라지(경영자)는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마음 바탕에서 살림살이를 해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강연을 하는 경영코치이다. 그리고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와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로 ‘무기 없는 평화나라 누구라道 기껍고 도타우面 어울려 살 길 이루里’에 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 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그리고 <달 같은 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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