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조장하는 허깨비 공포
종교가 조장하는 허깨비 공포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6.04.11 10:0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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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95. 죽음에 대한 공포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석기시대 원시인 부시맨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이들에게는 지옥이 없기 때문이다. 도가(道家)에도 지옥은 없다. 인간은 ‘천지자연에서 왔다가 천지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도가자류(道家者流)들로서는 죽음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할 게 없다. 예를 들어, 장자는 자기 부인이 죽었을 때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고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는 것은 종교이다. 아무 문제없이 잘만 사는 인간에게 지옥이라는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망상을 심어줌으로써, 인간을 무시무시한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종교가 주입한 것이다. 동물들은 ‘없는 존재’로부터 고통을 받는 일이 없지만, 대뇌신피질이 발달한 인간은 어마어마한 상상(환망공상)의 힘으로, 자기가 만들어낸 ‘없는 존재’로부터 ‘자청(自請)해서’ 고통을 받는다. 그러고도 우주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외치며 좋아하다니, 인간은 메조키스트이다.

동물들은 지옥에 대한 공포가 없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은 환망공상을 생산하는 대뇌신피질이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형이상학적인 공포가 있을 리 없다. 인간이 갖는 공포는 대부분 대뇌신피질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허깨비 공포이다. 반야지혜를 개발하면 이런 공포는 남김없이 다 사라진다. 반야지혜에 의지하면 마음에 쓸데없는 장애가 없어 공포심이 사라지고, 세상을 거꾸로 보는 뒤집혀진 몽상을 벗어나, 궁극의 해탈(탐진치 3독심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남)을 얻는다: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진실로, 공포는 꿈·신기루·물거품·그리메·이슬방울·부싯돌불과 같다. 반야심경이 위대한 점이다.) 선악에 대한 개념도 없다. 신의 뜻을 거슬러 지옥에 떨어질까 봐 일어나는 두려움도 없다. 오직 인간만이 지옥에 대한 공포로 고통을 받는다. 진화의 부작용이다.

무인도에서 자기들끼리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지옥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을 것이다.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아프리카 부시맨뿐만이 아니라 브라질·뉴기니 열대우림에 사는 석기시대 원시인들도 지옥이라는 개념이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싸여 호들갑을 떠는 것은 종교가 횡횡하는 소위 문명세계뿐이다. 기독교·회교·힌두교 등 스스로 고등종교라고 자부하는 종교들이 나서서 ‘지옥팔이’를 한다. ‘자기들 지옥은 몹시 지독하니 거기 안 가려면 자기들 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협박을 한다. 측천무후의 명을 받은, 중국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고문기술자 내준신이 무고한 사람들을 ‘주군 측천무후를 믿지 않는다’는 죄를 들어 ‘장작불로 달군 커다란 구리항아리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 점에서 종교는 일종의 중범죄성 정신병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에 관한 한, 종교는 없는 공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종교가 ‘인간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병 주고 약 주겠다’는 꼴이며, 독을 주입하고 해독약을 주겠다는 꼴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짓은, 그 약이 지옥을 만들어낸 종교에 대한 믿음이라면 가짜 (해독)약이므로, 사악한 짓이다.

인간은 자기를 구속하고 고통을 주는 종교가 해방과 낙을 준다고 믿고, 한 번뿐인 삶을 죽을 때까지 고뇌(苦惱)에 싸여 고통에 찌들어 살다가 죽는다. 마약중독자·알코올중독자의 운명과 유사하다. 처음부터 거기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들이다.

이상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며칠 전인 2016.4.5일에 ‘메디컬익스프레스(medicalxpress.com)’는 학술지 'Plos One'에 실린 ‘초고령 노인들의 죽음에 대한 정신적 자세’를 다룬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95세를 넘긴 33명의 노인들을 인터뷰한 결과이다. 연구책임자 제인 플레밍(Jane Fleming)에 의하면 이 노인들은 ‘죽음 자체에 대해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죽는 방식이다. 의료장비를 동원해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그냥 육체적 고통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죽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수면 중에 죽기를 원한다. 이들은 때로는 자기 죽음에 대해 농담을 하기도 한다: ‘너무 오래 살았어. 난 이제 내 목숨을 촛불을 불어 끄듯 훅 꺼버릴거야’ 하면서. 아마 이게 종교가 생기기 이전의 인간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세’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가깝게는 앞서 언급한, 태고(太古)의 인간들과 유사한 아프리카 석기시대 원시인 부시맨과 아마존 석기시대 원시인들이며, 멀게는 동물들이다. 이들은 자연적인 죽음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평온하게 받아들인다.)

종교는 ‘사후세계에 대한 교주의 망상’을 사방에 퍼뜨리며, 지옥에 대한 믿음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 죽음에 대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이 점에서 종교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지독한 정신적 고통이라는 난치병을 유발하는 악성 바이러스이다. 그러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망상이 교주 머리 밖으로 (또는 교주의 가르침을 오해하거나 조작한 제자들 머리 밖으로) 못 나오도록 교주 입(口)을 (또는 교주의 가르침을 오해하거나 조작한 제자들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안 된다. 영어 ‘contain a crisis’는 이 점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망상은 혼자만 해야 한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 가족의 평화로운 모습.

이들은 죽을 때도 이처럼 평화롭게 죽는다.
문명인들처럼 신을 찾고 불보살을 찾으며 발악을 하지 않는다.
종교를 믿는 당신 눈에는 종교가 없는 이들의 내세가 저주받은 걸로 보이는가?
자연이 무대의 막을 내리면, 생명체는 무대에서 사라질 뿐이다.
막을 다시 올리라고 보채는 것은 어린아이나 할 짓이다.
막이 내린 후에도 세계는 계속되지만 당신이 원하는 대로는 아니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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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ly?/ 2016-04-16 20:00:19
<저 아프리카 부시맨의 가족이 평화롭다고? 정말로? 사진으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평화롭게 보일 수도 있겠지.>

맞다.
평화롭게 보인다는 것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저들이 진짜 평화로운지는 저곳에 가서 직접 살아봐야 되겠지.>

백번 맞는 말이다.

<저들도 늙고, 병들고, 죽는데, 겉으로 평화로워 보인다고 그것이 진정한 평화일까?>

지당한 말이다.
진정한 평화인지는 그 사람들과 같이 살아보거나, 그 사람이 되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몸과 마음의 구조가 같은지라, 타인의 몸과 말과 마음의 짓을 통해 타인의 마음상태를 알 수 있다.
같이 살면 더 잘 알 수 있다.
인류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일부 종족은 정말 평화롭게 산다.
물론, 전부가 아니라 일부가!

<만약 저곳에 심각한 전염병이라도 들어서 가족중에 누군가가 혹은 모두가 살이 썩어간다면 저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울까?>

당연히 행복하지도 못하고 평화롭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람에 따라 같은 곤경과 역경에서 다르게 반응한다.
사람에 따라 더 괴롭고 더 혼란에 빠지고 더 불행해 진다.
평소에 아무리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람일지라도, 큰 재난이 닥치면 예전처럼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잘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동일한 환경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롭다.

<그리고 저들 중에 누군가가 죽는다면, 저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울까?>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과 종족과 문화에 따라 다르다.
사람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듯, 종족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친족의 죽음을 당할 때, 사람에 따라 극심한 고통을 겪듯이 종족에 따라 극심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에 따라 큰 고통을 겪지 않듯이, 종족에 따라 큰 고통을 겪지 않기도 한다.
어떤 종족은 아기가 태어나면 다 모여 슬피 울고, 사람이 죽으면 다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웃는다.
일체유심조라고,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죽음에 대한 고통 역시 달라진다.
부시맨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이게 그들의 문화이다.


<강병균은 일부(혹은 적지 않은 종교인들)에서 종교의 순기능을 악용하고 있는 사례들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야만적인 지옥은 명백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지옥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종교의 만행이다.
특히 어린시절에 이런 가르침으로 세뇌를 당한 사람은 평생 고생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살인은 하지 않지만 그리고 선행도 곧잘 하지만, 강도짓과 폭행을 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 지극한 선인은 물론 아니고 평범한 선인도 아니다.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 잔인하게 고문하는 종교가 바로 위에서 예로 든,
곧잘 선행을 하기도 하지만 강도짓과 폭행을 저지르는 사람과 같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
아마 재난을 당하면, 심히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really? 2016-04-16 17:40:46
저 아프리카 부시맨의 가족이 평화롭다고?

정말로?

사진으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평화롭게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저들이 진짜 평화로운지는 저곳에 가서 직접 살아봐야 되겠지.

저들도 늙고, 병들고, 죽는데, 겉으로 평화로워 보인다고 그것이 진정한 평화일까?

만약 저곳에 심각한 전염병이라도 들어서 가족중에 누군가가 혹은 모두가 살이 썩어간다면 저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울까?

그리고 저들중에 누군가가 죽는다면, 저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울까?

강병균은 일부(혹은 적지 않은 종교인들)에서 종교의 순기능을 악용하고 있는 사례들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내가 난독증이 아니라면 2016-04-13 18:42:05
난 그반대인데,

설명은 절대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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