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 스님에 의하면,
시방이 공해도 공하지 않은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게 참나다.
그래서 참나가 아트만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나를 깨닫는 방법으로 '간화선'을 주창하는데, 간화선에서
참나라는 것은 아래 무차대회 법어에도 나오듯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도인 스님들도 보지 못함이니..' 라고 하듯이
有我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참나가 참나를 보지 못한다.
거울이 거울 자신을 보지 못하고, 칼이 칼 자신을 베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진제 스님은 '참나를 찾자'고 외치니,
'누가 누구를 찾는다는 말인가?'
<법어에도 방거사나 조사들의 공안을 들어
그 뜻을 깨쳐야 참나를 바로 본다고 설법하는데, 그 참나가 아트만을 일컫는 다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역대 조사들은 참나(진아)라는 용어조차 사용한 적이 없다.
참나는 근세 한국에서 만들어진 괴이한 용어이다.
보고 듣고 헌 몸을 벗고 새 몸으로 들어가는 참나는,
즉 진제 스님의 참나는 영락없는 아트만이다.
힌두교 아트만이 바로 보고 듣고 헌 몸을 벗고 새 몸으로 들어가는 놈이기 때문이다.
<참나를진제스님은 항시 조사어록의 고준한 공안을 들어 설법하시는데
그 뜻은 알고 비판하고 있는지 참..>
참나론이 뭐가 고준한가? 그냥 아트만론일 뿐인데!
경허 스님이 인가를 받은 적이 없음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불교에서 무아론의 맥이 끊긴 지 오래이다.
힌두교 유아론인 아트만을 선양하는 참나론은 불교가 아니다.
http://www.donghwasa.net/?c=1/10/209&sort=add01+desc%2Cgid&uid=523
진제스님은 법어에서 참나를 깨달으면 시방이 "공"하다고 분명이 말하는데 참나가 아트만이라?
그리고 참나를 깨닫는 방법으로 '간화선'을 주창하는데, 간화선에서
참나라는 것은 아래 무차대회 법어에도 나오듯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도인 스님들도 보지 못함이니..' 라고 하듯이
有我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법어에도 방거사나 조사들의 공안을 들어
그 뜻을 깨쳐야 참나를 바로 본다고 설법하는데, 그 참나가 아트만을 일컫는 다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진제스님은 항시 조사어록의 고준한 공안을 들어 설법하시는데
그 뜻은 알고 비판하고 있는지 참..
http://www.donghwasa.net/?c=1/10/209&sort=add01+desc%2Cgid&uid=523
진제 스님에 의하면,
시방이 공해도 공하지 않은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게 참나다.
그래서 참나가 아트만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나를 깨닫는 방법으로 '간화선'을 주창하는데, 간화선에서
참나라는 것은 아래 무차대회 법어에도 나오듯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도인 스님들도 보지 못함이니..' 라고 하듯이
有我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참나가 참나를 보지 못한다.
거울이 거울 자신을 보지 못하고, 칼이 칼 자신을 베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진제 스님은 '참나를 찾자'고 외치니,
'누가 누구를 찾는다는 말인가?'
<법어에도 방거사나 조사들의 공안을 들어
그 뜻을 깨쳐야 참나를 바로 본다고 설법하는데, 그 참나가 아트만을 일컫는 다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역대 조사들은 참나(진아)라는 용어조차 사용한 적이 없다.
참나는 근세 한국에서 만들어진 괴이한 용어이다.
보고 듣고 헌 몸을 벗고 새 몸으로 들어가는 참나는,
즉 진제 스님의 참나는 영락없는 아트만이다.
힌두교 아트만이 바로 보고 듣고 헌 몸을 벗고 새 몸으로 들어가는 놈이기 때문이다.
<참나를진제스님은 항시 조사어록의 고준한 공안을 들어 설법하시는데
그 뜻은 알고 비판하고 있는지 참..>
참나론이 뭐가 고준한가? 그냥 아트만론일 뿐인데!
경허 스님이 인가를 받은 적이 없음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불교에서 무아론의 맥이 끊긴 지 오래이다.
힌두교 유아론인 아트만을 선양하는 참나론은 불교가 아니다.
http://www.donghwasa.net/?c=1/10/209&sort=add01+desc%2Cgid&uid=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