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가 좋다
조화가 좋다
  • 현각 스님
  • 승인 2015.11.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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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126.

옛 사람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들이 있다. 무조건 남을 따라하는 습성이다. 아마 미래에도 변함없는 형태로 나타나리라고 믿는다. 삼세에 걸쳐 바뀌지 않고 한결 같을 것이다. 소위 이러한 습성을 군서본능(群棲本能)이라고 한다. 이러한 본능은 남을 따라하면 최소한 정 맞을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경위야 어찌 되었건 군서본능에 동화되면 우선 편하다.

주관 없이 그저 남을 따라하는 행위는 해악이 될 수 있다. 이성 보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동물들의 삶의 모습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어떠한가. 세존은 중생도 동물들의 감정의 범주에 놓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정신세계를 지(知)ㆍ정(情)ㆍ의(意)라고 일컫고 있다. 그러나 세존은 정ㆍ지ㆍ의의 순서로 보았다. 즉 감정의 억제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고 정신세계에서 통제해야 하는 제일 덕목으로 감정을 들고 있다. 참 위대한 가르침이다.

사회나 기업에도 제로섬(zero-sum) 사회가 있고 포지티브섬(positive-sum) 사회가 있다. 제로섬 사회는 상대편을 무너뜨리고 내가 이겨야겠다는 삭막한 사회이다. 이러한 세계야 말로 정글의 법칙만이 적용되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약자는 강자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한다. ‘동물의 왕국’에서 드러나고 있는 면면이다. 그 모습을 볼 때 측은한 마음도 들고 강자의 행위에 분노도 한다. 화면이 바뀌면 조금 전의 일은 곧 잊게 된다. 망각의 동물이란 말이 여기서도 적용된다는 말인가.

포지티브섬 사회는 생판 다르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살고 있으나 현상은 판이하다. 조화게임이기 때문이다. 조화게임은 너는 너이고, 나는 나라는 모래알 정신이 아니고 상호적인 협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경우이기에 그렇다. 연말이면 행인들의 온정의 손길이 모여 사랑의 온도를 높이고 있는 자선냄비가 그렇다. 무의탁 독거노인의 집에 연탄을 배달하고 있는 땀방울도 포지티브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미풍이 아니겠는가. 생면부지이지만 미쁨이 생기는 것도 훈훈한 온정이 대가 없이 오가기 때문이리라.

쇠똥구리는 보잘 것 없는 소똥을 굴리고 있다. 눈덩이 굴리듯이 굴려 경단을 만든다. 뒷다리를 이용해 뒤로 굴려가면서 만들자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그러니 이들의 행동이나 가치관에 눈길을 주기란 쉽지 않다. 나에게 별반 이득이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용이 지니고 있는 여의주는 어떠한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보배이다. 둘은 비교해 볼 것도 없이 가치가 엄청나게 차이 난다. 보잘 것 없는 쇠똥구리와 무값의 여의주. 감히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효용가치가 적다하여 소홀히 한다면 세상에 남아 날 물건이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엄청난 보배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쇠똥구리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그 일로 소모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의주 타령만 하는 사람에게 가슴 가득 여의주를 안겨 준다하여 만면에 미소를 띨 것 같지만 그립고 아쉬운 것이 또 생기기 마련이다. 욕망은 항상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 짤막한 영어 문장을 살펴보자. I see. ‘알았어요.’ 정도의 말이다. see 동사는 ‘본다’는 말로만 알고 있으면 큰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눈으로) 인식하다’, ‘이해한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눈의 기능은 ‘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눈이 사물에 잠시 붙어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서 see는 ‘바래다 주다’ 또는 ‘확인한다’라는 뜻이 있다는 것도 다음 문장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I’ll see you home. Please see that it gets done.

상대를 알고 헤아린다는 것이 사람 간에도 어렵다. 하물며 사람과 동물과의 소통이란 퍽 어려운 일임을 실감하게 한다. 모국어가 다른 외국인끼리 언어의 소통이 수월치 않아 일어나는 어려움은 만만치 않다. 비근한 예로 한국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비닐하우스이다. 그 비닐하우스를 영어권에서는 그린하우스라고 하니 엄청난 언어의 초월이라고 할 만하다. 어린아이가 언어가 모자라 필요한 것이 있거나 불편함이 있으면 울음으로 표현하고 항변하지만 그 내용을 속속들이 헤아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언어의 장벽은 사람을 무지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루에 한두 번씩 보는 개가 있다. 색이 희어 임의로 백구라고 부르고 있다. 어느 때는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어 댄다. ‘그래, 잘 있었니’라고 말을 건넨다. 물론 묵묵부답이다. 사람과 동물 간에 언어소통의 단절이다. 어느 때는 컹컹 짖기도 한다. 아니, 매일 보면서 왜 짖느냐고 타박을 해 보지만 나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반갑다는 인사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사를 역지사지해 보면 상대편 잘못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단순히 ‘나는 네가 아니기에 네가 그렇다고 하면 뭐 그런 것이겠지’라는 아주 간편한 태도를 피상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단조로운 피상성의 논리는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아기와 어른, 사람과 동물간의 소통의 몰이해가 그렇듯이 말이다.

신의가 굳건한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조화롭게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실감이 난다. 그 많은 악기가 각기 연주를 하지만 굉음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조화 때문이다. 하모니는 모든 것을 생기 있게 하고 큰 힘을 발산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획일화 된 것은 부조화를 동반하는 특성이 있다. 다양한 악기소리도 유능한 지휘자의 손끝에서 조화의 미가 더욱 빛날 수 있다. 너 보다는 내가 우월하다는 의식이 사그라들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한 분쟁과 갈등은 골이 깊어 갈 것이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정년 후에도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을 지내며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로  정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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