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 유감 훼불 유감
인민 유감 훼불 유감
  • 기연택주
  • 승인 2015.11.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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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평화는 살림 24

<조선일보>가 전교조 위원장이 한 말 가운데 “빈민과 함께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여기서 ‘빈민’을 ‘인민’으로 왜곡 보도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20일 사설에서 “전교조 위원장이 지난 14일 불법 시위 직전 열린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오늘 우리의 투쟁은 15만 노동자, 민중, 인민, 시민, 청년 학도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망해버린 엉터리 이념을 남의 집 자식들에게 심어 놓으려는 교사라면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실은 “오늘 우리의 투쟁은 15만 노동자, 민중, 빈민, 시민, 청년 학도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녹음된 말을 보낸 전교조 항의를 받고 <조선일보>는 21일 정정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저 해프닝이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안쓰럽고 딱하기 그지없어 몇 마디 보탭니다.

문제는 전교조 위원장이 인민이라는 낱말을 꺼냈다면서 문제 삼은데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어째서 문제를 삼았을까요? 전교조에 흠집을 내려고 찔러보려는데 뜻이었다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여기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민’이라는 말은 쓰면 안 되는 말인가요? 이번에 돌아가신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한 획을 그은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일제 총독부 건물을 철거와 때맞추어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꾸면서 “일제 군국주의 색채를 깨끗이 씻어낸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말이 좋고 나쁘다는 얘기를 나누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 교가에 ‘동무야’란 말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2학년 때 ‘어린이’로 바뀌었습니다. 북녘에서 쓰는 말이라서 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 뒤로 우리는 동무란 정감어린 말을 버리고 친구란 말을 쓰고 말았습니다. 어깨동무는 살아있어도 동무는 아스라이 사라지고 만 것이지요. 낱말에 무슨 죄가 있습니까? 말이란 쓰는 사람이 어떻게 쓰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렸지. 어떤 낱말을 쓰느냐에 앞서 사람을 사람답게 맞아 보듬어 살릴 뜻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걸핏하면 꺼내드는 빛깔론이 먹히는 현실이 안타깝고 슬플 따름입니다. 더구나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내가 인민이라고 하는 말은 일반론이고 네가 인민이라고 하면 종북 빨갱이인가요? 툭하면 빨갱이 또는 좌빨이라고 얘기하는 새누리당은 어째서 당빛깔을 파랑에서 빨강으로 바꿨을까요?

사람을 국민이라고 하던 인민이라고 하던 그건 문젯거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국민이라 부르던 인민이라 부르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하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나라 살림이든 집안 살림이든 기업 살림이든 종교 살림이든 참답게 사람 살림에 뜻을 두고 있다면 이름을 뭐라고 부르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있는 사실을 사실과 다르게 슬쩍 비틀어놓았다면 커다란 문제라는 거지요.

살림을 잘 살아달라고 힘을 줬는데 살라는 살림은 내려놓고 엉뚱한 짓을 한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는 아우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아우성을 잘 받아들여 살림을 잘 하지 못하면 자정하려는 힘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지난 14일 민중궐기도 그런 맥락에서 헤아려 고칠 데 고쳐야 합니다. 이참에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일은 없애야 하겠습니다.

제가 절집안에 살지만 절집 얘기는 입에 잘 올리지 않습니다. 붓다란 말씀, 불교란 말씀을 꺼내지 않더라도 부처님 뜻을 나눌 수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아는 척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집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집단보다 불교가 조화로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평화로운 집단입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지도자들보다 불교지도자들에 대한 바깥사람들 기대가 더 큽니다. 그러니 절집 살림을 사는 분들은 처신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동국대 부총학생회장 김건중 씨가 ‘총장 보광 스님, 이사장 일면 스님 퇴진’을 내세우며 40일째 단식을 하는 것을 보고 불자라고 하면서 그저 먼 산 바라기만 할 수 없어 몇 마디 보태려고 합니다.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세음보살을 내세우는 절집에서 젊은이가 이리 오래도록 제 목숨을 걸고 하는 얘기에 귀를 닫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9월 17일, 동국대에서는 십여 년 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됐습니다. 정족수인 1,788명을 훌쩍 넘는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총장 보광 스님, 이사장 일면 스님 퇴진’ 안건을 결의했습니다. 보광 스님은 선출할 때부터 불거진 논문 표절 문제로, 일면 스님은 불교 문화재인 탱화 절도 의혹으로 학교 명예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다 알고 계시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총학생회가 내놓은 의결 안건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김건중 씨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총장 태도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 단식을 한다고 했답니다. 학생들이 뜻을 모아 내놨는데 깔아뭉개는 학교 살림꾼과 14일 민중총궐기에서 농민에게 대놓고 물대포를 쏘게 만든 정부 살림꾼이 겹쳤습니다.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용주사 문제나 동국대 사태는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사실을 드러내 밝혔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설혹 대중이 하는 얘기가 사실과 다를지라도 제 문제로 절이나 학교가 소란스러워졌다면 그 자체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다행히 조계종 ‘사부대중 100인대중공사 공동추진위원장’ 도법 스님이 13일 동국대 사태와 용주사 문제에 뜻을 밝혔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상임추진위원회가 14일 동국대 이사장 선출 유보를 요청했고, 동국대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일면 스님이 여전히 이사로 남아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이사장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어 불씨가 완전히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조계종종회에서 NGO모니터링 거부하고 해종, 훼불을 내세우면서 언론재갈 물리기를 했습니다. 잘하신 일입니까? 알 수 없는 까닭으로 종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니터링하는 재가불교단체를 막아서고, 뚜렷하지 않은 까닭을 내세워 인터넷 언론 두 매체를 해종, 훼불이라고 하면서 내쳤습니다. 무엇이 종단을 해치고, 불교를 망가뜨리는 일입니까? 잘못을 했으면 짚어주고 고쳐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어디 가서 불자라고 낯을 들고 다니기 부끄럽다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교다움은 잘못이 있을 때 머리 맞대고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어 문제를 풀어 가는데 있습니다. 수없이 사람을 죽인 살인마 앙굴리말라와 얘기바람을 일으켜 뉘우치게 해서 스님으로 받아들인 석가모니 모습이 바로 오롯한 불교다움입니다. 가슴을 활짝 열고 네가 다가서서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어!”라고 외치며 보듬는 이가 관세음보살이 아닌가요?

오늘은 나라 얘기와 절집 얘기를 곁들여 나눴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실, 참다움은 ‘달라도 같이 살자’입니다. ‘같아지자’가 아니라 ‘같이 살자’에 알짬이 있습니다. 여기서 ‘같이’란 달라도 고르고 가지런히 살린다는데 힘이 실립니다. 똑똑하든 모자라든 똑같이 소중히 여기며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국불교가 내세우는 화엄사상은 잡화, 수많은 꽃과 풀이 어우러져 이루는 사상입니다.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이 어깨동무하며 두루 어우러져 펼치는 놀이 한 마당이 바로 화엄누리라는 것을 놓치고도 불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살림 바라지(경영자)는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마음 바탕에서 살림살이를 해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강연을 하는 경영코치이다. 그리고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와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로 ‘무기 없는 평화나라 누구라道 기껍고 도타우面 어울려 살 길 이루里’에 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 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그리고 <달 같은 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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