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슬픈 현실에 대한 성찰
한국불교의 슬픈 현실에 대한 성찰
  • 유경
  • 승인 2015.11.23 10: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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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경 / 마인드랩 대표

불교가 탄생한지 2500년이 지났다. 대승불교의 탄생도 2000년이 되었다. 인류는 20세기물질문명의 폭발적인 성장을 거치고, 금세기 들어 정신 가치를 돌봐야 함을 다시 심각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

달라이라마는 21세기에는 개별 종교의 분별을 넘어서 자유 평등 평화 생명 공존의 인류 보편적 가치가 인류의 삶의 지표가 되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였다.

고타마 붓다는 생명체의 ‘생노병사’하는 근원을 깨닫기 위해 출가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소년기에는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농부의 가난한 질곡의 삶과 밭에서 지렁이를 쪼아 먹는 새, 지렁이의 죽음 등을 목격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숲에서 홀로 명상에 들었다.

그 후 장성하여 생노병사하는 인간조건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가지고 수행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부단히 생멸하는 무상(無常)의 텅빈 실상과 그 벗어나지지 않는 인과(因果)를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인과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었다.

붓다의 가르침의 기본적인 바탕은 청정 무소유 정신이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서 깨달음을 구하고 자비를 수행하는 중생들이 불법(佛法) 수행자이고 붓다의 제자들이다. 따라서 출가 재가에 관계없이 청정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가 진실한 붓다의 제자이다. 출가하여 승복을 입었어도 청정 계율을 어기고 재산관리에 정신이 팔려있는 자들이 어찌 붓다의 제자이겠는가?

지금 승가는 패도 타락승, 권승들에 대한 비판을 승가화합의 이름으로 우유부단하게 방관하고, 편승, 결탁한 것이 쌓여서 전체가 곤욕의 상황에 처해있다. ‘한겨레 신문 휴심정’(2015년 11월 10일)에 실린 백양사 방장인 지선 스님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권력과 자본과 결탁해 마치 종교를 고급 취미 생활처럼 하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해종 행위가 아니다. 진리의 참 수행자는 진실한 실상을 외면하지 않으며,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정(自淨) 없는 자정의 소리만 들릴 뿐, 막상 진짜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딱한 현실이 막막하다. 이렇게 해서 얼마나 지탱해갈 수 있겠는가? 오늘날 한국 조계종의 자화상은 지도자들의 허물이 가장 크다.

지금 한국 승가(僧家)의 병은 자기 성찰의 마비다. 지금 이 승가 집단에 법도는 어디 있는 것인가? 법도가 있다면 그 법도는 도대체 어디다 쓸 법도인가? 붓다의 거듭된 가르침에도 말을 듣지 않는 꼬삼비 지방의 범계 비구들에 대하여, 붓다는 그 지역을 떠남으로써 확실한 의사를 밝혔고, 재가자들은 범계 비구들에게 예도 공양도 봉사도 거부하였다. 결국 당사자 비구들이 붓다를 찾아가 참회하였다고 한다. 참회하는 그들에게 붓다는 ‘좋은 벗을 만나면 함께 가라. 그렇지 못하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떠나듯,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하셨다. ‘침묵할 때 침묵하고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이 시절인연을 알고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이다. 바른 도리, 정도(正道)가 중도이다. 그냥 가운데가 중도가 아니다.

붓다 가르침의 또 하나의 기본 정신은 만인 평등정신이다.  붓다는 접촉조차 금해져 있는 불가촉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깊은 깨달음으로 이끌었다. 그야말로 개혁적인 평등사상을 몸소 보여 주시지 않았는가? 그에 비추어서 현재 한국 불교에는 당연한 것처럼 불평등 습성이 깊게 배어있다. 법당에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방석 색깔을 구분하고, 앉는 자리도 가른다. 법당에 출입하는 문도 다르게 구분하는 것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마치 출가 승려들은 재가자와 구별된 특권계층, 선민인 듯 하는 습관들이 몸에 배어 있다.

또 다른 예로 요즘 지도급 승려들이 입고 나오는 가사장삼 예복을 살펴보자. 이것이 과연 수행자의 복장인가? 붓다가 모범으로 보이신 소박한 분소의(糞掃衣)하고는 거리가 멀다. 터무니 없이 넓은 소매의 가사장삼을 입고 높다란 방석 위에 앉아서 삼배를 받는 한국 선종의 문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붓다의 평등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봉건 계급적 차등 문화로는 21세기에 알맞은 불교는 요원하다. 붓다가 병고의 몸을 애써 이끌고 굳이 가난한 마을에 이르러 입멸한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가자는 승가의존적 태도와 승가에 대한 타성을 버려야 한다. 또한 한국불교에서만 배워야 한다는 집착도 버려야 한다. 불법에는 본래 남도 북도 동도 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 들 때는 들고 내려 놓을 때는 확실히 내려 놓아야 한다. 오른손으로 내려놓고 왼손으로 잡는 것은 내려 놓는 것이 아니다.

잡아야 할 것은 진리(眞理)와 진실한 수행이다. 승복을 입었든 안 입었든 진실하고 정직한 수행자들 그들이 스승이요 도반이다.

묵조선(默照禪)의 폐단을 지적하며 나온 것이 간화선 수행법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선불교에 이르러서, 천 여 년 전의 남의 질문을 화두로 받아 들고 무작정 애쓰는 간화선의 폐단도 심각하다. 진짜 자기의 마음에서 나온 의심을 해야 스스로 길을 연다. 붓다는 말했다 ‘수행을 계속해서 결과가 좋으면 잘 가고 있는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바른 견해(正見)에 의한 바른 수행, 바른 실행만이 바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승가에 만연한 물신주의, 안일주의, 타락과 부패, 권력욕 고급취미 등 세속화, 자기 문중만 생각하는 문중불교, 심지어는 지도급 승려가 스스로의 입으로 ‘불교자본을 관리하는 승려’를 운운하는 등의 매우 잘못된 상태는 간화선의 폐단이 오랫동안 쌓여서 초래한 화인지도 모른다. 재가들의 성찰 없는 공양과 무비판적 복종의 태도도 화를 키웠다.

붓다 탄생 천년 후 인도 불교의 쇠락과 더불어 6세기 이후 세계불교의 중심은 동양문화권으로 이동했다. 21세기 들어 세계 불교는 서구 문화권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그 까닭은 서구의 철학 사상, 과학적 탐구 의식의 확장이란 측면과 함께, 근현대 들어 획득한 서구의 자유, 평등, 민주의 정서가 붓다의 평등 정신을 실질적으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무소유의 정신을 공동체 영성 운동으로 실천해가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의 권위주의도 거추장스런 의례도 벗어버리고, 어디서나 모여서 수행하는 사람들의 실용적이고 진지한 불교 명상수행 문화가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다.

21세기 한국불교도 잘못 온 행태와 형태를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그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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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초 2015-11-26 16:43:17
정답을 모르는자는 정답을 일러도 정답을 확신할수없고.오답을 일러도 오답인지 모른다' 정법없는 이 불교시대, 정법을 말해준들 그누가 정법이라 신뢰하겠는가?! 오직 多數와 힘,큰목소리 내는자의 말를따르겠지..하여튼 정법없는 불교는 결코 불교일수있겠는가?! 2500년이 지나도록 고기는 낚기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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