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는 아니다
딜레마는 아니다
  • 현각 스님
  • 승인 2015.11.20 17:1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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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125.

한 해를 갈무리하는 모습이다. 가로수는 주저리로 겨울 채비를 단장했고 스산하게 부는 금풍(金風)을 이기지 못하고 우수수 낙엽이 진다. 은행잎은 찬란하게 거리를 수놓고 있다. 바람결에 쓸려가는 모습이 수중세계를 보는 듯 하다. 유선형을 이루며 몰려가고 몰려오는 수륙중생의 유희 같아 넉넉해 보인다.

기계와 사람의 도리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거푸 맴돈다. 기계는 입력과 출력이 확실하다. 공사장으로 향하는 레미콘(remicon)을 본다. 물과 모래, 시멘트를 배합해 만든 콘크리트는 건물을 신축하는데 쏟아 붓는다. 입력이 없었다면 저리 가열차게 토해낼 수 있을까 반문해 본다. 스위치를 올리면 기계가 작동하고 불이 켜지기도 하고 내리면 멈추고 불이 꺼지기 마련이다. 하고 하지 않음의 분명한 절도에 마음이 간다.

정직한 기계의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람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의 행동은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기계는 이익과 손해를 가리는 일이 없다. 반면에 사람의 행동은 그렇지가 않다. 불리할 것 같으면 손을 놓고 이익이 될 것 같으면 기웃거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동에 일관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성인은 당시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역설했다.
‘의롭지 못하게 부자가 되고 공명을 얻는 것은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여기서 말하는 ‘나’는 성인 자신일까. 아니다. 성인이라면 이미 부자나 공명 따위는 뇌리에서조차 떠난 상태일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명예를 추구하고 부를 애발라 했는가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만이 아니라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사회가 턱없이 혼탁하다해도 교단이나 상아탑은 세상과는 좀 차이가 있을 법도 한데 웬걸 그 도가 더해가고 있다.

송나라 때 손광헌(孫光憲, ?~968)이 쓴 ≪북몽쇄언(北蒙鎖言)≫이 있다. 내용을 일별하자면 왕광원(王光遠)이란 관료가 있었다. 그는 출세욕이 대단하여 고관대작과 친분을 맺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다. 심지어 채찍질로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웃어넘길 정도였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광원의 낯가죽은 열 겹의 철갑처럼 두껍다(光遠顔厚 如十重鐵甲)’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철면피(鐵面皮)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출세욕이나 명예욕은 결국 친구를 잃고 조직을 어지럽히며 만인에게 빈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국대학교 학생은 단식을 한 달이 넘도록 하고 있어도 책임자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를 거듭 넘기고 있어도 네 탓 타령이다. 학생의 힘겨운 어깻숨이 처량하다. 얼마나 힘이 부쳤으면 차에 몸을 의탁하여 말하고 있을까.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보아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들어 보아라. 자비문중, 애민중생(哀愍衆生)이란 말은 사전에나 있고 한낱 구두선이란 말인가.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벌을 예찬하고 있다.

침을 한 번 쏘면 다시 살 수 없건마는
용기를 냄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도다
사물을 두고도 서로 다투지 아니하니
그 얼마나 어진가

일벌들의 서로 다투지 않는 성품을 잘 묘사하고 있다. 김건중군의 용기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젊은이의 기상이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지난 날 거친 독재의 감시 하에서도 어느 대학 총장은 ‘내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해다오’라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하고 스스로 물러난 일이 있다. 많은 학생들이 독재에 항거하다 잡혀가도 수수방관 했고, 동료 교수가 구금될 때 자신은 총장으로서 무엇을 했던가 반문한 내용이다. 또 다른 총장은 운동장에서 시위하는 학생 군중을 집무실에서 넋 놓고 보며 ‘나는 저 나이에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여 교육부로부터 총장 해임을 당한 일도 있다. 이러한 총장 가운데 한 분은 일제 때 군수 지낸 사실도 부끄럽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 대학들은 이미 정상을 달리고 있는 명문 사학이다.

작금의 동국대학교 문제는 딜레마가 아니다. 정직은 단순한 속성이 있다. 간단한 일을 또래도 아닌 제자들과 갑논을박 한다는 것이 딱하기 그지없다. 딜레마는 그리스어 di(두 번)과 lemma(명제)의 합성어이다. 선택해야 할 길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한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 학교 문제가 이러한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자리를 내 놓는다 해도 그대로 누르고 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아니다. 홀연히 내 놓을 때 실다이 생사일여 공부를 한 수행자라고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것이다. 작은 이기심이 계속 발동된다면 1세기를 훌쩍 넘긴 역사가 무색할 누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역사는 유구하고 욕망은 찰나일 뿐이다. 그 찰나에 목맨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거짓말도 한 수단으로서 때로는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허도방편(噓度方便)이 있다. ≪법화경≫의 화택삼거(火宅三車)의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 불난 집에서 불이 난 사실을 모르고 놀고 있는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양ㆍ사슴ㆍ소가 끄는 수레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화택에서 구출한다는 것이다. 혹시 학교 책임자들은 허도방편이라도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도 아니라면 결단만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 하자 백이와 숙제는 만류하였다. 충언이 먹히지 않자 형제는 주나라에서 나는 곡식을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생명을 부지하였다. 성삼문은 시 한 편을 지어 백이와 숙제를 비난했다.

수양산을 바라보며 오랑캐의 제도를 한탄하는구나
굶주려 죽을지어도 고사리는 먹는가
비록 푸새라도 그 누구 땅에서 나오더냐

그렇구나. 이 시대의 우리는 성삼문의 기상을 고전에서나 볼 수 있단 말인가.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정년 후에도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을 지내며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로  정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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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 2015-11-22 22:39:3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렵게 하신말씀의 뜻을
그들이 알아듣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불자 2015-11-22 19:54:41
딜레마가 그리스어 였군요~!.^-^
은행열매를 구워 먹으면 '폐'건강에 좋은듯 합니다.
은행잎.열매.나무 어느것 하나 버릴게 없는데~

감사합니다.()()()

독자 2015-11-21 10:05:50
며칠전 원로회의에서 했다는 총무원장의 발언...
"종단은 올해 많은 성과를 거뒀고, 중요한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했다,
내년에도 이를 계승하겠다 "...

권력으로 키운 아상,독선이...자기확신장애로 가는 모습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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