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가자는 거지요?
막 가자는 거지요?
  • 기연택주
  • 승인 2015.11.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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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평화는 살림 23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씀이지요? 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초대 법무장관에 진보 성향인 여성 변호사 강금실 전 장관을 앉혔어요. 그랬더니 검찰이 드세게 반발을 했습니다. 그때 노무현 정부 마련한 것이 ‘전국 검사들과 얘기자리’였습니다. 온 나라에 생중계된 이 얘기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젊은 검사들 앞에서 검찰 개혁 당위성을 하나하나 짚어 가는데, 어떤 검사가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에게 특정 사건과 관련해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을 내놨습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이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고 맞받았습니다. 저는 이 정부와 국회 또는 일부 지도층 인사라는 이들이 요 며칠 쏟아낸 말들이 나라사람을 막보고 ‘막가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차벽을 비롯한 최루가스가 섞인 강력한 물대포를 쏟아내 평생 농사를 지어왔던 69세 노인이 경찰 물대포에 맞고 ‘뇌출혈’을 일으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의료인들은 “예고된 참사”라고 짚습니다. 경찰은 최근 여러 차례 집회에서 물대포를 뭇 사람들에게 무차별 난사하는 것을 넘어 직접 사람을 겨냥해 쏴대곤 했습니다. 

아울러 물대포에 섞어 쏘아대는 최루액도 심각합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한국 경찰이 쓰는 최루액 파바와 캡사이신은 사람에게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몹시 위험한 물질이랍니다. 14일 집회에서 뇌출혈을 일으킨 농부 백모 씨가 쓰러진 뒤에도, 경찰은 백 씨를 겨냥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쐈습니다. 이어 둘레 참가자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백 씨를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구조자들에게 강한 수압 물대포를 조준해 쏴댔습니다. 현장에서 백 씨는 이미 의식이 없었습니다.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으면 살이 찢기고 뼈를 부러뜨릴 수 있습니다. 경찰은 과잉진압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일부 언론은 몸을 사리기는커녕 질세라 입에 담을 수 없는 거친 말을 내뱉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경북 고령·성주·칠곡 국회의원 이완영(58)은 16일 “미국에서는 경찰들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80~90퍼센트는 정당하다고 나온다”며 “이런 것이 선진국 공권력이 아닌가”라고 막말을 던졌습니다. 이 의원은 이날 당 초·재선 의원 모임 ‘아침소리’ 회의에서 민중총궐기 집회를 비판하며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면 미국 경찰은 그냥 막 패버린다. 그게 오히려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받는다”고 했습니다. 정부 농업정책에 항의하려고 올라온 70살이 다 된 농부가 경찰이 바로 대놓고 쏜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농촌 지역구 의원이 어떻게 “총 쏴 죽어도”라며 막말을 해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가 하면 친박 좌장격인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72)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법당국이 기본질서를 해치는 일부터 해결하지 못하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IS 테러에도 이길 수 없다”면서 “이것부터 확실히 뽑아 놔야 국제 테러에도 맞대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프랑스 국민들은 질서 있게 국가를 부르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데 대한민국 심장인 서울에서는 7시간 동안 무법천지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TV조선 <뉴스토요특급>(11/14)에 나온 토론자 정군기 씨는 “우리나라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위 문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용적”이라고 했습니다. 또 경찰을 향해 “소극 대응, 차단벽 설치 이런 걸로 만족하지 말라”며 “특단”을 요구했습니다. 함께 나온 양욱씨는 “저쯤 되면 폭동 수준”이라면서 “인원이 부족하면 북유럽식으로 해야 한다”며 “거의 사람을 잔인하게 두들겨 팹니다. 정말 아주 기가 막힐 정도”라면서 시위대를 ‘두들겨 패야’ 한다며 거침없는 막말을 내뱉었습니다. 또 채널A <뉴스 스테이션>(11/14)에 나온 황태순씨는 “1차 2차 3차 저지선이 뚫리고 통의동 쪽으로 확 뚫려서 (시위대가) 청와대까지 갔다고 생각해 보자”면서 “그러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위수령 발동”이라 했습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얘기지요?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제 나라 살림을 해나간다는 이들이 망설임 없이 내뱉는 막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나라사람들이 우스워 보이면 헌제가 위헌이라고 한 ‘차벽’을 세워 시위대를 몰아넣고 위험물질을 섞은 물대포를 사람얼굴이 찢어지도록 마구 난사하고 쓰러진 사람에게 또 쏘고, 구하러 오는 사람들과 심지어는 부상을 당한 사람들 싣는 구급차에 대고 물대포를 쏘아 대겠습니까? 그것으로도 모자라 거기다 대고 ‘마구 두들겨 패고’ ‘총 쏴 죽여도’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단 말입니까?

서울대 간호학과 학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저는 현재 서울대학교 간호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한 학생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는 오늘 보았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구조하러가는 손길에 최루액이 든 물을 쏘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온 앰뷸런스를 향해 물대포가 쏟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의료계에 헌신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구해야 하는 것은 인명이며
인명을 위한 거룩한 분노는 제 사명입니다. 대통령님, 당신은 오늘 앰뷸런스를 향해 물대포를 쏘았습니다. 당신이 쏜 것은 이제까지 제 목숨과 맞바꿀 만큼 수많은 의료인들이 지켜왔던 인명구조에 대한 윤리와 양심입니다. 우리는 환자가 어떠한 종교를 가졌든지, 어떠한 사상을 가졌든지, 어떠한 배경을 가졌든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그 누구도 상처 입은 채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료인인 우리 의무이자 우리 자부심이며 우리 양심입니다.

당신은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 노력을 너무도 쉽게 무시했고 너무도 쉽게 권력 아래에 짓밟았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노력해왔던 것들, 제가 이제까지 자부심을 느껴왔던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권력 아래에서 너무나 쉽게 유린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가 저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외우고 이렇게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해 다시 고통 한복판으로 뛰어들게 되겠지요. 대통령님, 그 때도 제가 이런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린 학생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이 학생이 하는 말이 바로 살림살이 밑절미입니다. 나라 살림꾼들은 특히 ‘당신들을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민주화 시위를 하다가 옥살이를 하다 감옥에서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 선생은 어제 페이스북 담벼락에 ‘나는 왜 광화문 네거리에 가는가?’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내 나이 올해로 환갑.
스무 살 때 처음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반대하여 광화문 네거리에 선 이래 40년이 지나도록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누구는 철이 안 들었다고 하고 누구는 종북좌빨이라고 한다. 이 나이가 되니 그 보다 더한 소릴 들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솔직히 20대엔 어제 같은 대규모 군중이 모이면 뭔가 이 사회를 당장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 착각이 기나긴 수감생활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혁명이 필요한 시대이지만 혁명이 불가능한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외부로 향한 혁명은 내부를 향해 파고들어갔고 나는 도시를 떠나 시골 산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얼핏 보면 좌절한 혁명가가 세속을 등지고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나는 중요한 궐기대회만 잡히면 그 먼 서울까지 올라가 광화문 네거리에 서는 것일까?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민중권력의 쟁취를 위해서?

아니다. 90%는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나머지 10%는 숫자 하나라도 더 채워주기 위해서 이고.
나는 몸으로 사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입과 머리를 집중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몸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들이 짜 놓은 장기판의 말처럼 이리 저리 밀려다니다 시나브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갈 뿐이다. 나 역시 이 사회, 아니 이 지구촌에서도 혜택 받은 10%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이들은 적당히 구라 풀고 머리 굴리면 어떤 상황에서도 굶어 죽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형무형의 네트워크까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몸을 쓰지 않으면 물질계의 지배자들이 펼쳐놓은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어있다. 나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몸으로 사는 사람들이 지배자를 향해 울분을 토해내는 현장에 간다. 가서 자신을 돌아보고 연대감도 다져본다.

나이가 70이나 된 늙은이가 민중총궐기 집회에 노구를 이끌고 온 까닭을 몰라서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으십니까? 당신들을 누가 뽑았습니까? 사람 살리라고 뽑았지 죽이라고 뽑았습니까? 당신들이 하는 일이 오죽 답답하고 딱하면 1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거친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겠습니까? 시위대들도 맞으면 아프고 강력한 물대포가 아니더라도 맞으면 춥고 떨리고 최루액을 맞으면 고통스럽습니다. 정치가 뭡니까? 다스림이 뭡니까? 다 살림입니다. 같이 살려고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힘 있는 자들만 살게끔 하는 정치라면 그게 정치입니까? 억누름이요 짓밟음이지. 목숨 무게는 똑같습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국회의원과 장관, 경찰청장이나 물대포를 맞고 삶과 죽음을 헤매고 있는 농부 목숨 무게가 다르지 않습니다. 

   
살림 바라지(경영자)는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마음 바탕에서 살림살이를 해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강연을 하는 경영코치이다. 그리고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와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로 ‘무기 없는 평화나라 누구라道 기껍고 도타우面 어울려 살 길 이루里’에 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 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그리고 <달 같은 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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