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웃음
인조 웃음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5.04.20 10:25
  •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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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45.

필자는 지금까지 삼십년 동안 대한항공을 수백 회 탔다. 탈 때마다 행복했다. 승무원들은 얼굴가득 웃음을 머금고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손님을 배려하는지, 배식 중에 손님이 원하는 음식이 다 떨어져 줄 수 없으면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해한다. 외국인의 증언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한항공을 타면 천상의 선녀들에게 봉사를 받는 느낌이었다. 비행기가 만 미터가 넘는 고도를 날아가니, 이런 승무원들은 하늘나라 선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 필자가 경주에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항공기 승무원들 서비스가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대한항공 승무원들을 칭찬했다. 아름다운 용모와 웃음을 찬탄했다. 그런데 한 이탈리아 학자가 그게 다 인조웃음이라는 것이었다. 용모야 무척 아름답지만, 웃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웃음이라는 말이었다.

그동안 필자가 누려온, 삼십년이나 된 행복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언이었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그 후 대한항공을 이용할 때 그 일이 생각나 여승무원에게 물어봤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엄청나게 강도 높게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손님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 징계까지 받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소위 감정노동이었다.

감정노동 종사자들은 하루일이 끝나면 감정이 고갈되어 얼굴에서 표정도 사라진다고 한다. 평소 품어왔던,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무표정한 표정으로 돌변하는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미스터리한 모습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승무원들의 고된 생활을 알게 되면서 옛날의 행복한 기분이 사라졌다. 오히려 승무원들에게 미안해졌다.

친절한 승무원들의 존재는 아무리 세태가 각박하더라도 인간이 이토록 선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선녀들에게는 아무리 친절을 받더라도 미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본성이 그러하며, 그 일로 인하여 조금도 감정이 메마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선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 이를 어쩌랴.

대한항공과 대조적으로, KTX의 승무원들은 그리 친절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승무원들은, ‘객실에서는 전화통화를 하면 안 된다’고 승객들을 찌푸린 얼굴로 가르치고 엄히 꾸짖기까지 한다. 아마 공무원 신분이라 그리고 경쟁업체가 없는 독점기업이라 그럴 것이다.

대한항공은 전(全)세계 수백 개 항공사를 상대로 경쟁한다. 그 경쟁의 와중에 독보적인 친절봉사를 만들어냈다. 이유야 어떠하건 간에, 친절이 불친절보다 족히 억만 배는 낫다. 외국항공사 비행기를 타보면 승무원들이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다. 투박한 말투와 거친 몸놀림은 대한항공의 친절한 봉사에 익숙해진 사람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친절은 유전자에 크게 의존한다. 인간은 침팬지와 보노보와 600만 년 전에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침팬지가 전투적이고 보노보가 평화로운 것은 생체유전자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들과 인간처럼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에게는, 사회제도와 전통을 통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문화유전자의 영향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사례는, 인간은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타인에 대한 친절한 모습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사회에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와 그것이 다시 친절한 개인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라는 피드백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장기적으로는 생체유전자도 변화시킬 것이다. 마음도 아름답게 변화시킬 것이다. 이 점에서 대한항공 경영진과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불교 등 고등 종교의 역할은, 개개 인간이 자신의 짧은 생존기간에 직접 그 힘과 효과를 확인하기 힘든, 격이 높은 선행을 사회에 집단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이다. 먼저 행해보고 그 행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힘과 효과를, 신속하게 혹은 먼 후일에, 개인적으로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집단적으로 확인할 때 우리는 종교의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

‘받아야 행복하지만 주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실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이는 개체보존이라는 생명체의 본성에 역하는 일이기에 (그렇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개별체적인 차원이 아닌 더 높은 조망(鳥望)의 집단적인 차원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참된 종교의 힘이 바로 그런 힘에 속한다. 우리가 종교적 가르침에 대한 사유와 실천을 통해서 타인과 타생물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과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보상은 없으리라. 친절과 웃음은 이 고해(苦海)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보기 드문 존재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대한항공으로 해외출장을 가던 길에, 마음은 여전히 그 이탈리아인의 영향으로 무거웠지만 용기를 내어, 오랜 비행으로 인한 지루함을 달래려 승무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참에 ‘문제의 웃음’에 대해서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승무원들은 하나같이 펄쩍 뛰며 자기들 웃음은 절대 ‘인조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중에도 웃음이 얼굴을 떠날 줄을 몰랐다. 그간 친절과 웃음을 꾸준히 실천한 결과로 친절과 웃음이 대한항공의 제2의 천성이 된 것 같아서, 그리고 그동안 잃어버렸던 오래된 옛 행복을 되찾은 것 같아서, 무척 즐거웠다.

좋은 일이란 자꾸 하다보면 진심으로 하게 되는 법이다. 필자가 그 이탈리아인으로 인해서 상실한 ‘수십 년간 누리던 행복’에 대해서 언급하던 순간,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듯이’ 슬픈 눈으로 필자를 쳐다보던 승무원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기 좋은 곳이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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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중/ 2015-04-28 17:14:34
건너간다는 것은 건너갈 대상이 있다는 의미잖아요?
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면 고정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무언가는 있다는 말이네요?
진여, 진공묘유, 열반적정은 진리를 표현한 말인데 그것이 변한다면 진리가 아니지요 ㅎㅎㅎ

땡중 2015-04-28 15:36:04
일체가 공하다는 말은 ‘있음’을 단순히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연기하여 끊임없이 변하므로
고정불변의 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고정불변을 전제로 하는 비불교적 개념입니다.
불교는 유무의 비역동성을 벗어나 존재의 역동성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진여에 대해서도 그것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영원불변의 세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진여든 진공묘유든 열반적정이든 석가모니부처든 다 뗏목일 뿐입니다.
건너가는 과정에선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건너갔을 때는 미련없이 버려야할 대상입니다.
아까워하면서 남한테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건너는 과정에서 피안이 아니라 뗏목에 마음의 우상이 생기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어리석음에 빠지지않고 건널 수 있습니다.

땡중/ 2015-04-28 13:14:43
?

땡중/ 2015-04-28 12:26:39
아무것도 없고 일체개공뿐이라면, 열반적정이나 적멸위락도 없어야 맞지요.
아무것도 없는데 적정한 열반을 얻느니 적멸의 즐거움이 있다고 할수 있을까요?
하지만 제행무상+제법무아+열반적정+적멸위락, 이것이 함께 불교의 근본사상임을 볼때
진여불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음을 알수 있죠.
참으로 공한 가운데 묘하게 있는 '진공묘유'가 대승사상이지요.

땡중/ 2015-04-28 09:54:04
이 혼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정견을 지닐 수 있는지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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