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자
성성자
  • 현각 스님
  • 승인 2015.01.1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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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81.

지난날의 아스라한 기억이 있다. 평지인데도 길을 걷다 넘어진다. 왕모래위에 넘어지면 무릎에 듬성듬성 핏자국이 맺힌다. 어느 때는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한다. 이때는 핏자국은 보이지 않지만 그저 아프다. 여간해서 일으켜 세우지 않았던 어머니였다. 아프다고 칭얼대고 길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어서 일어나라고 채근이다. 그때서야 흙먼지도 털어주고 눈시울에 맺힌 눈물도 훔쳐 주었다. 다음에 넘어지지 않는 주술 행위라도 되는지 넘어진 땅에 퉤퉤하고 침을 뱉고 하늘을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한동안은 넘어지는 일이 뜸 했다.

지금 길은 옛길과 판이하다. 옛길이야 먼지가 푹석푹석 이는 길이었다. 지금은 어디에 가도 포장이 잘 되어 있고 아니면 보도블록이 덮여 있는 말쑥한 모습이다. 이런 길에서 넘어진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요즘 유난히 보도블록에 걸려 걸음걸이의 균형을 잃는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참 기이한 일이다. 바닥에 모래가 있어 미끄러운 것도 아니고 경사진 길도 아닌데 왜 이러지. 아마 주의력이 부족한 탓이다. 잡생각을 거두고 한 발 한 발 걸음에 신경을 썼더라면 무난했을 것이다.

산행을 할 경우도 그렇다. 산속에 들어가면 자신은 퍽이나 작아진다. 목적지를 향해 걷다보면 작은 돌부리에 넘어지는 때가 있다. 물론 방심의 소산이다. 등걸밭이 아니라 해도 나뭇등걸에 걸리기도 한다. 썩어서 그 힘없는 밑뿌리를 두고 있는 고자배기에 넘어지다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과 육신의 평상심을 잃게 하고 만다.

연전에 있었던 일이다. 동국대의 자매학교인 일본 용곡(龍谷) 대학에서 집중강의를 한 적이 있다. 만감이 교차하였다. 36년간 지배 했던 일본이다. 그들에게 강의한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설렘의 시간 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열강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앞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의자를 책상 가까이 당겼다. 아이고! 무릎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친 것이다. 몇 번이고 손바닥으로 마사지를 하고 책을 폈다. 그 바람에 정신은 바짝 들었다.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 선사는 길을 걷다 발가락이 돌부리에 부딪쳐 ‘아야!’ 하는 순간에 도를 깨치게 된다. 똑같은 ‘아야!’인데 기별이 없는 걸 보면 사람마다 근기가 천차만별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사비 선사에게 성성자(惺惺子)는 없었으나 화두는 성성(惺惺)했던 것이다. 선사의 일미를 맛보는 것은 다음 숙제로 넘기고 스탠드 불빛에 시선을 모았다.

조선에 남명 조식(1501~1579)이라는 선비가 있다. 중종, 명종, 선조 임금으로부터 수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였다.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쟁이나 일삼는 부패한 벼슬아치들과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수기치인(修己治人)ㆍ실천궁행(實踐躬行)을 중히 여겼다. 반면에 동시대의 인물인 퇴계는 형이상학적인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에 기반을 두었다. 그는 소백산하 안동, 남명은 지리산하 삼가에서 향리로 태어났다. 거처가 낙동강의 좌우로 나뉘어 있었으므로 강좌학파(江左學派)ㆍ강우학파(江右學派)로 불리우기도 한 이들이 바로 기호학파에 맞서는 영남학파의 두 주류가 된다.

평소 남명은 장도(粧刀)를 늘 품에 지니고 다녔다. 그 장도 오른 편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이, 왼 편에는 외단자의(外断者義)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남명은 경과 의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경(敬)은 받듦과 삼감의 자세를 뜻한다. 타인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다. 의(義)는 옳음이니 정의로움을 향하는 정신이다. 대인관계나 정치상황을 의로운 정신으로 판단하고자 했다. 의롭지 못한 것은 칼로 자르듯 베어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래서 그가 지니고 다녔던 장도는 자신을 경계하고 지키는 무기였던 것이다. 경과 의에 혹 소홀해질지도 모르는 자신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상징물이다.

또한 남명은 두 개의 작은 쇠 방울을 옷고름에 매달고 다녔다. 그 방울의 이름을 성성자라고 하였다. 성(惺)은 ‘깨닫는다’는 뜻이고 또한 ‘사물의 도리를 깨닫는다’는 말이다. 성성자는 스스로 경계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쇠 방울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영롱한 소리로 울렸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방울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나는 경과 의를 떠나 있지는 않는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장소가 혹 경과 의로부터 먼 곳은 아닌가? 이러한 자기 검열이 따랐고 자아반성의 구도자적 삶을 살았던 것이다. 만년에 자신이 수양하는 데 사용했던 방울은 김우옹(金宇顒)에게, 그리고 칼은 정인홍(鄭仁弘)에게 주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정인홍의 학문적 열정이 물씬 묻어나는 대목이 있다. 그의 살갗에는 많은 손톱자국이 나 있고 핏자국이 얼룩덜룩 했다. 자신의 살을 꼬집으며 졸음을 쫓았던 것이다.

서쪽 하늘이 붉은 낙조에 물들었다. 나무초리까지 그렇다. 내일도 붉은 해는 뜨겠지만 오늘 해는 아니다. 오늘 몫을 다했는지 자문해 본다. 어느 도인은 지는 해를 보고 한 없이 울었다지. 시주 물을 받고 뭘 했는지 몰라서였다.

모이는 자리마다 학교 얘기가 무성하다. 어느 동문은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학교가 시끄러워서란다. 별로 아는 바 없는 입장이라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난장판처럼 시끌벅적한 이러저러한 일들도 언젠가는 고자누룩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일월성신과 같이 꼭 그 자리에 그렇게 운행할 수 없는 나약함이 있다. 그러나 고요를 찾고 질서를 유지하고 선후가 정연해지리라 믿는다. 단지 정이사지(靜而俟之)한다하여 절로 되는 일이 아니고, 오직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진실을 능가할 웅변도 없고, 진실을 능가할 정답도 없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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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2015-01-14 18:12:42
제일 멎저 찾아 잘 보고 있습니다.
요즘 에 드물게 대해보는 큰 스승님의 수행력이 느껴지는 칼럼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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