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남 집 화장실인데 변기가..."
위기상황에 누리꾼 지혜 모았다
"썸남 집 화장실인데 변기가..."
위기상황에 누리꾼 지혜 모았다
  • 오마이뉴스 손지은
  • 승인 2014.11.04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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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공동으로 고민해결... 관계망 확장? 오프라인 관계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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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썸남 집 화장실인데 변기가 막혔어요" 지난 2일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고민글. 이곳 커뮤니티 이용자들인 4시간 여에 걸쳐 글쓴이가 변기를 뚫을 때까지 댓글로 실시간 상담을 이어갔다. ⓒ 오늘의 유머 갈무리

"썸남 집 화장실인데..."

작성자 '익명Z2djY'(아래 'Y')가 지난 2일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SOS를 요청했다. 연인 사이로 넘어가기 직전,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사이인 '썸남'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만 변기가 막혀버렸다는 것이다. 썸남은 이 사태를 모르고 쿨쿨 자는 중. Y는 그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자신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

"돌아 버리겠네, 정말 ㅠㅠㅠㅠㅠㅠㅠ"

Y가 글을 올린 지 30여 초 만에 다른 이용자들이 댓글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뚫어뻥(을) 계속 쓰다보면 됩니다."
"비누를 잘라서 넣으면 돼요."
"옷걸이(를) 쓰세요."

세 가지 조언 중 Y가 선택한 것은 '뚫어뻥'이었다. 하지만 글을 올리고 4분여 만에 댓글로 다시 나타난 Y는 더욱 당황한 기색이었다.

"으악!!!!!!!!!! 어떡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뚫어뻥으로 변기를 뚫다가 그만 "응가물"이 역류해 더욱 상황이 악화돼버렸다는 것. 이때부터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마치 자신이 그 화장실에 갇혀있는 것 마냥 몰입하기 시작했다.

"지금 실시간 상황입니다, 지혜를 모아 이분을 구해줍시다"

"이건 아무나 안 알려주는데... 변기 옆에 보면 변기 닦는 솔 있죠?? 그 솔을 변기구멍에 꾹 누른 상태로 푸쉬업(pushup) 해줍니다. 압력을 넣는 거죠. 일초에 세 번 정도 빠르게 앞뒤로 푸쉬업 해주세요. 그렇게 열 번 정도만 해주어도 99% 뚫립니다."
- '익명amJqa'

"옷걸이 하나를 가져와서 '?'(고리부분)를 '1'로 만들고, 아래 모양을 'ㅅ'에서 '◇'모양으로 바꾼 다음에 쑤시세요. 그럼 응가가 분해돼서 뚫리던데."
- 닉네임 '한량이***'

Y의 1차 실패 후 이용자들은 온갖 노하우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실시간 상황입니다, 지혜를 모아 이 분을 구해줍시다"라며 너스레를 떠는 이용자도 있다. 그 사이 이 글은 추천수 10을 넘어 '베스트게시판'으로 보내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이용자들이 힘을 모은 결과였다.

Y가 변기와 시름하는 사이 다른 이용자들은 "썸남 집에는 뭐 하러 간 걸까나 으흐흐" "왠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자는척하고 있는 썸남의 모습이 그려진다" 등의 수다를 떨며 그의 성공소식을 기다렸다. 그때 다시 Y가 나타나 "솔을 써봤지만 변기를 뚫는 데는 실패했다"는 안타까운 상황을 알렸다. 이용자들은 다시 샴푸로 뚫는 법, 랩으로 뚫는 법 등을 제안했다. 그렇게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던 중, 우려했던 위기상황이 발생했다.

"으악!!!! 깼어!!!!! 깼다!!!!! 밖에서 물 마시는 소리 들리고!!!!!! 어떡해!!!!!!!!!!!!!!!!!"

흔적을 지우기 전에 자고 있던 썸남이 깨어난 것이다. 긴급 상황에 당황한 건 Y뿐만이 아니었다. 이용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짧게는 1초 간격으로 댓글을 달며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게시판에 긴장감이 흘렀다. 

"일단 나가서 남친 부터 기절 시키는 건 어떤가요??"
"샤워한다고 해요, 갑자기 씻고 싶다고 시간을 버세요"
"썸남 집에서 샤워가 더 이상해요"
"똥을 들키느니 샤워가 나을 듯ㅜㅜ"

Y에게 썸남이 깨어나는 최고의 위기상황이 닥쳤지만 그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6분여 만에 다시 나타난 Y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였다.

"와하하하하핳하 신난다!!!!!!!!!!!!"

결국 Y가 썸남에게 사태를 알리며 긴급 상황이 종료됐다. 상황 종료 소식을 알리기 10여 분 전에는 Y가 "집에 가고싶어요....."라고 댓글을 남긴 뒤 한동안 나타나지 않아 이용자들을 애태우기도 했다.

"뚫리느냐 넘치느냐 과연 작성자의 운명은..."
"최후의 방법인 손을 씁시다."
"현 상황 알려주세요 작성자님,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다음 작전을 짤 수 있습니다."

이용자들의 관심은 Y가 남자친구의 도움을 얻어 변기를 뚫는 과정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Y는 4시간 여 만에 성공소식을 알렸다. "결국 뚫었습니다......도와주시려고, 노하우 전수해주신 분들 감사 드려요." 자정을 1분 45초 넘긴 시각이었다. 당시 댓글은 600개를 넘어섰다. 한마음으로 시트콤 한편을 창작한 이용자들은 "모두 고생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썸남과 그 후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며 후속편을 기대하는 이용자도 있었다.

사소한 고민을 공동으로 해결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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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썸녀와 데이트하는데 옷 괜찮은지 봐주세요"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한 이용자가 고민을 올리자 다른 이용자들은 밤새도록 댓글로 실시간 상담을 이어갔다. 뒤늦게 '성지순례'를 오는 이들의 댓글까지 합쳐져 총 3천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 오늘의 유머 갈무리

이곳 커뮤니티에서 집단 창작극이 탄생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지난 9월에 화제가 됐던 글은 "내일 썸녀랑 약속이 있는데 옷 괜찮은지 봐주세요"다. 작성자 '고진***'(아래 고진)는 "옷은 많은데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곳에 도움을 청했다. 나름대로 옷을 갖춰 입고 찍은 사진 한 장도 첨부했다.

사진을 본 이용자들은 "평생 혼자이기 싫으면 옷 사세요" "모쏠(모태 쏠로 -기자주)인 제가 봐도 안 괜찮아요"라며 그의 고민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다시 고진이 나타나 "그럼 어떻게 입어야 하나요, 제일 괜찮은 걸로 골랐는데"라고 토로하자, 한 이용자가 "있는 옷, 하나 하나 찍어서 올려 보세요, 코디를 시작해봅시다"라고 제안했다.

그 때부터 이용자들은 그의 코디네이터를 자처했다. 고진은 이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이며 옷을 갈아입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바지 워싱이 촌스럽다" "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어라" "벨트는 풀어라" 등 이용자들은 깐깐했다. 이날 고진은 총 12번에 걸쳐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이들로부터 'OK'사인을 얻었다.

이용자들의 시선은 옷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어 신발장에 있던 그의 모든 신발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전 1시 50분께 시작한 실시간 고민 상담은 밤을 꼬박 새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일부 이용자들이 뒤늦게 '성지순례'까지 오면서 댓글이 이튿날 오전 3시까지 달렸다. 댓글 수는 무려 3000개를 돌파했다. 거기에 데이트를 다녀온 고진이 후기를 올리면서 또 한 번 이용자들이 몰려들었다.

"사회적 관계망의 확장" vs "오프라인 관계의 빈곤함을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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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메인 페이지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서는 소소한 고민을 여럿이 해결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적 관계망이 확대된 것"과 "오프라인 관계의 빈곤함이 가져온 결과"로 해석했다. ⓒ 오늘의 유머 갈무리

이러한 실시간 상담 글은 같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다른 글보다 더 많은 호응을 얻는다. 실제 변기가 막혔다는 Y의 고민 글은 같은 페이지에 올라온 기타 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댓글(600여 개)이 달렸다. 다른 글의 댓글은 많아봐야 100개 남짓이다.

이곳의 특징은 오프라인 친구에게나 털어놓을 법한 소소한 고민을 단체카톡방 대신 커뮤니티에 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본 다른 이용자들 또한 생면부지 사람이 올린 고민에 크게 반응한다. 마치 자신의 일 인양 적극 개입해 한 사람의 고민을 공동의 고민으로 삼고, 해결하려 애쓴다. 일종의 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혼자일 땐 외로운, 함께일 땐 불안한>(사막여우,2013)을 쓴 이인 작가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오프라인 관계의 소홀함"에서 찾았다. 이 작가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고민을 함께 해결하는 현상에 대해 "말 못하고 끙끙대던 것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창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내 주변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부재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그는 또 "오프라인 관계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온라인으로 대신 채우고 있지만,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이기에 체온을 나누고 눈빛을 주고받지 않으면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관계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 관계망이 확장된 것일 뿐"이라고 봤다. 황 교수는 "전에는 얼굴을 알거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단서들을 미리 알아야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얼굴을 몰라도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개인적이고 잡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또한 황 교수는 "현실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보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이 오히려 짦은 시간에 더 강한 강도로 이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제휴에 의해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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