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먹고 살 수 없다
돈을 먹고 살 수 없다
  • 변택주
  • 승인 2014.10.2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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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93. 하이데마리 슈베르머

“내, 그럴 줄 알았다” 며칠 전 이삿날 아내가 던진 말이다. 하도 이사를 해서 세간이 성한 데가 없다. 그만큼 이사를 해댔으면 셈이 설만도 한데 늘 낯설고 서툴다. 집을 거듭 줄이고 짐도 거듭 줄이며 먹이도 부득이 할 때를 빼고는 하루 한 끼만 먹어왔는데, 유독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책이다. 이번 이사 길에도 400여 권 줄였다지만, 서재가 40퍼센트 준데 견주면 코끼리 비스킷이다. 거실이며 부엌이며 온통 책판이다. 결국 사단이 터졌다. KT 올레 인터넷 설치 기사와 전기 단자에서 선을 빼려고 바퀴달린 책장을 밀다가 그만, 뒤쪽 책장바퀴가 부러져 책장이 기울고, 이중으로 책을 꽂아 900여 권 가까운 무게를 기사 혼자 버티고 나는 서둘러 책을 빼냈다. 그이 힘이 좋았기 망정이지 나 같았으면 책장에 깔렸을 것이다. 미련이 사람 잡을 뻔 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돈벌이,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어

그런데 여기 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우리 멱살을 거머쥐는 사람이 있다. 돈벌이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니 무슨 뜬금없는 얘기냐고 눈에 불을 켤 분이 적지 않으리라. 그러나 스무 해 짧지 않은 세월을 가진 것 다 내려놓고 꼭 써야할 것은 바꾸고 나눠 쓰며 살아가는 하이데마리 슈베르머Heidemarie Schwermer(1942-).
직업을 버리고, 집을 버리고, 의료보험도 없이 살면서 내남없이 모든 일에 적극 나서고, 다른 사람 빈집지기를 하며, 무일푼으로 살아가는 사람 슈베르머. 물질 없이도 평화롭고 너를 품어 안으며 나날이 품이 커지는 삶, 나누어 더 넉넉하고 너그러워지는 사람, 물질만능에 허우적대는 우리 삶에 울림을 주는 사람이다.

1942년 동프로이센 메멜에서 커피가공공장을 하는 아버지에게 태어난 하이데마리 슈베르머는 세 살 때까지 꿈결 같던 시절을 보내다가 그 해 여름 집안 세간에 덮개가 씌워지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짐을 꾸렸다. 거리는 말과 마차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슈베르머 식구들도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전쟁 막바지 피난길이었다. 그렇게 가진 것을 잃고 서독으로 이민을 간 슈베르머는 가난과 폭력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오들오들 떨며 하루하루 보낸다. 이런 일을 겪은 뒤 소심해진 아이는 저 혼자 세계에 빠져 산다. 유일한 위안은 동화책이었다. 동화책 속에서 사랑과 꿈을 맛보며, 현실 속에서는 가진 자들이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나누어 주지 않고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을 봤다. 어린 소녀는 굳게 마음먹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 거야.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져야 해. 모든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해.” 이 마음이 삶을 이끌어 주는 작은 등불이 됐다. 교육자가 되어 사람들 삶을, 세상을 바꾸어 보려 하지만 제도 안에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으며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닫고 박차고 나온다. 그 뒤에 결혼을 했으나 이혼을 하고 두 아이를 혼자 키운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학교가기가 무섭다고 할 만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도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원망을 하기도 수십 번.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씩 아들을 데리고 심리치료를 받은 것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 나는 운명 희생물일 뿐 아니라, 운명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구나’하고 깨닫는다.

그리고 여러 십년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라디오를 듣다가 캐나다에 있는 어느 마을에서 지역품앗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듣는다. 마을주민 생계를 책임지는 공장이 문을 닫자 주민들 스스로가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친 끝에 일어난 운동이라고 했다.


품앗이 운동

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남다른 능력을 ‘상상냄비’에 집어넣으면 다른 사람이 꺼내 쓰는 것이다. 정원 가꾸기, 미장이 일, 마사지, 미용, 옷 만들기, 아기 봐주기, 빵 만들기, 요리, 자동차 수리처럼 아주 여러 서비스가 쏟아져 들어왔다. 주민들이 내놓은 모든 서비스는 상상냄비에 모았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줬다.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그 빚을 돈으로 갚지 않고 제 힘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으로 갚았다. 한 남성이 이웃 여성 자동차를 수리해주면서 자동차 수리에 쓴 시간이 다섯 시간이라면 그 남성 계좌에 다섯 시간만큼 예금액이 쌓인다. 이 사람이 집을 고치면서 도배장이 도움을 받는다면 그 시간만큼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자동차 수리를 받은 이웃집 여성은 옆집 아이를 다섯 시간 봐주면 빚을 갚을 수 있는 누구나 헤아리기 쉬운 방식이었다. 돈이 없어도 사는데 없어서는 안 될 여러 가지 문재를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이가 돈독해질 수 있어 좋았다. 슈베르머는 무릎을 쳤다. ‘이거야!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난과 고독을 넘어설 가장 좋은 방법이야.’ 슈베르머는 언론사에 편지를 보냈다.

“우리 사회곳곳에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일에 치여 녹초가 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할지 고민하는 실업자들이 즐비합니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시간이 없어 허덕이는 사람에게 시간을 나눠줄 수 있다면 모두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제 남은 시간을 지역품앗이 운동에 쏟으렵니다. 품앗이 운동이란 저마다 지닌 쓸모나 쓸모 있는 물건을 서로 나누자는 운동입니다. 나누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빈부 격차도 줄이며 새로운 더불어 살기를 빚을 수 있습니다. 주고받기 조화가 깨진 이 시대, 나는 이 지역품앗이 운동 모둠을 ‘주고받기 모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1994년. 이 기사가 나간 뒤에 슈베르머는 바빠졌다. ‘주고받기 모둠’을 만들면서 슈베르머가 가장 공들인 부분은 돈이었다. 돈이라는 괴물이 사람 목을 얼마나 죄고 있는지, 경제가 엉망이 되면 삶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가난에 허덕이며 겨우 목숨을 이어가면서도 대책 없이 하루하루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짚었다. 그러면서 ‘주고받기 모둠’에서는 사람들이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새로운 삶 밑절미를 다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처음부터 절대 돈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동안 우리가 누려온 시장 경제 원칙은 간단하다. 힘센 사람이 모든 걸 독차지해 힘이 약해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떠밀려난다. 잉여, 그러기에 사람들은 늘 남보다 더 벌고 더 잘 나가려고 아귀다툼이다. 그러나 슈베르머는 성과를 바라지도 경쟁을 바라지도 않았다. 저마다 쓸모를 찾아 그것을 존중하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사회와 이웃에게 쓸모나 쓰임새를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 땅에 세울 내 파라다이스는 다른 사람을 방해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되 모든 사람이 제 기꺼워하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낱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룬 스스로 어우렁더우렁 사는 넉넉한 사회가 될 것이다.”


집을 없애고 살자

그런데 뜻밖에 사람들은 기꺼이 ‘주기’는 즐기면서도 ‘받기’를 꺼려했다. 깊이 짚어보니 사람들은 무언가를 나눠줄 때는 제가 센 사람이 된듯하지만, 거꾸로 도움을 받을 때는 무기력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이런저런 고민들을 함께 하는 이들과 나누면서도 목에 가시 박힌 것처럼 편치 않았다. 바로 그때 친구가 휴가는 가면서 “날마다 집에 들러 정원에 물을 뿌려주던지 아니면 아예 우리 집에 와서 있어 줄래?”라고 했다. 빈집을 봐주면서 슈베르머는 ‘아, 이거야. 집을 없애고 여행하는 사람 집을 돌아다니며 살면 어떨까? 그럼 집세 낼 일도 없을 테고 비는 집에 쓸모를 주는 것이 될 테니, 꿩 먹고 알 먹기 아닐까?’ 생각했다.

그 뒤로 ‘주고받기 모둠’에는 하이데마리 슈베르머가 언제라도 빈집을 지켜주며 정원에 물도 주고 새나 개도 돌봐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차츰 집을 지켜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 이런 일을 겪으며 슈베르머는 참으로 집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굳혔다. 슈베르머는 그동안에도 꾸준히 살림을 줄여왔다. 책을 읽고 나면 바로 이웃에게 주고 옷을 한 벌 사면 입던 옷은 늘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해왔다. 그 바탕에서 세간을 비롯한 소지품을 모두 둘레에 나누고, 집을 없애고 나서 당장 갈 곳이 없는 자신에게 거실을 내어준 사람에게 우아한 책상으로 숙박비를 치른다. 의료보험도 끊고, 먼저 한 해만 돈 한 푼 없이 살아보자고 걸음을 내디딘다.

슈베르머가 꿈꾸는 새 사람은 “다른 길을 찾기보다 하루하루 불평 없이 희생하면서 비참한 기분에 빠져 있기가 더 쉽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새로운 사람’은 절대 희생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은 제가 하는 모든 일에 기껍고 즐거움을 느끼고 똑같이 주고받으며 남과 어울려 살 뿐 아니라 나와도 조화롭게 사는 사람”이다.
 
돈 없는 세상을 누리기 쉽지 않은 도전, 그러나 살아가면서 문화생활도 놓칠 수 없었던 슈베르머는 연극배우와 가까워지고 극장조명기사 극작가, 연출가와 끈을 이어 때로는 그이들 집이나 사무실을 청소를 하고 집을 봐주고 개와 새를 돌봐주면서 문화를 누리며 저와 꼭 같지 않더라도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았다. 그러면서 차차 처음 시작할 때 이 사람에게 이만큼 해줬으니 이만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든지 힘닿는 대로 나누고 상대가 베푸는 것을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공기와 햇볕이 그리고 물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연스레 넘나들 듯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누구도 무엇을 가질 수 없이 그저 함께 살아가며 서로 쓰고 쓰일 뿐이라는 절집 얘기처럼. 슈베르머는 말한다. “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에 달렸다. 누구에게나 제 삶을 바꿀 힘이 있다”

녹슬어 없어지는 돈

하이데마리 슈베르머는 같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게 몇 가지 이정표를 내놨다.

1.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적바림할 공책을 한 권 가져라.
2. 먼저 관심사를 적어라.
3. 저녁마다 그날 일어난 일 가운데 되도록 좋은 일을 떠올려 적어라.
4. 가장 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일지 적어본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고 싶으며, 어떤 일을 하면 가장 좋을 것 같은지? 현실에 매이지 않고 생각하라. 이 공책에서는 불가능은 없으니.
5.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어본다. 그 사람에게서 가장 거슬리는 것은 무엇이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지.
6. 하루는 ‘사막의 날’이라 하여 그날은 무엇이든 마음이 가는대로 한다.
7. 살아오면서 고마운 일을 적어본다.
8. 남달리 재미있는 일을 찾아 그 일을 해본다.
9. 쓸모없는 물건을 추려 상자에 담고, 집을 찾은 손님에게 쓸모 있으면 가져가라고 내어준다.
10. 집이나 직장 카페 어디라도 ‘주고받기 벽보’를 붙여본다.
11. 꿈을 떠올린다.
12. 어떤 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도 품앗이 운동이 한창이다. 아르헨티나 첫 번째 품앗이 모둠은 1995년 문을 열었다. ‘크레디토’란 대용화폐는 쓰지 않으면 녹슬어 없어진다. 돈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폐해는 쌓아두기에 있다. 돈을 흔히 쓰기 전까지는 모든 곡식이나 과일은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 나눠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돈이 생기면서 부를 쌓아두게 되면서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벌어지게 됐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절집에서는 요즘 ‘붓다로 살자’는 운동이 조용히 퍼지고 있다. 붓다는 어떤 사람인가? 붓다로 살기란 대체 뭘까? 마음 놓고 단순소박하게 누리면, 계급이 없고 차별도 없는 누리 결을 빚을 수 있다고 말씀한 고타마 붓다는 당신 말씀대로 살다갔다. 그 분이 가리킨 중도中道, 가온 길은 막연한 가운데가 아니라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면 다른 한쪽에 올라가 고르고 가지런하게 바로 세우는 일이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지고 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히고 나서야 깨달으리라 돈을 먹을 수 없는 것을” 캐나다 허드슨만을 끼고 있는 퀘백주 원주민 Cree족 추장이 끝 간 데 없이 자연을 파괴하며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던진 경고이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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