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아리야빠리예사나 숫따(Ariyapariyesana-sutta)>에서 출가자는 모름지기 법담(法談)과 성스러운 침묵(沈黙) 두 가지만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법담은 담마까타(dhammakathā)를 번역한 것이다. 담마까타는 법담, 대화, 이야기, 토론 등의 뜻을 갖고 있으며, 붓다가 가르친 담마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리킨다. 성스러운 침묵은 아리야뚠히바와(ariya-tuṇhibhāva)를 번역한 것이다.
니까야에서는 열 가지 법담을 언급하고 있다. 즉 소욕(小欲), 지족(知足), 한거(閑居), 불회(不會), 정진(精進), 지계(持戒), 선정(禪定), 지혜(智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 등이다.
한편 한역에서는 니까야에 나오는 열 가지에 다섯 항목을 더 추가하여 열다섯 가지의 법담을 나열하고 있다. 즉 시론(施論), 계론(戒論), 정론(定論), 혜론(慧論), 해탈론(解脫論), 해탈지견론(解脫知見論), 점손론(漸損論, 금욕적 고행), 불회론(不會論), 소욕론(小欲論), 지족론(知足論), 무욕론(無欲論), 단론(斷論), 멸론(滅論), 연좌론(燕坐論), 연기론(緣起論) 등이다.
이러한 열 가지 혹은 열다섯 가지 주제는 토론에서 많이 언급하면 할수록 수행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주제에 대한 토론을 권장했다.
그러나 출가자가 해서는 안 되는 토론의 주제들이 있다. 이것을 띠랏차나까타(tiracchāna-kathā)라고 한다. 띠랏차나까타는 tiracchāna(축생, 동물)와 kathā(이야기)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동물 이야기’, 즉 축생론(畜生論)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익하고 쓸데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역에서는 이것을 ‘차도무익지언’(遮道無益之言) 혹은 ‘차도탁란지언’(遮道濁亂之言)이라고 불렀다. 빨리 주석서에서는 동물이 지면을 가로질러 다니듯이, 이러한 이야기는 천상과 해탈에 이르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니까야에서는 모두 스물일곱 가지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즉 왕 이야기(rāja-kathā), 도둑 이야기(cora-kathā), 대신들 이야기(mahāmatta-kathā), 군대 이야기(senā-kathā), 겁나는 이야기(bhaya-kathā), 전쟁 이야기(yuddha-kathā), 음식 이야기(anna-kathā), 음료수 이야기(pāna-kathā), 옷 이야기(vattha-kathā), 침대 이야기(sayana-kathā), 화환 이야기(mālā-kathā), 향 이야기(ganddha-kathā), 친척 이야기(ñāti-kathā), 탈것 이야기(yāna-kathā), 마을 이야기(gāma-kathā), 성읍 이야기(nigama-kathā), 도시 이야기(nagara-kathā), 나라 이야기(janapada- kathā), 여자 이야기(itthi-kathā), 영웅 이야기(sṇra-kathā), 거리 이야기(visikhā-kathā), 우물 이야기(kumbatthana-kathā), 전에 죽은 자 이야기(pubbepeta-kathā), 하찮은 이야기(nānatta-kathā), 세상의 기원 이야기(lokakkhāyika-kathā),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samuddakkhāyika-kathā),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itibhāvābhāva-kathā) 등이다.
한편 한역본에서는 왕론(王論), 적론(賊論), 투쟁론(鬪爭論), 음식론(飮食論), 의피론(衣被論), 부인론(婦人論), 동녀론(童女論), 음녀론(淫女論), 세간론(世間論), 사도론(邪道論), 해중론(海中論)을 들고 있다. 청정도론(淸淨道論) 등의 주석서에서는 스물일곱 가지에다 산, 강, 섬, 천상, 해탈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시켜서 모두 서른두 가지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왕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 이야기, 전쟁 이야기, 나라 이야기, 도시 이야기, 성읍 이야기, 마을 이야기 등은 오늘날의 정치에 관한 주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정치에 관한 주제는 토론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왜냐하면 붓다의 제자들이 나라와 왕에 대한 이야기를 잘못하면 왕의 분노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승가의 존립 자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래서 출가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발언을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고 출가자는 여러 나라를 유행하게 되는데, 군대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첩자로 몰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군대의 행렬을 보지도 말고, 군대의 진영에 들어가 삼일 이상 머물러서도 안 된다고 계율로 제정하기도 했다.
또한 음식 이야기와 음료수 이야기는 해서는 안 된다. 출가자는 오직 재가자의 공양물에 의존하여 살아감으로 몸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그리고 음료수 이야기는 지금의 기호식품에 관한 것으로, 좋은 차(茶)와 좋은 마실 것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세속의 사람들이 할 일이지 결코 출가자가 할 일은 아니다. 이러한 것은 수행자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외 나머지 것들은 오늘날 뉴스와 오락 프로에서 다루는 주제들이다. 그야말로 세속의 하찮은 이야기들이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세속의 이야기들을 가능한 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잡다한 이야기들은 수행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번뇌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다. 따라서 세속의 잡다한 일들은 가급적 보지도 듣지도 않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눈만 뜨면 쏟아지는 뉴스를 접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잘못된 정치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침묵한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출가자가 노골적으로 정치문제에 관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정치에는 반드시 여(與)와 야(野)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이야기는 부자지간에도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가급적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있다. 그래서 더욱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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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엄청난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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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방문 기간 내내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유가족에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를 털어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8일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바티칸으로 향하는 전세기 안에서 주요 외신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교황은 “세월호 추모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유족에게서 리본을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 후 어떤 사람이 내게 ‘중립을 지켜야 하니 리본을 떼는 게 어떠냐’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간의 엄청난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그에게도 그렇게 말해줬다”면서 “인간적인 고통 앞에 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이라고 비난하겠지만 나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생각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헤럴드경제 ~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819000603&md=20140822005759_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