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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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4.08.29 19:30
  • 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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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무식에게 2014-11-02 16:28:48
만법유식은 다음과 같이 썼다.

<<선사들은 경전에 나오는 말 그대로 쓰지 않음, 상황과 중생의 근기, 인연에 따라 즉흥적으로 참나에 해당하는 말을 써서 중생을 돕는 것임. 선사들은 무아를 배격하기 위해 이러는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만나는 중생의 근기에 맞춰 중생 스스로 자신의 본성(진리)을 보게 하기 위해 자비심때문에 참나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임. 이것도 모르고 근본불교를 부정하는 선불교라면서 분노에 휩싸이는 멍청이들이 있음.>>

하지만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만법무식'은 다음의 강 교수의 비판을 읽지 않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강병균 교수:
<<이 말이 가장 전형적으로 묘사된 것이 일세를 풍미(風靡)한 경봉스님(鏡峰 1892-1982)의 발언이다.

“참으로 나(참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몸을 운전하고 다니는 ‘소소영령한 그 자리’가 바로 곧 나의 몸을 운전하고 다니는 운전수요 나의 ‘주인공’인 것이다.“

이 문장에는 참나, 소소영령한 자리, 주인공이라는 ‘있다파(新有部)’의 주요한 세 단어가 모두 나타난다. ‘주인공은 몸(기계)을 운전하고 다니는 운전사(유령)다’는 경봉스님의 이 발언은 서구의 데카르트적인 ‘기계속의 유령(ghost in a machine)’의 불교적인 환생이다.

‘있다파’의 사상을 간결하고 충실하게 표현한 명문 중의 명문이다! 그리고 경봉스님을 비롯한 선인들의 이런 종류의 발언들은 현(現) 조계종정(宗正) 진제스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용하는 참나와 진아(眞我)의 기원이다.>>

강교수는 선사들 중에는 힌두교 아트만과 같은 의미로 참나(진아)를 쓴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로 위 문장을 든 것이다.
글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하는 이유는 글을 쓴 사람 '만법무식'이 힌두교 아트만주의자라는 증거이다.

저도 가끔씩은 2014-09-04 19:31:43
만법유식-님, 각각-님, 두 분 말씀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 열반-비아, 해탈-대아 ~
저도 나름 환망공상을 가동시키면 어느 정도 두 분 말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라고 여깁니다만.
…(티벳-교과서는 논외로 하고, 물론 대승-교과서도 사실 잘 모릅니다. 허나 “교과서-지상주의자”의 길을 추구하기 때문에 눈에 밟히는 사유들에서는 자꾸 트집을 잡아 봅니다. 황당한 사례들이 현실에서는 너무 많잖아요, 그래도 교과서로 우길 수 있으니까 안 넘어가고 버티니 그렇지^^, 그쵸^^?)

두 분도 아시다시피 여기 한국은 하사도의 세계입니다.
…(사실 그것만 충실해도 다행입니다만, 그냥 수긍^^해 주세요, 만법유식-님.)
문득 이솝우화가 생각나네요.

한 소녀가 우유가 담긴 항아리를 들고 가고 있었다. 소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유를 팔아서 달걀을 사고, 달걀을 부화시켜서 병아리를 키우고, 병아리가 커서 닭이 되면 닭을 팔아서 돼지를 사고, 나중에 돼지를 팔아서 송아지를 사고, 송아지가 자라서 소가 되면 소를 팔아서 예쁜 드레스를 사 입어야지. 그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가야지.” 단꿈에 빠져 흥겹게 길을 가던 소녀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우유 항아리는 땅에 떨어져 산산이 부숴지고 만다.

교학에서는 점핑하고, 수행에서는 비약하거나 또는 생략해버리는 생각들이 눈에 너무 많이 띕니다. 그 모자라는 상태들 속에서 대승과 대승이, 대승과 초불이, 초불과 초불이 서로 맞서고 있는 모습도요. 어쩔 수 없는 필연의 과정이기도 하겠지만, 대승 속에서 대승을 구별해 내고, 초불 속에서 근본불교적 가르침을 추출해 내어 교학적 점핑에서 오는 모호함을 배제하고, 수행적 비약/생략의 애매함을 제거하는 것이 바램입니다. 서로 윈-윈하기를 기원하면서요. (또 저의 독설^^들도 잘 받아주시길 바라면서요.)

너무 어렵지만요. __()()()__

~ 그래서 현존하는 승가와 스님들과 학자들에 대한 원망이 크답니다.
~ 계행의 모본과 교학/수행의 가르침에 대한 갈망의 반작용으로 말입니다.

답답해서 써 보는 글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두 분 말씀 다시 한 번 감사! __()__

만법유식 2014-09-04 18:38:38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제법무아에서의 제법이란=>오온무아 입니다.
제법에서 법=색,수,상,행,식 입니다.
그런데 근본불교주의자들이 딴지거는 참나,진여,불성,여래,법계,본래면목,주인공,본래무일물...이런 용어는 열반한 자리, 즉 오온을 여읜 자리입니다.진리를 가리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진리를 가리키는 단어를 향해 제법무아를 배격한다고 황당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근본불교주의자들은 제법무아의 뜻을 모든 것에는 아가 없다,라고 해석(사실은 오온무아인데)하고 있으며 그 오해로 인해 참나,본래면목,주인공 같은 진리(열반)를 표현한 단어를 향해 무아를 배격한다, 이교도다 엉뚱한 썰을 풀어놓고 있죠.

강병균씨는 교수죠, 이재열씨는 포교사 자격증 있는 법사고요 라디오 방송 진행자스님이나 각묵스님은 니까야 번역하신 분입니다. 소위 배웠다는 전문가라는 분들이 이런 엉뚱한 오해로 선종인 한국불교 선사들에게 진아론자들이란 딱지를 붙여 공격해 대니 이 잘 배운 바보들 말에 휘둘리는 무지한 불자들이 많아지는 문제 아닙니까.

열반비아?... 그런게 아니라 제법무아란 단어를 쓰더라도 제법비아,로 이해하면 선불교를 진아론을 가르치는 이교도라고 엉뚱한 주장이 다소 줄어든다는 것임."내가 없다"에 너무 꽂혀서 열반(참나,주인공,본래면목...)도 없다!라고 코미디를 연출한다는 얘기죠. 최초에 무아라고 한문으로 번역하지 말고 제법비아라고 했으면 이런 쓸모없는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도 됐다는 것.

선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해 보려고 노력도 안해봤거나, 아니면 아직 불교전반에 대한 눈을 뜨지 못했거나 그저 자기분야의 불교만 알고 다른 불교는 전혀 모르거나...그러지 않고는 참나,본래면목,주인공...이런 걸 두고 진아론자,힌두교라고 매도할 수 없죠.

참나(오온-생각,감정,느낌등에 물들지 않은 상태,달리 말하면 탐.진.치가 사라진 상태,거짓됨이 없는 상태, 진리 그대로인 상태...그래서 참다운 나, 참나! 참마음! 이게 뭐가 잘못된 말임?)

주인공(유식과 관련된 용어.마음을 거둬들이면(선정에 들면) 텅빔/ 마음을 펼치면(한생각 일으키면) 만법이 펼쳐짐. 일체(오온)를 사용하기도 하고 거둬들이는 주체(진리)라서 주인공이라 부름)

이름들 마다 다 배경이야기가 있는데 근본불교주의자들은 배경이야기를 전혀 모르니 진아론으로 공격하는 것임.

만법유식 2014-09-04 18:09:19
순식간에 확! 써서 오타도 많고 생각한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섞여서 나오기도 하고...문제가 많아요. 대략 이해하시고 끝나면 좋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니까야 에서 제법무아를 말씀하실때 항상==> 오온을 먼저 말하면서 무아라는 말을 쓰십니다. 니까야 보시고 확인해 보세요. 부처님은 오온을 싫어해서 떠나야(초월해야) 열반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니까야 확인해 보세요.오온을 싫어해서 떠난 다음에야 나는 열반에 이르렀다,해탈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인간)은 해탈한 분, 열반에 이른 분이십니다. 누가 뭐래도.
그 부처님의 마음(=진리)을 일반 중생들 마음과 구분해서 참마음(참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눌스님의 "진심직설"을 찾아보세요. 참마음(=참나)에 대해 교종과 선종에 어떻게 표현하지는지 다 설명하십니다.

교종(모든 경전), 선종(선어록)에서 참나를 부르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거죠.

교종=>능가경에서는 참나를 '심지'라고 표현
화엄경에선 '법계' 금강경에선 '여래' 반야경에선 '열반' 유마경에선 '법신'
대승기신론에선 '진여' 열반경에선 '불성' 원각경에선 '총지' 원각경에선 '원각'....모든 경에서 참나에 해당하는 언어가 다 있지만 이정도로....

선종(선어록)에서의 참나에 대한 다양한 이름들
언어를 세워 표현하면 안되지만(불립문자) 그래서 참나는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 상황과 인연에 따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자기,주인옹(공),무저발(밑이 없는 밥그릇),몰현금(줄없는 거문고),등불, 뿌리없는 나무,취모검,무위,마니주,무쇠관,진흙소,나무말불타지 않는 말), 심원,심인,심경(마음거울),심월,심주,고경(오래된 거울),,,,,본래 무일물, 본래면목,,,,,,,,너무 많아서 다 못 씀.

선사들은 경전에 나오는 말 그대로 쓰지 않음, 상황과 중생의 근기, 인연에 따라 즉흥적으로 참나에 해당하는 말을 써서 중생을 돕는 것임. 선사들은 무아를 배격하기 위해 이러는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만나는 중생의 근기에 맞춰 중생 스스로 자신의 본성(진리)을 보게 하기 위해 자비심때문에 참나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임. 이것도 모르고 근본불교를 부정하는 선불교라면서 분노에 휩싸이는 멍청이들이 있음.

진심직설을 보면 경전에 말하는, 선사들이 말하는 참나의 이름이 왜 그렇게 붙여졌는지 그 이유까지 나옴.

제법무아에서 제법=> 오온을 가리키는 말임.

각각 2014-09-04 17:53:39
下士(persons of small capacity)와 中士(persons of medium capacity)는 上士(persons of great capacity, 大乘菩薩)의 말을 이해할수 없다. 仰信은 아니더라도 不信만 없어도 대승불자의 자격이 있다고 본다. 어디 한번 上士(大乘菩薩)의 말을 보고 어떤지 자신을 살펴보자.





나의 덕의 2가지 뜻(我德二義 )이다.
이는 내가 있다는 견해에 치우침(我見邊)과 내가 없다는 견해에 치우침(無我見邊)을 떠난 것을 말한다. 나도 아니고 나도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큰 나(大我)를 얻는 것이다.
마치 논설(보성론)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2가지 법에 의하면, 여래의 진리 몸에는 참된 나로 건너감(我波羅蜜)이 있다. 어떤 것이 2가지인가.
하나는 모든 바깥 도(외도)의 치우친 것들을 멀리 떠나는 것이다. 허망된 나라는 우스운 논리를 떠나기 때문이다.
둘은 모든 배워 깨치는 이들(성문)의 치우친 것들을 멀리 떠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없다는 우스운 논리를 떠나기 때문이다”




진짜 나(인아)란 말은 자유자재(자재)하다는 뜻이다.
마치 덕왕품 처음의 노래 글 중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자유자재 함에는 8가지(8자재)가 있다.
첫째 많고 적음이 자유자재한 것이다(다소자재).
마치 경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한 몸(1신)을 나타내 보이나 여러 몸(다신)이 된다. 몸의 수가 많고 적음은 마치 작은 먼지(미진)와 같다. 온 우주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하나 여래의 몸은 실제 작은 먼지가 아니다. 이는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작은 먼지 같은 몸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크고 작음이 자유자재한 것이다(대소자재).
마치 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먼지 몸(1진신)을 나타내어 3천세계에 가득하다. 부처 몸은 가이 없으나 실제 대천세계에 가득한 것이 아니다. 이는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대천세계에 가득한 것이다.”


2가지 늘상함(二種常)은 법이 늘상하고(法常) 부처가 늘상한 것(佛常)이다.
법이 늘상하다(法常)는 뜻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不生不滅)이다. 이것은 늘상한 몸(常身 )을 뜻한다.
부처가 늘상하다(佛常)는 뜻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不老不死 )이다. 이것은 늘상한 목숨(常壽 )을 뜻한다.



진실된 나(眞實我 )가 열반의 나(涅槃我 )이고, 자유자재한 나(自在我 )가 깨침의 나(菩提我 )이다.
실제로 나아가 통틀어 말하면 곧 별다른 차이가 없다.
따라서 경중에서는 통틀어 맺음해 말한다.
“이와 같은 큰 나(大我 )를 큰 열반(大涅槃)이라 이름한다.”





이 글은 쓴 上士는 원효라는 大乘菩薩 인데 다음과 같이 小乘 을 확실히 배격하고 있다.
“ 이들(성문)의 치우친 것들을 멀리 떠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없다는 우스운 논리를 떠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큰 나(大我 )를 큰 열반(大涅槃)이라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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