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하고 하나로 묶는 것이 화쟁 아니다”
“절충하고 하나로 묶는 것이 화쟁 아니다”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4.06.08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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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택 교수 21세기 한국불교를 위한 교판_3강(上)
“공존·상생 위한 화쟁 5대 원칙 제안…공동선 구현”
▲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2014 불교닷컴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공존과 상생을 실천하기 위한 화쟁의 대원칙’(화쟁의 대원칙)을 제안했다. ‘21세기 한국불교를 위한 새로운 교판’ 세 번째 강좌에서다.

조 교수는 5월 31일 오전 ‘21세기 교판’ 세 번째 강의를 진행하며 “불교계와 우리 사회의 공론에 부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원칙을 만들었으면 한다”며 5개 항으로 구성한 ‘화쟁의 대원칙’을 제안했다.

“화쟁의 대원칙…사회적 공동선 구현을 위해”

조 교수의 ‘화쟁의 대원칙’은 열린 진리정신, 참여와 민주, 의견의 부분적 진리성, 절차적·배분적 정의, 생명의 평등성과 상호의존성 등 5가지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분쟁과 갈등의 당사자의 주장을 모두 부분적 진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사회적 제도적 약자의 의견과 입장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조 교수의 이 같은 원칙은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공사석에서 갈등의 주체 모두 옳고 그름을 떠나 입장과 주장을 듣자는 주장과 비슷하지만, 노사 문제에 있어 사회적 제도적 약자인 노측의 입장을 ‘사회적 보상’과 ‘교정의 원칙’에 따라 접근하자는 뜻이 담겨 화쟁위원회의 활동과는 차이가 읽힌다.

화쟁의 대원칙 첫 번째는 “‘선설불설(善說佛說)’의 열린 진리정신에 입각하여 초교파적 입장을 견지하고, 개별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사회적 공동선을 구현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는 “불설선설(佛說善說), 부처님 가르침만이 좋은 말씀이 아니다. 좋은 말씀이 모두 부처님 말씀이다로 이해해야 한다.”면 “불교는 붓다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받은 지적 사상과 영감의 역사적 결정체이다. 만약 붓다의 말씀만 좋은 말이라면 세친과 용수의 가르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박제화된 불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경전이다. 함석헌과 퇴계의 말도 불교경전일 수 있다.”면서 선설불설을 요구했다.

두 번째 원칙은 “종교, 정치, 사상, 이념 등에 있어 특정 입장의 진리나 선을 전제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화쟁의 사회적 실천은 곧 ‘참여’와 ‘민주’라는 시민적 가치의 구현이며,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정신과 다르지 않다.”고 조 교수는 보았다.

화쟁의 대원칙 세 번째는 “갈등과 분쟁은 ‘문제적 상황’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에너지이며 진리를 확인하는 기회이다. 따라서 모든 분쟁과 갈등의 당사자는 동등하게 자기표현과 의견 개진의 기회를 갖는다. 어떤 입장도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른 것은 아니며 각각의 의견은 부분적 진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사회적, 경제적 정의의 실천에 있어 특정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정의(正義) 실현의 원칙을 전제하지 않으며 절차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를 다 함께 실현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또 “사회적 보상과 교정의 원칙에 입각하여 사회적·제도적 약자의 의견과 입장을 소중히 한다."고 제시했다.

조 교수는 “‘마이클 샌델은 소수자 배려가 정의라고 보았다. 신자유주의는 절차적 정의를 강조한다. 배분적 정의는 동아시아의 근대사회의 방식이다. 절차적 정의는 모든 사람은 공평한 기회를 갖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조교수는 “미국 가정에서 케익 나눠먹기를 예로 절차적 정의를 설명했다.

그는 “케익을 나눌 때 칼로 자르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마지막에 준다. 자르는 사람은 자신도 똑 같이 먹기 위해 케익의 크기를 모두 균등하게 자른다. 이것이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고 했다.

“굶은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면 비민주적인가”

또 “배분적 정의는 이렇다. 막내가 아침을 물을 길러 다녀와 아침을 굶었다고 하자. 할머니는 아침을 굶은 아이에게 떡을 하나 더 준다.”면서 “배분자의 지혜와 따스함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절차적 정의에 충실해 이런 지혜와 따스함을 비민주적이거나 옳지 않다고 여긴다. 과연 그런 것일까”라고 물었다.

이어 “배분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가 동시에 실현되는 방법은 없을까. 종교 본연의 모습이 절차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를 함께 실현하는 것일 수 있다. 화쟁이 중요한 이유이다.”며 “사회적 보상과 배분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화쟁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화쟁의 대원칙은 “‘모든 생명’의 본원적 평등성과 상호의존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현재의 생명뿐만 아니라 미래의 생명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미래 생명에 대한 관심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세월호 아픔을 어루만질 힐링이 중요하지만 기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불교의 전승은 부처님을 기억하는 것 아니냐, 부처님을 법당에 박제화하지 말고 인자하고 정의로운 부처님, 사회를 고민하는 부처님 등 다양한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 시대 부처로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화쟁은 논쟁을 대화로 이끄는 기술”

이날 조성택 교수는 ‘원효의 화쟁론과 우리시대의 화쟁’을 주제로 강연을 풀어갔다. 조 교수는 원효 스님을 퇴계와 함석헌과 더불어 한국의 독창적 사유를 한 인물로 꼽았다.

그는 “호국이 집권자들의 담론이라면 화쟁은 일반인의 담론이다. 화쟁을 불교가 사회를 바라보고 기여하는 방법으로 이야기하지만, 원효가 말하는 화쟁의 뜻과 원효가 화쟁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와 내용이 무엇인지 학계에서 조차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계종이 화쟁위원회를 만들어 사회문제에 불교가 기여하고 참여하려고 한다.”면서 화쟁이란 말은 익숙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막막하다. 화쟁을 모든 문제를 푸는 마스터키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다.

조 교수는 “화쟁을 이상적 상태로 생각하지만, 화쟁은 이상적인 상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면서 “화쟁을 구세제민, 세계평화의 사상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화쟁은 불교가 전략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일 수 있다.”고 보았다.

조 교수는 “화쟁이 불교가 사회를 바라보는 세계관이지만, 실현하지 못한 상태서 도법 스님의 말에 지쳐버린 게 아닌가 싶다. 화쟁은 도법 스님이 전세 낸 게 아니다.”면서 “우리는 원효 퇴계 함석헌 정도의 독자적인 사상의 역사에서 주변부에 머물고, 중심부 지식의 수입처로 살고 있다. 나 역시 버클리에서 배운 불교를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고 ‘화쟁’을 한국불교를 위한 대표적인 교판으로 끄집어 내 화쟁의 역할과 목표를 담론화해야 한다고 했다.

▲ 조성택 교수의 21세기 한국불교를 위한 새로운 교판 강좌가 화쟁아카데미에서 열리고 있다. ⓒ2014 불교닷컴

조성택 교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분쟁의 현장에서의 대화법으로 화쟁을 제시했다.

그는 “이제 ‘밀양’은 더 이상 지역명이 아니라 분쟁과 갈등의 대명사가 되었다. ‘강정 마을’ ‘용산’ 다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천안함’ ‘국정원’ ‘채동욱’ 등의 고유명사는 이 나라 국민들을 좌우로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면서 “리트머스 시험지가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깔이듯이 이들의 ‘이름’을 통해 우리는 좌우로 구분되고 있다. 그 밖에 중요한 사회적 현안이 등장 할 때 마다 우리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몸살을 앓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간 해결의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통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국민의 화합을 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의 골은 더 깊어 가고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사회에 논쟁만 있을 뿐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고 보았다.

“절충하고 하나로 묶는 것은 화쟁이 아니다”

때문에 조 교수는 “화쟁은 논쟁을 대화로 이끄는 기술”이며, “원효의 화쟁사상은 논쟁을 대화로 이어가는 ‘대화의 철학’”이라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논쟁은 대화가 아니다. 논쟁과 대화는 다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대화라고 착각하고 있다. 논쟁은 건강한 사회의 징표다.”면서 “현안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논리적으로 개진하고 상대방 의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민주적 절차다.”고 했다.

조 교수는 “그러나 논쟁이 단지 논쟁으로 끝난다면 현안을 해결하거나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논쟁이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논쟁은 대화를 위한 전 단계일 뿐이다.”고 했다.

그는 “화쟁은 말 그대로 ‘다툼’을 조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관점과 주장들을 ‘절충’하거나 묶어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 화쟁은 아니다.”면서 “화쟁은 ‘차이’를 어울리게 하는 것이다. 화쟁은 조화의 과정이며 이는 곧 대화의 과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장님들의 서로 다른 주장은 모두 옳고 모두 그르다”

조 교수는 원효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인용해 화쟁을 설명했다.

원효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장님’이라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전제한다. 몇 사람의 장님이 코끼리를 묘사한다. 코를 만진 어떤 이는 “코끼리는 길다”고 한다. 배를 만진 사람은 “벽과 같다”고 하며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과 같이 생겼다”고 한다.

조 교수는 “이러한 장님들의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원효는 “모두 옳다”(개시, 皆是)고 한다. 왜냐하면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코끼리 아닌 다른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원효는 또한 “모두 틀렸다”(개비, 皆非)고 한다. 어느 누구도 코끼리의 전모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皆)라고 하는 동시적 상황이다. 옳다면 ‘모두’ 옳고, 틀렸다면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고 했다.

조 교수는 “‘개시개비’는 어떤 입장도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른 것은 아니며 각각의 주장이 부분적 진리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모두가 함께 부정되거나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면서 “코끼리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펴는 것이 논쟁의 상황이라면 ‘개시개비’는 대화의 상황이다.”고 보았다.

이어 “논쟁은 내 주장이 옳고 상대방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면서 “그러나 대화의 상황은 상대방의 옳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고 했다.

논쟁의 미덕이 확신이라면 대화의 미덕은 겸손과 경청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는 상대방의 눈에 비친 나를 보는 과정이며 상대방에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다.”면서 “자신의 진리는 더 큰 진리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겸허한 태도를 가지고 상대방의 주장에 마음을 열 때 우리는 코끼리의 전모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화쟁이며 곧 대화의 과정이다.”고 강조했다.

또 “대화가 이루어질 때 갈등과 분쟁은 ‘문제적 상황’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에너지이며 진리를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면서 “갈등과 분쟁이 한 사회가 성장하는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고 보았다.

조 교수는 “논쟁만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이 논쟁을 대화로 이어갈 것인지,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면서 갈등 해결 현장에 화쟁적 대화를 주문했다.

▲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2014 불교닷컴

“해군기지 만든다고 안보가 확보되나…”

조 교수가 본 화쟁의 핵심은 개시개비에 있다. 각각의 주장이 모두 옳지만 그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갈등 현장에서는 모두 각자의 주장만이 옳고 상대의 주장은 그르다. 내 주장에도 옳지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조 교수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예로 들며, “환경론자와 안보론자의 주장을 화쟁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환경과 안보 다 중요하므로 다 안으면서 가는 게 중도”라고 전제하고 “나아가 해군기지를 만든다고 안보가 확보되는 것이냐?고 따져야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환경을 지키는 것이냐고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계속)

조성택 교수 21세기 한국불교를 위한 교판_3강(下) “약자 편드는 ‘기우뚱한 균형’도 불교 할 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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