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등 노란리본 “고해 벗어나 편히 잠드소서”
백색등 노란리본 “고해 벗어나 편히 잠드소서”
  • 공동취재단
  • 승인 2014.04.2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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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노란 만장 휘날리며 종로일대 연등행렬
세월호 희생자 극락왕생·실종자 무사귀환 기원

“다시 피어올 꽃들” “후배들아 돌아와줘” “포기하지마 기다릴게”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자”

흰색 노란색 만장이 나부꼈다. 영가를 천도하고 생환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조용한 행렬은 고해를 벗어나 피안으로 인도하는 천혼무였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신명과 신심의 향연이 펼쳐졌던 종로 일대가 엄숙한 석가모니불 정근으로 메워졌다. 불기2558년 연등회 연등행렬은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생환을 염원하는 의례였다.

26일 오후 7시 차마 참석하지 못한 일부 단체가 빠져 줄어든 연등행렬은 예정보다 30분 일찍 시작됐다. 인로왕번과 오방불번, 아기부처님을 모신 관불대를 선두에 세웠다. 취타대 연희단 풍물패 따위 가무와 음악은 없었다. 거리에 설치된 이동식 무대인 산붕 위에서는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바라가 펼쳐졌다.

▲ ⓒ2014 공동취재단 조현성 기자

산붕 뒤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백색 대형 영가등이, 실종자들이 속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붉은 대형등이 따랐다. 봉행위원단 300여 명이 백색 영가등을 들었다. 중앙승가대학교 학인들도 영가등을 공양했다. 간절한 걸음 뒤로 ‘석가모니불’ 정근 소리만 흘렀다.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은 흰 만장에는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 합니다” “얼마나 무서웠니”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게”라는 글이 굵게 적혔다. 노란 만장에 적힌 “사람이 존중되는 사회” “너희들이 남긴 교훈 어른들은 잊지 않을게” “보고 싶다 애들아 사랑해” 는 절절함이 배어 있었다. 연등행렬 참가자들은 가슴에 ‘무사귀환, 극락왕생’ 노란리본을 달았고, 저마다 등에는 아이들을 찬 바다 속에 놔둔 어른들의 참회 문구가 적힌 노란 리본이 묶였다.

목탁을 든 동대사대부여중학교 학생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했고, 조의를 표하는 검은 옷을 갖춰 입은 대불련 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라는 손 팻말이 들렸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는 서울과기대학교의 만(卍)자 장엄등을, 동국대학교는 코끼리 장엄등을 밝혔다. 불광사는 장엄등 대신 백등을 들었다. 금강선원은 희생자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장엄등을 켰고, 봉은사는 대형 장엄 없이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합니다’라고 적은 범종등을 준비했다. 구룡사 학생회는 상의를 흰옷으로 통일하고 흰색 컵등을 들었다. 네팔불자모임은 보리수등과 보드나트탑등을, 화계사는 윤장대 등 3개를 밝혔다. 진각종은 대형 공작, 황룡, 거북선등과 함께 행진 내내 서원문과 ‘옴마니반메훔’을 정근했다.

▲ ⓒ2014 공동취재단 조현성 기자

도선사도 수개월 부처님오신날을 찬탄하며 만든 장엄등은 절에 놔두고 ‘극락왕생’ 흰색 영가등만 들었다. 영화사는 동자목어등을, 사자암은 신장등과 영가등을 켰고 관음사는 대형 코끼리등 뒤로 영가등을 들고 걸었다. 태고종은 애도의 등을 들고,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영산재 바라를 하며 이동했다. 관음종은 황룡사탑등을 준비했다. 천태종은 금강저, 법화경, 백제금동대향로, 석등 형태의 다양한 장엄등을 선보였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마음은 행렬을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매년 연등회에 참가했다는 한 불자는 “세월호 사고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며 말끝을 흐린 뒤 “연등회는 예년보다 많이 간소해지고 그분들을 위해서 마음을 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온 여성 관람객은 “인도에도 불교가 있고 축제가 있지만 이렇게 큰 규모는 아니다. 한국에서 이런 축제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면서도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는...무척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전했다.

연등회에 두 번째 참가한다는 미국인 크리스타는 “활기넘쳤던 2012년 축제보다 이번 연등회는 절제됐고 슬프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조속히 돌아오기를 기도한다”며 취재진에게 샛노란 후리지아 한 송이를 건넸다. 후리지아의 꽃말이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라고 했다.

이날 연등행렬에서 봉행위원단은 ‘관람석’에 앉지 않았다. 예년에는 행렬의 선두를 이끌며 탑골공원에 도착해 연등행렬 참가자를 격려했던 봉행위원단은 내빈 관람석을 지나쳐 조계사까지 걸었다. 연등행렬은 오후 9시께 마지막 그룹인 관음종과 승가사, 길상사 조계사가 서울 종로 3가 탑골공원을 지나 조계사로 향하면서 마무리됐다.

조계사 일주문에 내걸린 펼침막은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로 ‘고해를 벗어나 편히 잠드소서’였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천년을 이어 온 연등회는 찬란한 등으로 장엄한 볼거리 많은 불교계의 최대 축제이자 중요무형문화재 122호이다.

연등회는 오후 9시 종각사거리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하는 국민 기원의 장’으로 이어졌다.

/공동취재단 모지현 기자

▲ ⓒ2014 공동취재단 조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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