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이고 뭐고 다 죽어
밀양이고 뭐고 다 죽어
  • 변택주
  • 승인 2014.04.01 09: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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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64.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지난 3월 1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밀양 송전탑 때문에 음독했던 유한숙(당시 71살) 어르신 100일 ‘추모제’가 열렸다.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에서 돼지를 키우던 유한숙 할아버지는 집 앞에 송전탑이 들어서는 걸 뒤늦게 통보받고 분개하다가, 지난해 12월 2일 집에서 농약을 마시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나흘 뒤 숨을 거두었다. 2012년 1월 이치우 어르신 분신에 이어 두 번째 주검. 그러나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란 책을 쓴 E. F 슈마허는 2차 대전이 일어난 뒤 영국에서 적국 국민으로 철수명령을 받고 수용소에 갇혔다가 풀려나 농장 일꾼으로 일을 했다. 주어진 일 가운데 아침 밥 먹기에 앞서 들판 언덕에 가서 소가 몇 마리인지 세어 오는 일도 있었다. 소는 늘 32마리였다. 지나가던 농부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소를 세고 있다고 하니까 농부는 “날마다 소를 센다고 소가 잘 자라는 게 아니라오.”라고 한 마디 던졌다. 그 말에 비록 지금은 농장 인부로 지내지만, 성공한 지식인이던 슈마허는 언짢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를 헤아려보니 31마리밖에 없었다. 살펴보니 덤불 아래 소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슈마허는 “이제까지 이 소들을 무엇 때문에 세었을까? 날마다 소를 세기보다는 건강이 좋지 않은 놈은 없는지 살폈더라면 그 한 마리는 죽지 않았으련만. 병약한 소가 죽어 가는데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고 가슴을 쳤다. 정부와 한국은 아무 생각 없이 소를 세던 슈마허와 무엇이 다른가?

농업 아니면 답이 없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197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까지 자랐다. 문학 공부와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따라 고려대 국문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다 <녹색평론>을 만나 길을 찾았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권정생 선생 글을 읽으며 참다운 진보란 무엇을 딛고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여린 것을 보듬는 손길임을 알았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머리 쓰다듬어 주는 선생님”이 되겠다며, 김포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0년 전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모교인 밀성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이계삼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우정’이라면서 밀양지역 공동체운동 협동조합 ‘너른마당’을 만드는 데 중심에 섰다. 전교조 활동으로 교육을 바꾸려 힘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은 깊어졌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대개 청년이 실업과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시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사기를 그만 좀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냈다. 석유가 고갈되고, 석유에 기초한 자본주의 고도성장 시대가 끝나가데, 이계삼은 “농업 아니면 답이 없다”는 생각으로 실업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청년들에게 “우리 함께 농사짓자”며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하는 농업학교를 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계삼 꿈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2012년 1월 16일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던 이치우(당시 74세) 어르신이 분신해 목숨을 끊은 뒤였다. 이계삼은 ‘이치우열사분신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송전탑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제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밀양 노인들 입과 발 노릇을 하며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밀양에 머무르고 있는 이계삼은 대책위 활동과 관련해 집시법 위반,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초기엔 송전탑대책위 규모가 컸고 지역 유지나 조합장 지냈던 남성들 위주였다. 그사이에 몇 차례 조정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한전 쪽 전문가들 뜻대로 결론이 나고, 절실한 주민 재산이나 건강 피해를 살펴주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모든 자료와 정보를 한전이 쥐고 있다 보니 ‘해봤자 못 이긴다’며 초기 대책위 사람들이 하나둘 손을 놓고, 한전은 2011년 가을부터 밀양 전 지역에서 공사를 밀어붙였다.

이치우 어르신 분신으로 싸움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다. 이전엔 여성들, 할매들은 모이면 밥이나 하고 서울 가자고 하면 따라나서곤 했는데, 정부와 한전 한통속인 남성들이 빠진 자리를 할머니들이 들어와 자리 잡으면서 마지막까지 완강하고 절실한 목소리를 내게 됐다. 어느 날 여든일곱이 된 할머니 한 분이 이계삼이 일하는 밀양 송전탑 대책위 사무실을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초에는 한전 공사현장을 지키러 들어오는 경찰에게 오물을 던져 그 연세에 연행까지 당한 분이다. 마을 이장을 지낸 한 남정네가 본인이 아니라는데도 ‘제가 알아서 하겠심더’ 하면서 합의도장을 대리로 찍었다. 얼마 뒤 당신 통장에 합의보상금 육백만원이 들어온 것을 알고는 며칠 동안 마음고생을 하다가, 대책위 사무실로 가면 돌려주는 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단걸음에 달려왔다. 어르신이 이계삼에게 말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 돈 받아서 머하겄노. 나는 죽을 길만 바라본다. 이 탑 세워지고, 선산 더럽힜는데, 돈까지 받아묵으먼 조상님들을 내가 우째 볼끼고. 우리 자슥들은 돈 몇푼 받아 묵고 도장 찍어준 내를 뭐라 카겠노.’

합리성 잃은 밀어붙이기

밀양은 송전탑 문제로 9년째 앓고 있다. 그동안 주민들이 현장에서 다쳐 응급 후송되기를 103건, 경찰에 끌려가거나 조사를 받은 사람이 73명이다. 그런 가운데 송전탑 공사는 52곳 가운데 26곳에 공사를 하고 있고 송전탑 6기가 완성됐다. 이번 1월부터는 공사현장이 마을 가까이 내려오면서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주민들 건강실태조사는 다섯 사람 가운데 네 사람이 우울증 고위험군이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주민들도 많다. 주민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까닭은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송전탑이 마을 한가운데를 꿰뚫고, 논밭과 학교와 기차역을 가로지른다. 이치우 어르신이 살던 곳을 보면 철탑이 들어서는 곳 둘레로 이치우 삼형제 논밭이 있다. 삼형제 논을 합해서 시가로 6억9천만 원이나 되는데 피해보상금이 7,700만원이다. 동생인 이상우 어르신 논을 담보로 대출 신청을 했지만 농협에서는 송전탑이 지나니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765Kv 송전탑은 초고압이어서 그 아래 형광등을 갖다 대면 바로 불이 켜진다. 정부와 한전은 노선을 비껴가거나 345Kv로 전압 낮추어 땅으로 묻을 생각이 조금도 없다. 또한 밀양문제 근본에 신고리지역 원전증설 문제가 있는데 계획 재검토나 노후 원전 폐쇄를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밀어붙이며 국책사업이니 어쩔 수 없다며 오히려 주민 갈등을 부추기고 공권력으로 잔인하게 짓밟고 있다. 

정부계획대로 하면 고리지역에 12개 원전이 가동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원전 30Km 이내에 350만 명이 살며, 50Km까지 넓히면 500만을 훨씬 넘는다. 노후 원전 고리 1호기는 수명이 30년이고, 2~4호기는 40년이다. 고리 1호기 수명은 2007년까지였다. 후쿠시마 원전이 딱 40년이 되던 해에 사고가 났다. 설계대로면 11년 안에 고리 1~4호기가 다 가동이 멈춘다. 그러면 새로운 송전선이 쓸모없다. 그런데도 송전탑을 세우는 까닭은 어디 있나? 고리원전 1~4호기가 설계수명이 끝나도 연장하겠다는 속셈이다. 원전마피아 처지에서 보면 원전은 가동 중단을 해도 냉각수 채워주며 계속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러니 전기를 만드는 것이 저들한테 이득이다. 철저히 자본과 관료들 이해에 따른 결정이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제어할 수가 없고 사고가 나면 밀양이고 뭐고 후쿠시마처럼 다 끝장이다.

이계삼은 말한다. “평생 1번만 찍고, 식민지를 겪은 분들이라 나라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굳은 믿음을 가진 분들인데, ‘왜 나라가 우리에게 아픔을 주느냐’ 뭘 더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요대로 살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날마다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벌써 두 사람이 구속됐고, 연행자가 스무 명이 넘습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내 신상에 어떤 일이 닥칠지, 꿈꾼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대책위는 주민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끝까지 갑니다. 이 싸움에서 지켜야 하는 정의가 있다고 봐요. 그걸 놓치면 안 되죠. 여기에 더해 더는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희생자가 나오지 않고 진실이 사회에 알려져야 하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송전탑 공사 명분이 신고리 원전 3·4·5기 조기 완공과 전력 수급 안정이라는데, 이미 거짓으로 드러났잖아요. 정부와 한전은 명분과 합리성을 잃었는데도 공사를 밀어붙입니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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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불자 2014-04-04 18:14:23
후쿠시마 원전사태 즈음에 일본'원전 전문가와의 대담'에서,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왜 원전을 변두리나 외지 인구분포가 최저인 지역에 건설하냐?."는 질문에~
"원전의 안전성은 불확실성이 상존하고,언제 어떤형식으로 사고가 날지
예측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며,사고가 나면 반경 50키로는 그 피해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고 하더만~ ^^

에너지자원 현실화 방안,창조경제,미래지향적 패러다임은
원전을 줄이는 것이고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터전을 훼손하지 않는것이리라~

그리고 송전탑 문제는 재검토 되어야겠지요~!.
자기들 사는 지역이 아니라서,내 부모 형제가 사는 지역이 아니라서,
내 문제가 아니라고~무심하고 방관하고 ,
아무생각없이 무분별하게 정책입안을 하는 이들은~
참 머라 할말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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