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동종의 개조 도겐(道元)
일본 조동종의 개조 도겐(道元)
  • 김춘호
  • 승인 2013.10.0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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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춘호의 <일본 불교문화 강좌> 20. 가마쿠라신불교(鎌倉新仏教)④
도겐(道元)선사 진영 (사진 : http://ja.wikipedia.org/wiki/)
이번 강좌에서 살펴 볼 가마쿠라 신불교의 조사는 도겐(道元:1200~1253)이다. 현재 약 1만 5천여 개의 사찰과 6백 90만의 신자를 자랑하는 일본 조동종의 개조인 그는 지난 강좌에서 살펴본 에이사이(栄西)와 함께 선종계열의 조사로 분류된다.

도겐은 1200년 교토(京都)에서 태어났다. 정확히 부모가 누구였는가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당시 최고의 명문가였던 코가(久我)가문의 자제였다는 점에는 이설이 없다. 그러나 그는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8살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서 고아와 같은 처지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가 13세 되던 1213년 외숙부였던 히에이잔 승려 로겐(良顕)을 찾아가고, 이듬해 히에이잔 계단원에서 천태좌주 코엔(公円)을 스승으로 출가하여 도겐(道元)이라는 이름을 얻고, 천태종 소속의 관승(官僧)으로서 본격적인 천태교학을 수학한다.

그러던 중 그의 일생을 바꾼 커다란 의문에 봉착한다. 그것은 천태교학에서는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불성을 구족하고 있다고 하는데(천태본각사상), 왜 삼세제불은 발심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을 했는가라는 것이었다. 즉,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불교 근본의 물음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히에이잔의 여러 학승들을 찾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고, 히에이잔을 내려와 온조지(園城寺)의 코우인(公胤:1145~1216)을 찾는다. 코우인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가 선을 배울 것을 권한다.

그러나 그의 입송은 곧바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단 당시 에이사이(栄西)가 건립한 켄닌지(建仁寺)로 들어가 에이사이의 수제자 묘젠(明全)에게서 선을 배운다. 그 후 1223년 24세의 나이로 묘젠과 함께 드디어 송나라로 향하여 명주에 도착한다. 그리고 천동산(天童山), 육왕산(育王山) 등의 사찰들을 역방하며 견문을 넓히다가 1225년 5월부터 조동종 선사 천동여정(天童如淨)의 문하로 들어가 엄격한 선수행을 지도 받는다. 약 3년여의 수행 끝에 스승의 인가를 받고 1228년 일본으로 귀국한다.

귀국직후 도겐은 켄닌지에 머물며 천동여정으로부터 배운 선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는데, 이시기 ‘좌선이야 말로 불법의 정문(正門)이요, 대 안락의 법문(法門)’이라고 강조하고, 좌선의 방법이나 마음가짐 등을 밝힌 《보권좌선의(普勸坐禪儀)》를 저술하기도 한다.

도겐의 이러한 좌선제일주의적 행보는 당연히 천태교단의 견제를 받게 되고, 천태·진언·임제선의 겸학을 실천하던 켄닌지에서도 머물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1230년 교토의 후카쿠사(深草, 현제의 우지시) 안요잉(安養院)으로 옮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배워온 선에 대한 화신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설법을 계속하였고, 다른 종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계속한다. 특히,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말법사상이나 염불, 기도 등을 강하게 배척한다.

쿄우쇼지(興聖寺). 교토후 우지시(宇治市) 소재 (사진 : http://ja.wikipedia.org/wiki/)

1233년 후지와라 노리이에(藤原教家: 1194-1255)와 쇼가쿠니(正覺尼) 등의 기진으로 같은 지역에서 코우쇼지(興聖寺)를 개창한다. 이 절이 일본 최초의 조동종 사찰인 셈인데, 도겐은 이곳에서 10여년을 머물며 저술활동 및 제자 육성, 좌선의 보급에 혼신을 다한다. 수행자의 생활규칙을 규정하고 있는 《전좌교훈(典座敎訓)》은 이때 나온 저술이다. 그리고 1243년 그곳을 떠나 재가신자였던 히타노 요시시게(波多野義重)의 영지인 에치젠(越前, 현재의 후쿠이켄)의 시히노쇼(志比荘)로 향한다. 도겐의 에치젠 행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제기되고 있지만, 히에이잔의 거듭되는 압박으로 인해 수도에서에의 신자확보가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는 이유가 유력하다.

이주 이듬해인 1244년 도겐은 그곳에서 다이부츠지(大佛寺)개창하고, 2년 후에는 다이부츠지를 에이헤이지(永平寺)로 개명한다. 그 후 이곳에서 약 10년간 머물며 그의 대표저술인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저술과 제자육성에 전력한다. 그 사이 1247년 가마쿠라 막부의 제5대 집권(執權)이었던 호조 토키노리(北条時頼, 1227-1263)의 초청으로 가마쿠라로 가서 설법하고, 이듬해 에이헤지로 돌아오기도 한다.

에이헤이지(永平寺) 후쿠이켄 요시다군(吉田郡)소재 (사진 : http://ja.wikipedia.org/wiki/)

1252년 여름, 병을 얻은 도겐은 후사를 제일 제자 고운에죠(孤雲懐奘:1198~1280)에게 맡기고, 같은 해 8월 치료를 위해 상경하지만, 같은 달 28일 54세의 나이로 입적한다.

도겐의 사상은 ‘수증일여(修證一如)’와 ‘지관타자(只管打坐)’ 로 설명된다.
수증일여란, 깨달음과 수행이 하나라는 의미인데, 수행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곧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즉, 성불이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여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임 없이 수행해가는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인데, 도겐이 히에이잔에 입산하여 가가진 근본적인 의문의 해답을 수증일여에게 찾은 것이다.

한편, 지관타자의 경우 오로지 좌선만을 하라는 뜻인데, 염불이나 기도 등의 다른 수행의 겸학을 부정하는 것이다. 도겐의 이러한 입장이 천태종과 같은 기성종단의 견제를 받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도겐에게 있어서 호넨이나 신란의 가르침은 방편에 지나지 않는 말법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는 까닭에 참된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를 사는 민중들에게 세상이 혼탁해지고 어려울수록, 더욱 석존의 가르침에 의지하고 오로지 깨달음 자체인 좌선의 실천만이 정법임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동국대학교와 원광대학교 강사로 불교문화를 가르친다. 전남 여수 출생. 원광대학교 동양종교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교토의 불교대학에서 불교문화를 전공으로 석·박사를 마쳤다. 일본불교사연구소, 사적과 미술(史迹と美術) 등 한·일 학계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고대 한국과 일본의 불교 문화재나 유적, 불교신앙 등을 주된 연구테마로 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일본의 역사」(2010, 역서), 「고대 한국과 일본과 일본의 불탑수용과 그 전개」(박사학위논문), 「아스카·나라시대 불탑의 전개에 대하여」, 「고대일본의 경전신앙」, 「고대 일본의 민간포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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