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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가을로 성큼 접어들면서 한해 마무리해야 한다는 가벼운 압박감을 느끼곤 한다. 새해를 맞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일들을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묻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이웃과 국가, 지구촌을 위해서는 어떤 자비행을 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이 두 가지 성찰은 서로 긴밀하게 이어져 있어 분리될 수 없는 데도 늘 자신만의 영역 속으로 후퇴한 것은 아닌가 하는 회한의 눈길을 거두기 어렵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불교계에 몸을 담고 있기도 한 '재가보살'로서의 내가 올해 관심을 갖고자 했던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땅의 생명과 평화라는 불교 생명윤리적 과제와 관련된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불교계를 이끌어가는 핵심 지도자 중의 하나인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다시 뽑는 일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래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참여했다는 자평이 가능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갖고 있는 관심에 비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되어 있어 외부에서 변죽을 울리는 일에 그치고 말았다. 분명히 대한불교조계종이 비구, 비구니로만 이루어지는 불교공동체가 아니고 우바새, 우바이까지 참여하는 사부대중공동체를 종헌․종법에 명시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물론 '스님' 중에서 선출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총무원장의 기본 요건은 '온전한 스님' 그 자체이다. 지계(持戒)와 참선, 경전공부라는 삼학(三學)의 세 축을 온전히 갖추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진짜 스님이라면 누구나 총무원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우리 조계종단에서는 쉽게 통용되지 않는다. 계율을 너무도 쉽게 어기고 참선과 경전 공부는 놓은 지 오래인 스님들이 그 근본을 잃으면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총무원장이라는 '벼슬'을 차지하고자 피나는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총무원장 스님이 어떤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한 조사(불교포커스와 NGO리서치 공동조사, 2013.7.21-8.2)에 따르면 우리들의 상식과 그리 다르지 않는 것들이 제시되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꼽은 세 가지 요건은 각각 인격․가치관(25.4%), 화합․참여종단(21.6%), 지계청정(17.6%) 들이다. 이 세 가지를 다시 요약하면 결국 도덕성과 화합능력이 된다. 그 중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 요건을 합해보면 도덕성을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자격요건으로 꼽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교지도자인 총무원장 스님에게 도덕성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정치지도자나 경제지도자들에게도 도덕성이 요청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인 정치나 경제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 또한 중시될 수 있다. 물론 총무원장에게도 종단 내외의 상황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적인 능력을 요구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智慧)를 전제로 해야만 진정한 정치적 능력이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패거리를 만들고 그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몰두하는 조폭 두목의 그 능력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지고 만다.
우리 현대사 속에는 전두환과 같은 조폭 두목이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총구로 차지했던 비극적인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군대 내에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공식적인 명령체계를 무너뜨리고자 했고, 결국 광주민주화 운동의 폭력적인 진압과 군대의 사조직화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누구도 그를 우리의 지도자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다만 그를 '충성'스럽게 모셨던 부도덕한 자들은 아직까지도 주군이라고 부른다고 하니 소가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자들은 전두환에게 세배를 하고 상식을 초월하는 돈을 받아온 자들이라고 한다. 전두환의 그 돈은 권력을 악용하여 기업과 국민들에게서 훔친 것들이다.
불행히도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폭력과 억압,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우리 조계종단에도 아직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이번 총무원장 선거가 이런 그림자를 온전히 걷어내지 못한 채 파렴치한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패거리 정치에 또다시 휘둘리고 만다면, 불교계의 미래는 물론 자본주의 문화와의 만남으로 인해 정신적 폐허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의 미래 또한 암울할 수밖에 없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번 총무원장 선거를 많은 사람들이 상식 수준에서 기대하고 있는 도덕성을 갖춘 분을 뽑는 선거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후보자들의 공약 속에 반드시 총무원장 선출권을 비구니스님은 물론 재가불자들에게까지 확대하겠다는 공약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중요한 지점은 본래의 계율정신에 맞게 수행자인 스님들이 돈을 직접적으로 만질 수 없도록 하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을 공약 속에 포함할 수 있도록 후보자들을 향해 요구하고 그 기대치와 가장 가까운 분이 총무원장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선거 과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재가불자인 우리들에게 선거권이 전혀 없으니 한편으로 절망감이 소리 없이 스미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동안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나는 내 마음대로 한다.'라는 식의 안하무인의 자세를 일부 권승들에게서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들의 강렬한 열망은 또 하나의 허무한 외침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 부처님 말씀이 지니는 실천적 힘과 경고를 믿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만 한다.
"여색(女色)에 미치고 술에 중독되고 도박에 빠져 있어 버는 것마다 없애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숫타니파타》,<파멸의 경>)"
/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정의평화불교연대 학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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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후안무치하다는 것이 어떤것인지를 보여준다 박병기 교수의 글을 읽고 그런 소리가 나오냐? 에구 이놈들아! 쯔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