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임제종의 개조 에이사이(栄西)
일본 임제종의 개조 에이사이(栄西)
  • 김춘호
  • 승인 2013.09.17 15: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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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춘호의 <일본 불교문화 강좌> 19. 가마쿠라신불교③
▲ 켄인지 소장 에이사이 진영
지난 강좌를 통해 살펴본 호넨(法然)과 신란(親鸞)은 가마쿠라 신불교를 이끌었던 여러 조사들 중에서 이른바 정토(淨土)계열로 분류된다. 그것은 이들의 가르침이 철저한 범부인식을 바탕으로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 귀의하여 오로지 염불을 통한 극락왕생을 설한 이른바 아미타정토신앙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강좌에서 살펴볼 에이사이(栄西:1140-1215)는 호넨과 신란의 입장과는 달리 선종(禪宗)계열의 조사로 분류된다.

에이사이는 1141년 4월 20일 현재의 오카야마켄(岡山県) 카가군(加賀郡) 키비(吉備)에서 아버지 가야 사다도오(賀陽貞遠)와 어머니 타시(田氏)사이에서 태어났다. 에이사이의 아버지는 키비츠(吉備津) 신사(神社)의 신직(神職, 신사에서 제사나 사무 등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종교적 소양이 깊어졌고, 아버지의 지도로 8세 때 이미 《구사론(俱舍論)》, 《바사론(婆沙論)》 등을 읽기도 하였다. 그리고 11세 때 고향 인근의 안요지(安養寺)의 조신(靜心)에게서 사사하고, 13세(1151년)에 히에잔(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에 올라가 수학하다가 이듬해 수계 득도한다. 그 이후로 에이사이는 엔랴쿠지(延暦寺)와 고향의 안요지(安養寺), 다이센지(大山寺, 현재 돗토리켄 소재)등을 오가며 센메이(千命), 유벤(有弁), 키코(基好), 켄이(顕意) 등에게서 사사하며, 천태교학과 밀교 등을 공부한다.

그가 이처럼 히에이잔에 정주하지 못하고 스승을 찾아 여러 곳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히에이잔 엔랴쿠지의 천태교단이 이미 귀족간의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만큼 세속화가 극에 이르고 있었던 까닭일 것이다.

에이사이는 이러한 교단의 현실을 일신하고 참된 불법의 흥륭을 발원하여 입송(入宋) 수학을 결심한다. 그리고 1167년 27세의 나이로 송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송나라(남송)에서 에이사이는 천태산, 아육왕산 등을 찾아 수학하는데, 특히 천태관련 전적의 수집과 당시 남송에서 크게 번성하고 있었던 선종에 대한 공부가 주가 되었다. 그리고 약 6개월간의 짧은 유학기간을 마치고 귀국한다. 귀국 후 에이사이는 선의 도입을 통해 세속화되고 타락한 일본불교의 정신을 바로 세울 것을 결심하고 다시 한 번 입송을 시도한다.

그러나 막부의 도송(渡宋)금지령 등의 영향으로 곧바로 송나라로 가지 못하고, 약 10여 년간 후쿠오카켄(福岡県)의 세간지(誓願寺) 등에서 머물며 밀교와 선의 연구에 몰두한다. 특히 천태밀교(台密)를 집대성한 안넨(安然)에 주목하여 10여부의 저술을 남긴다.

1185년 단노우라노 다타카이(壇ノ浦の戦い)로 헤이시(平氏)가 멸망하자, 마침내 입송의 길이 열리고, 1187년 여름, 47세의 나이로 다시 송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이때 에이사이는 송나라를 통해 인도로의 구법을 결심하고, 송나라 조정에 그 허락을 구하지만, 몽고세력의 확대로 인해 북방의 서역로가 끊겨있던 상황이어서 인도로의 구법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천태산으로 올라가 만년사(萬年寺) 주지 허암회창(虚庵懐敞)의 문하에서 임제종확용파(臨濟宗黃龍派)의 선을 5년간 사사하고, 1191년 허암 회창으로부터 법의와 사법(嗣法)의 인가(印可)를 받고 같은 해 귀국한다.

▲ 주휴코지
귀국 후 에이사이는 2차 입송 전에 10여 년간 머물렀던 큐슈의 각 지역을 돌며 선사(禪寺)의 건립, 선규(禪規)의 흥행, 경론의 서사 등 선수행의 전파에 전념한다. 그리고 이 무렵 송으로부터 들여온 차(茶)를 세후리야마(脊振山, 현제의 사가켄 북동부에 위치)에서 재배하는데, 이를 계기로 이곳이 일본차의 재배와 보급의 발상지가 된다.

1194년 수도 교토에서 선수행 보급을 시작하지만, 히에이잔(比叡山) 천태교단의 방해로 에이사이의 포교는 금지된다. 이듬해 큐슈 하카타(博多)로 다시 돌아온 그는 쇼후쿠지(聖福寺)를 건립하는 등 포교와 불사활동에 나서지만, 이곳에서도 하코자키(筥崎, 현재의 후쿠오카시)의 료벤(良弁)과 같은 인물이 포교금지를 조정에 탄원하는 등 지방의 기존세력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에이사이는 이러한 구 불교세력의 견제와 공격에 대비하여 1198년 《흥선호국론(興禪護國論)》을 저술하는데, 그 내용 중에는 에이사이의 선(禪)이야 말로 사이초(最澄, 히에이잔 천태종의 개조)가 전래한 선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하고 있어, 천태교단으로부터의 견제를 피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결국 구 불교세력의 중심지였던 수도 교토에서의 포교를 단념하고 새로운 권력인 막부의 근거지 가마쿠라(鎌倉)로 옮긴다. 송나라 유학을 통해 얻은 에이사이의 폭넓은 식견은 막부의 주요인사들의 지지를 받게 되고, 결국 1202년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정비였던 호죠 마사코(北条政子)의 귀의와 후원으로 주후쿠지(壽福寺)를 건립하고 그곳의 주지가 된다.

막부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게 된 에이사이는 다시 교토로 입성하여 히가시야마(東山)에 켄인지(建仁寺)를 건립한다. 그리고 켄인지를 진언(밀교), 지관(천태), 선(임제)의 삼교의 도량으로 하였는데, 이는 구불교세력과의 마찰을 피하는 현실적 의도가 깔린 것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당시 일본문화의 중심지였던 가마쿠라와 교토에 대사원을 건립함으로써 에이사이가 송에서부터 들여온 임제종은 새로운 거대 종단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 켄인지
이후 에이사이는 1206년 입적할 때까지 교단의 관리와 사회활동, 저술활동 등에 전념하는데, 특히 켄페이(源平)의 전란 속에 황폐화되었던 토다이지(東大寺) 등의 남도(南都)부흥에 앞장서기도 하였으며,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를 저술하여 차의 제조법은 물론 약효 등을 자세히 기술하여 차문화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에이사이의 사상은 태밀(台密)에 대한 굳은 믿음과 지계(持戒)를 근본으로 두는 선(禪)의 고양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태밀은 원래 일본천태종의 개조 사이초(最澄)의 밀교로서 쿠우카이(空海)의 밀교인 동밀(東密)의 상대개념이며, 그 특징은 염불, 밀교, 계율, 선을 겸수하는 이른바 사종겸학이라는 점이다. 에이사이는 일생동안 이러한 태밀의 입장을 일관하였으며, 나아가 쿠우카이(空海)의 동밀(東密) 사상까지를 수용하여 요조류(葉上流)라는 태밀의 한 유파를 형성하기도 한다.

한편 에이사이 선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지계(持戒)’를 선의 근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입장에서 계율을 중시하지 않았던 정토진종의 신란(親鸞)의 입장과는 정 반대인 셈인데, 에이사이에게 있어서 지계야 말로 지나친 세속화로 인해 근본정신을 잃어가던 당시 불교계를 일신시킬 수 있는 핵심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저술 중에 《출가대망(出家大網)》과 《제계권진문(斉戒勧進文)》, 《원돈삼취일심계(圓頓三聚一心戒)》 등이 계율에 관한 것이다. 그밖에 밀교에 관한 문답형식의 입문서로서 《무명집(無明集)》, 앞서 언급한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2권은 현존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다도서적으로서 유명하다.

   
동국대학교와 원광대학교 강사로 불교문화를 가르친다. 전남 여수 출생. 원광대학교 동양종교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교토의 불교대학에서 불교문화를 전공으로 석·박사를 마쳤다. 일본불교사연구소, 사적과 미술(史迹と美術) 등 한·일 학계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고대 한국과 일본의 불교 문화재나 유적, 불교신앙 등을 주된 연구테마로 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일본의 역사」(2010, 역서), 「고대 한국과 일본과 일본의 불탑수용과 그 전개」(박사학위논문), 「아스카·나라시대 불탑의 전개에 대하여」, 「고대일본의 경전신앙」, 「고대 일본의 민간포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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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gun7 2013-09-22 17:50:21
禪 을하는데 꼭 알아야할 中道 와 相, 相 은 모양의뜻이 아니고, 相의뜻은 相 對 性 과 差 別 性 이다. 불교의 핵심 論理中에 하나이다. : 中道는 불교의 敎 理 와는 관계가없고 六祖大師또한 中道 에대한 用語 자체도언급하신바 없다.
中道 에 對 한 부처님의언급; 부처님이 成佛하시기 前 王子로서,29歲에 當時 인도 바라문교 의 바라문으로 出家하셔서,바라문교 의 수행방법인 忍慾 과 苦行 으로서,6년간 斷食(극 小食)하셔서,피골이상접하여 쓰러질정도였다. 苦行의 무모함을 깨닫고 , 단식을중단하고,보리수 나무아래서 7일밤낫을 사색 , 禪定에 드신후에, 弱肉 强食 生老病死 에 대한 大覺을이루시고 成佛하셧다.大覺하신 내용은, 초전법륜에서 말씀하신 四聖諦 八正道로 시작하셨다. 中道는 大覺의 진리가 아니고, 苦行또한 목적이아니고.悟覺깨달음 을위한 수단인데,.悟覺을 위해서는, 苦行이나安樂(王子시절)의 극단적인 어느한쪽의 생활이 아니고,苦行과安樂 의 中間, 中道의生活이 수행생활에 적당하다 는 것이다. 백장스님의 修道者 청규와도 같은것이다.
宗敎와 學文은다르다. 학문을 경시하는것이 아니고,禪과學文(敎理)을 선명히 구분하고, 상호 이해를 깁히 하자는것이다.
宗敎는 心身의 實體 實在이고 ,學文은 억만가지도 가능한 思量이다.
부처님이 보이신 三處 傳心(佛 佛心)을 가르치기 위해서,그렇게많은 經을 설하셨다.
그러나 經은 말이나 글 (書) 이지 佛 佛心은 아니다. 삼장을포함해서 많은스님들 학자들의 著書들은 학문이지, 佛 佛心은아니다.불교의 觀点에서 말하면 思量이다.
법달이 삼천번 法華經을 독송 했어도,見性成佛하기전에는, 妄想의思量 이다.
불교에대한 연구 저서 분석 들은 궁극적으로,思量이다.마치 부처님을가르키는 손가락이다 .가르키는 손가락이지, 부처는 아니다.가르키는 손가락을보고, 見性했다든가 부처로 착각하는 가짜도인( 道人 )이 너무많다.
最近代 성철스님은 學者僧으로서, 中道를 主張하여 한국불교에, 가짜道人을 量産하여,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은하지않고 것넘엇다. 성철스님은 백일법문 等 에서,六祖法寶壇經 에 中道라는 表現이 있다 하시지만, 六祖壇經 의 原本 인 돈황본( 돈황신본 )에는 中道라는 表現 用語자체가 한마디도 없다. 六祖壇經에는 不立文字 言語道斷 , 禪을모르는 學者僧이 모르는 部分이 있다. 성철스님 또한 學者僧의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學者僧들은 思量으로서, 끗까지 전부를 해석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순을 갖이고잇다. 육조단경은 六祖大師님이 入寂하신후 數百年후에 여러學者僧들에 의해서 原本(돈황본)뒤에 써서붙여서 개조된,혜흔본,흥성사본,대승사본,설승본, 종보본, 덕이본 等等 많은기록이 있다. 성철스님은 이中에 넓이 알려진 덕이본 을 예로들어, 육조대사 의 中道를 主張하시지만. 덕이본 은 六祖大師님이 入寂하신후 數百年후에 原本뒤에, 學者僧들이 써서붙여서 변조된것이다.
中道란 불교에 맞지않는 주장이다. 예를들어서, 有 또는 無 에서,한쪽을선택하면.편견 단견 이 되어서,見性의 答이 되지않는다고치자, 有도아니고 無도아니니까, 有無또한 存立할수 없으니, 中道 또한 存立할수없다. 中道는 妄想에서 生成된 思量이다.
시심마 話頭를 제대로 들어보면, 本人이 見性했는지 못했는지 선명하게 알수있고, 보림에는 定한법이없는상태이고, 話頭는알고자하는 ? 인데 ,中道라는 先入見 思量을갖이고 어떻게 修行에 精進할수 있겠는가?
육조단경 에서,見性은 반드시, 눈밝은 禪 師의 점검을 받지않으면,外道에 떠러진다는
六祖大師의 경책을 想 起해야한다. yoong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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