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이 주는 넉넉함
쓸모없음이 주는 넉넉함
  • 변택주
  • 승인 2013.09.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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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36. 니시오카 츠네카츠
“박 대통령은 채동욱 감찰은 잘한 일…국정원 사건은 전 정권 일”이라 했다. “대통령과 담판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망하다는 게 제 판단”이라고 박근혜 대통령과 3자회담을 마치고 나온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한 말이란다.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원 선거 개입을 수사하는 사이에 불거진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식 소동, 감찰 사표제출 그리고 여야 대표와 대통령 3자 회담이 서로 처지확인으로만 끝났다. 불통, 세상이 어지럽고 뒤숭숭하다. 사이 이음, 어울림이 서툴기 때문이다.

▲ 니시오카 츠네카츠가 복원한 약사사 서탑

나무를 사지 말고 산을 사라

일본, 나라 이카루카 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건축물이 있다. 호류지法隆寺, 1993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1,3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스카 시대 건축물로 쇼토쿠 태자 초청을 받은 백제 장인들이 일본에 건너가 지은 절로 고구려 승녀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호류지 금당 십면 벽화는 1949년 1월 26일 일어난 큰 불로 대부분 불타고 말았다. 다행히 1300여년을 이어온 호류지는 건재하다. 대대로 호류지 목수로 일한 니시오카 가문이 없었더라면 호류지는 이어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니시오카 츠네카즈(1908~1995)는 대대로 호류지 목수였던 가문 출신으로 태어날 때부터 목수였고 그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목수였다.

니시오카 츠네카츠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 손을 잡고 호류지 곳곳을 둘러보곤 했다. 니시오카 츠네카츠는 새로 건물을 짓거나 고치다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때는 머뭇거리지 않고 호류지를 찾았다. 1300여년 앞서 지어지고 끊임없이 손질되어온 호류지는 살아있는 커다란 건축도감으로 앞날을 낳을 태반과 내일을 여는 영감이 나오기 있기 때문이다.

“나무에는 두 가지 생명이 있다. 하나는 나무가 지닌 자연생명으로서 나이(樹齡)고, 다른 하나는 나무가 베어져 목재로 쓰이고 난 뒤부터 버티는 나이(耐用年數)” 라고 말하는 니시오카 츠네카츠는 “천년된 나무라면 모름지기 천년은 버티도록 건물을 지어야 목수로써 나무에게 얼굴이 서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씀한다.

“재목은 나무를 사지 말고 산을 사라.”, “나무는 자란 방위 그대로 써라.”, “법당과 탑을 조립할 때 나무 성질을 살려 맞춰라.”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나무를 쓰는 방법이다. 자연 가르침대로 하라는 말씀이다.

나무 마음이라고 해도 좋을 나무질, 성깔은 나무가 자란 땅에 따라 다르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북쪽에는 가지가 적고 거꾸로 햇빛이 잘 드는 남쪽 가지는 크고 굵다. 나무가 자란 곳이 서풍이 많았던 곳이라면 남쪽 가지가 바람으로 맞아 밀려서 동쪽으로 틀어진다. 그러나 바람 때문에 억지로 동으로 틀어진 까닭에 어떻게든 본디 자리로 돌아가려고 한다. 모든 나무는 자란 터에 따라 이런 성깔을 가진다. 옛 사람들이 “나무를 사지 말고 산을 사라.”고 한 까닭은 직접 산에 가서 지질을 보고 나무 성깔을 살핀 다음 사야한다는 말이다. 제재된 나무를 보고는 나무 성질을 꿰뚫어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질을 살려 써라

‘동서남북, 방위 그대로 써라. 산마루나 산비탈 나무는 구조재構造材로 골짜기 나무는 조작재造作材로’ 산 중턱부터 산마루까지 나무를 구조재로 쓰라고 한 까닭은 햇빛을 많이 받고 튼튼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햇빛만 많이 받는 것은 아니라 비바람 눈보라도 맞았기에 목질이 단단하고 성깔이 있는 나무는 기둥이나 도리, 들보처럼 건물을 받쳐주는 골재로 써라. 한편 골짜기에는 물기도 많고 영양도 충분하고 햇빛도 바람도 그다지 강하지 않아 나무가 잘 자란다. 이렇게 유순한 곳에서 자란 나무는 성깔이 없는 만큼 힘도 모자라기 때문에 중방이나 천장, 화장판 따위 조작재로 쓰라고 옛 사람들은 일렀다고 니시오카 츠네카츠는 말씀한다.

건물을 세우는데 치수는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무 성깔을 맞추는 일이다. 왼쪽으로 비틀린 것을 풀려는 나무와 오른쪽으로 비틀린 것을 풀려는 나무를 엮어서 서로 성깔을 막아 집이 삐뚤어짐을 막아야 한다. 만약 이것을 모르고 오른쪽으로 비틀어진 나무만으로 기둥을 늘어세우면 집이 오른쪽으로 틀어져 버린다. “호류지 오층탑이나 금당을 헐어보고 내려오는 이야기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훌륭합니다.” 완벽한 나무 성깔 맞추기가 1300년이 지나도 건물이 삐뚤어지지 않게 막고 오중五重 처마 끝을 일직선으로 지켜준 셈이다. 그렇기에 왼쪽으로 휘었든 오른쪽으로 휘었든 또는 심하게 비뚤어지고 휘어졌다 해도 그것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쓸데를 찾지 못한 것일 뿐 대목수 니시오카 츠네카츠에게 몹쓸 나무란 없다.

▲ 니시오카 츠네카츠

어우렁더우렁

니시오카 츠네카츠가 호류지를 헐어 다시 세울 때 금당을 해체하면서 보니 서까래가 안쪽 목재가 한 20퍼센트 즘 넉넉하게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까래 끝은 비가 들이치는 까닭에 나무가 다른 곳보다 일찍 썩는다. 그랬기에 헐어서 고칠 때 쑥 앞으로 당겨 비에 썩은 만큼 잘라내면 되도록 했다. 서까래를 다 뜯어서 새로 바꾸려면 많은 시간과 돈, 노동력이 들어가기에 이를 헤아려 길게 만든 씨줄날줄을 아우른 슬기로움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한다면 쓸데없는 짓이라며 콧방귀를 뀌지 않았을까.

건축은 혼자서는 지을 수 없다. 많은 사람 힘을 모아야 한다. 힘을 모으는 일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 직인들도 나무처럼 성깔이 있다. 저마다 기질도 다르고, 솜씨도 다르다. 서툴고, 능숙하고, 빠르고, 늦고. 목수뿐 아니라 석수장이, 미장이, 기와장이처럼 여러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울려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이를 매끄럽게 하는 일은 대목수 몫이다. 그렇기에 대목수 품이 넉넉하고 너그럽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야 비로소 그 방향이 바르게 선다. 이처럼 집 짓는 일은 나무와 나무 사이, 사람과 나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우르는 일이다. 나무와 나무, 나무와 사람, 사람과 사람이 한데 어울려 어우렁더우렁 춤을 춰야 결고운 집이 지어지고 오래도록 따사로운 삶터로 자리 잡으리라.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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