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아픔, 침묵은 죽음
진실은 아픔, 침묵은 죽음
  • 변택주
  • 승인 2013.06.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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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21. 데즈먼드 투투
밀어내기로 사회문제를 일으켰던 남양유업, 고개 숙여 사과한다더니 새로 만든 대리점협의회가 남양유업 본사가 꾸민 ‘어용단체’임을 뒷받침하는 내부 문건을 검찰이 확보했단다. 그런가 하면 노예 계약으로 편의점 점주가 본사 직원 앞에서 수면유도제를 먹고 숨졌는데, BGF리테일은 지난 21일 일부 언론사에 고인이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보도 자료를, 위조한 사망 진단서와 함께 보냈다. 겉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면서 뒷구멍으로는 엉큼한 짓을 일삼는 갑을 관계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을까.

▲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나라가 인종별 삶터를 정해

17세기 중엽 백인 이주로 시작된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우월주의는, 1948년 네덜란드계 백인인 아프리카너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 단독정부가 들어선 뒤 굳어져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격리)를 낳았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다른 인종끼리 결혼을 법으로 막고, 인구등록법에 따라 백인, 컬러드인(흑백 혼혈), 인도인, 흑인으로 나누고, 집단지역법을 만들어 인종별로 삶터를 정해 강제로 이주시켰으며, 유권자 분리대표법을 두어 유색 인종 중앙정치참여를 막았다. 또 반투(Bantu)교육법을 실시 모든 흑인 아동 취학을 정부 통제 아래 둔 뒤 흑인 아동들에게는 고등교육을 시키지 않고 급식도 제한했다.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체제를 지키려고 잔혹 행위를 수도 없이 저질렀다. 국민 1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백인이 84퍼센트나 되는 얼굴색이 다른 사람들을 끔찍하게 짓밟은 이 일은 46년이나 이어지다가 1994년 4월 27일 남아공에 민주 선거가 치러지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막을 내렸다.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어 아파르트헤이트가 저지른 수많은 잔혹 행위들을 인정하고 가해자들에게 그 진상을 자세히 듣되, 처벌하기보다는 앙금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뜻을 두었다. 만델라 대통령은 남아공성공회대주교 데즈먼드 투투를 진실화해위원회 의장에 임명했다.

데즈먼드 투투(Desmond Mpilo Tutu 1931∼)는 1931년 남아공 트란스발 주州 클럭스도프 지역 광산촌에서 가난한 흑인 교육자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흑인차별남아공교육정책에 반대해 교직을 떠났다. 그 뒤 세인트피터스신학교를 나와 1961년 남아공화국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성공회신부로 서품되었다. 1976년 레소토 주교가 되고 인종정책에 비폭력투쟁으로 맞서는 흑인의식화운동기수가 되어 단지 살빛이 다르다는 까닭만으로 사람을 물건 다루듯이 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백인정부에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맞섰다. 1984년 인종차별을 평화롭게 풀려는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투투는 인종차별반대운동뿐만 아니라 에이즈, 결핵, 빈곤과 관련한 국제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1986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케이프타운 대주교가 된 투투는 신자가 160만 명이나 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수장이 됐으며, 2007년 간디 평화상을 받았다.

너와 나는 뗄 수 없는 사이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에 가담한 사람들을 일괄 사면하지 않았다. 사면을 바라는 사람은 따로 사면을 신청한 뒤에 엄중한 사면 조건에 맞는지 심사위원단 판단에 따라야 했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지난날은 사라지거나 얌전히 누워있기는커녕 당혹스럽고 끈질기게 돌아와 괴롭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진실화해위원회를 이끈 고갱이는 우분투 철학이다. ‘우분투’(Ubuntu)는 응구니족 말로 ‘사람됨’을 가리킨다. 상대를 도탑게 보듬어 부드럽게 보살피는 자비로운 사람을 일컫는 말로 제 몫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럿이 한데 묶여 나는 너와 뗄 수 없이 이어져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살가운 사이를 이룰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 나는 모두 가운데 하나로, 더불어 나누는 사람”이라는 우분투 정신에 따라 징벌과 복수를 하는 ‘응보 정의’가 아닌 불화 치유, 불균형 시정, 깨어진 관계를 되살리는 ‘회복 정의’를 내세웠다.

▲ 달라이라마와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은 아픔이지만 침묵은 죽음”이라면서 응어리를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털어놓자고 호소했다.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루카스 시크웨페레란 젊은이는 자기 이야기 털어놓고 나서 “제가 그토록 아팠던 까닭은 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곳에 와서 여러분 앞에 제 사연을 털어놓고 보니 마치 잃었던 시력을 되찾은 느낌입니다.”라고 말했다.

위원회가 진행되면서 위원들은 사람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보고 섬뜩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투투는 “우리 모두가 끔직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과 똑같은 영향을 받고 똑같이 세뇌를 당했어도 나는 절대 그들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래서 인권을 침해한 범죄자들을 판단할 때 보다 너그러운 이해심을 가져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사이비 화해, 사이비 치유만 따라
1988년 12월 인카타 자유당과 아프리카 민족회의 제휴 단체인 연합민주전선 갈등이 꼭짓점에 이르렀을 때, 연합민주전선 지지자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려 엉뚱하게 정치를 모르는 공동체 트러스트피드 농장을 지키던 여자와 아이들을 공격 쑥대밭을 만들게 한 경찰서장 브라이언 미첼은 사면청문회에서 공동체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1988년 이곳을 떠난 많은 분들이 이곳에 돌아와 정착하도록 허가받지 못했음을 이제 알았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와 그 땅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이언 미첼은 피해를 입힌 공동체를 도우려고 행동에 나섰다.

용서와 치유에 성공하려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털어놓아야 한다. 갈등을 애써 숨기고 불화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상처는 곪게 마련이다. 용서와 화해는 애써 진실에서 고개를 돌리고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다. 참된 화해는 끔찍한 진실을 드러낸다.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는 위험한 시도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해결할 때만 진정한 치유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이비 화해에는 사이비 치유만 뒤따른다. 용서하라는 말은 잊으라는 뜻이 아니다.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용서는 기억 언저리에 숨어 우리를 해칠지도 모를 독침을 빼내는 일이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앙갚음할 길을 포기한다는 뜻이지만, 복수할 기회를 내놓는 대신 치유를 얻는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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