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음악의 선구자
힐링 음악의 선구자
  • 사기순
  • 승인 2013.05.30 11: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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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기순의 <그의 삶 나의 거울> 10. 불자가수 김태곤
“안녕하세요. 김태곤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며 요가와 함께하는 김태곤 명상음악공연에 초대합니다. 5월 25일 토요일 오후 3시 30분 서울 3호선 전철 안국역 3번 지상 출구에 곧바로 붙어 있는 건물 3층 요가학원에서 하니 특별한 시간을 즐감하세요. 좋은 날 되세요.”

그의 문자를 받는 순간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의 겸손한 모습, 맑은 기운,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래 된 인연이다. 스쳐가는 인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와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 불연(佛緣) 덕분일 것이다.

‘제로 뮤직’에서 얻은 깨달음

‘싱어송라이터(작사 작곡을 겸한 가수), 대한민국 대표가수, 민속 가수, 퓨전 음악가, 뮤직 테라피 전도사, 힐링음악의 선구자, 가수 박사 1호(대구대 한의대 보건학 박사, 원광대 철학박사 수료 후 논문 준비 중), 연예인 국내 박사 1호’ 등등 그에겐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나는 그가 처음부터 수행자처럼 느껴졌다. 1990년도인가, 기자와 필자의 인연으로 처음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삶을 지켜보면서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음악으로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기 위해, 큰 원력을 갖고 환생한 수행자라는 생각이 더욱 다져졌다. 그런 그에게서 명상음악공연 초청을 받았으니 남다른 공연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고, 가슴이 저절로 따뜻해진 것이다.


김태곤의 힐링뮤직 콘서트

요가 학원 3층, 악기 같지 않은 악기들이 한 무더기 놓여 있을 뿐, 아무런 꾸밈도 없이, 요가학원의 평상시 모습 그대로의 상태에서 그야말로 소박한 ‘김태곤의 힐링뮤직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청중도 각양각색, 엄마 등에 업힌 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래서 다소 산만하고, 무대 정면에 보이는 현수막 글씨가 거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덧칠하지 않은 그 모습이 외려 신선했다. 마치 진리는 평상심에 있고 일상생활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콘서트가 시작되고, 그에게 홀린 듯 몰입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샘물이 솟아나오듯 흐르는 멘트,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에 매료되고, 바람 소리, 산새 소리, 파도 소리 등의 자연음에 빠졌다. 심금을 울리는 그의 힐링 뮤직, 지쳐 있던 몸에 기운이 충전되는 느낌이 신기했다. 주말 오후 나른한 피곤함에 몸이 무거웠는데, 갑자기 기운이 솟고 생생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이 에너지가 어디서 왔는가? 보이지 않는 파장이 출렁거리고, 그 파장의 영향을 받는다더니, 그의 파장, 그의 마음이 내게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었는가? 게다가 손은 자동 기술하듯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옮겨 적고 있었다.

“융복합시대에 바이오뮤직의 일환으로 제가 최초로 제로 뮤직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음악으로 비타민을 드십시오. B음은 비타민 B가 들어 있습니다. 음악에는 비밀이 들어 있어요.”

‘제로 뮤직’, ‘음악으로 비타민을 먹는다.’ 생소한 말을 들으면서도 분명한 것은 보이는 것만을 믿고 살아가는, 그래서 더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전해 주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참으로 고마웠다는 점이다. 수행자의 역할이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무한경쟁,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이 시대에 보이는 세계에 매몰되어 이리저리 생채기가 나고 고통 받는 영혼들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빛과 자비를 느끼게 하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수행자가 아니겠는가? 그는 분명 우리 시대의 올곧은 수행자다. 그의 음악은 청중의 마음을 열어주는 온전한 설법이었다.

제로뮤직은 보이지 않는 음악의 세계를 통해 진리를, 중도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세상 만물이 진리 아닌 것이 없듯 세상의 모든 음은 제로 뮤직이다. 바람소리, 물소리 등의 자연음도, 새소리, 그의 노래, 그의 말도 제로 뮤직이다.

산새들의 노래 소리, 부는 바람에 실려 오네. 하늘대는 갈대밭에 우우우우우우우
바람 따라서 구름 가네, 지는 해 따라 노을도 가네.(중략)
나는 누구와 함께 가려나 흩날리는 나의 외로운 영혼이여.

그의 노래와 배경의 자연음이 영혼을 일깨우고, “바람이 고요해 지고 숲은 평화의 장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집에서 직장으로 각자의 집으로 오직 줄타기만 했던 인생, 평화 공존 상생이 있는 숲, (중략) 남과 구별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보세요. 가면을 쓴 모습에서 순수한 모습으로, 긴장된 마음을 풀고 영혼을 찾아봅시다.”라는 그의 멘트가 순수를 되찾게 해 주는 듯하다. 기타 선율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음악이 치유의 공로자라는 것은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의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리를 관하여 중생의 고통을 보듬어주고 즐거움을 주는 보살이 바로 관세음이 아닌가?

힐링 음악과 요가의 만남, 영혼을 울리는 깨달음

잘 보일 거야, 그간 못 보던 그대의 모습 이제 맑은 호숫가에 눈을 떠봐요. 마음의 눈으로 봐요. 잊었던 그대 얼굴 감춰진 그대 영혼의 그림자, 귀 기울여 봐, 마음의 귀로 들어요. 여기 고요한 숲속에서 잘 들릴 거야, 마음의 귀로 들어온 내면의 소리, 신비한 세계로.
그대여, 무엇이 들리나요? 그대여, 무엇이 보이나요? 그대여, 무엇을 들었나요? 그대여, 무엇을 보았나요?

그의 노래는 마치 화두를 주고 제자의 수행을 점검하는 선지식의 말씀 같았다. 늘 말하고 들으면서도 실제로는 무엇을 듣고 보았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순간순간의 삶은 물론이고 영혼의 세계,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는 캄캄절벽이다. 잘 모르니까, 아니 삶에 지쳐서 영혼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진 채 삭막하게 그저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것이 현대인들로 하여금 공허하게 하고 외롭게 하고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지 모른다. 본인의 내면이 충만할 때 괴로움에 흔들리지 않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우울증 환자가 될 확률도 낮다. 불교에서 ‘참 나를 찾아라, 내면을 돌아보라, 수행하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출가 수행하지 않았어도 그러한 모습을 태생적으로 알고 있고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원력을 가진 본래 수행자임을 그의 노래(마음의 손 내밀어요. 그대의 깊은 영혼을 찾아봐. 손 내밀어 봐요. 마음의 손을 내밀어요)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보이지 않으나 파장으로 시공간을 충만케 하는 제로 뮤직이 흐르는 가운데, 보이는 요가. 그 둘의 조화가 감동적이다. 음악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 몸을 치유하고, 요가로 몸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 마음을 치유하는 절묘한 경지가 느껴진다. 음악과 요가를 통해서 정말 영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참선과 범패를 통해서 깨달음을 이루듯이.


소리의 미묘한 파장과 멘트에 감응

멘트와 노래와 배경 음향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무대,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가 대중들의 귓가에 손수 싱잉볼(singing bowl)을 쳐주고 다닌다. 텅 빈, 아니 대중들로 빼곡한 공간에 종소리와 싱잉볼 소리가 어우러진다. 소리의 미묘한 파장으로 감응이 온다. 그래서 그의 멘트가 더욱 가슴을 울렸는지 모른다. 단순한 멘트가 아니라 큰스님의 법문처럼 다가왔다.

“삶이란 참으로 덧없고 무상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바람처럼 물처럼 다 흘러가니 무상합니다. 모든 것은 다 변화하나니 내가 미워했던 마음도 변화하였는데 왜 지금까지 끌어안고 있을까? 내가 화냈던 일들도 이미 사라졌을 텐데 왜 아직도 가슴에 화병으로 남아 있을까? 좋았던 일은 금방 지나가기 쉬운데 왜 안 좋았던 일은 끝까지 붙들고 있을까? 찰나 같은 인생에서 나는 누구일까?

참 나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왜 우리는 용서하지 못하나 왜 우리는 숲처럼 어우러져 화해하며 살 수 없을까, 마음에 오점이 남으면, 님(임)이라는 글자에 점이 하나 붙으면 남이 됩니다. 짧은 인생에서 언제까지 남으로 살 것인가? 숲에서 걷다 보니 산이 나오네. 산에서 선을 닦네. 오래 집중하다 보니 점이 떨어져 나가고 산에서 신이라는 글자로 바뀌네. 신이 되진 못할망정 신선이라도 되고 싶어라. 바쁘고 힘들고 경황 없는 세상, 왜 이리 집중이 안 되고 정신이 없을까?”라고 하면서 촛불을 보며 하는 집중명상으로 이끌어준다. 이때, 그는 촛불의 의미에 대한 자상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

“신의 불을 손에 쥔 인류가 교만하지 않고 자연과 우주와 더불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불을 켜실 준비를 하고, 어두운 세상에 마음의 불을 켜리라 상상한 불을 켜주세요. 아름다운 촛불은 자기를 태우고 주위를 밝힙니다. 모처럼 오늘 우리는 모였습니다. 꽃송이가 모여 꽃다발을 만들듯이 삶이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삶이란 살아가야 할 신비이고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순간 다 내려놓고 용서하십시오. 용서 못할 자신도 용서하고 이완하여 영혼의 불빛을 따라가 보세요.
몸을 움직이며 굳었던 몸과 마음을 스트레칭해 보세요. 요가하시는 분과 함께 같은 파장으로 움직여 보세요. 이 우주는 흔들림이 있기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출렁이고 있습니다. 실타래로 직물을 짜듯이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앉아서 몸과 마음을 자발공(自發功)으로 움직이세요. 움직이지 않는 것은 마비요, 암으로 가는 첩경입니다.”

자발공을 시키는 그의 말에 따라 대중은 자유롭게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발공을 하면서 명상에 들어간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 굳었던 몸이 풀리고 마음이 풀린다. 요란했던 마음이 스러진다. 유전자에 내재된 태생적 고요가 머문다. 이어서 파도 소리 음향을 들려주고 바다와 닮아가는 바다 명상으로 이끈다. 그 가운데 태금의 선율과 함께 불러주는 ‘섬집 아기(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가 눈물겨울 정도로 감동적이다.

우리 시대 스승과 법회의 모델을 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아무리 효도한다 해도 모자라는 게 효도입니다. 삭막해지는 현대인들 어쩔 수 없이 불효하게 되고 싸우게 되고 흉폭해지고 인성과 감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가격을 따지는 숫자를 따지는 한눈에 보이는 가격 숫자보다 진정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가치가 중요한 것입니다. 양수와 음수 사이에 제로 뮤직을 통해 중도의 자리로 들어가겠습니다. 마음의 불을 밝혔습니까? 어머니에게 마음의 인사를 드리고 따뜻해졌지요. 무조건 내 편이 되는 어머니는 존귀한 분입니다. 태양 같은 분, 그분을 만나고 다녀오신 분은 마음이 가벼워지셨을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아는 곳 밝혀진 곳이 아닌 경계선에 있답니다. 그곳으로 태양의 언덕 저편으로 저와 함께 가보시겠습니다.”

그의 멘트는 법문 중에서도 명 법문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론 내가 정말 따뜻하고 존귀한 엄마인지 반성하게 되고, 또 한편으론 집에서 놀겠다는 아들을 어떻게든 데려와서 저 법문을 듣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태양의 언덕 저편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왜 나는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가 떠오르는 것일까? 태양의 언덕 저편이나, 니르바나의 언덕 저편이나, 피안의 세계나 표현만 다를 뿐 한 가지, 진정한 행복과 평화의 중도 자리 아닌가.

정말 얼굴 모습이 닮았던, 그래서 일설에 의하면 이복동생이라는 예수와 유다의 최후의 만찬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는 예수와 유다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한순간에 유다가 될 수도 있음을 환기시키며 남의 가슴에 비수를 긋지 말고, 남의 아픔을 덜어주고, 나누고 넉넉한 어리숙한 사람이 되자고 한다.

“자기 마음을 힐링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질을 고쳐야 합니다. 비우고 열려야 됩니다. 유다의 얼굴과 그리스도의 얼굴을 생각해 보세요. 태양의 소리를 들었지요. 이 소리는 중동의 모래 언덕에서도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태양의 소리나 지구 사바세계 이 우주는 프렉탈(fractal)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는 하나를 보면 전체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도 프렉탈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한 순간 삿된 마음을 가지면 물결의 파장처럼 오염됩니다. 깨어 있는 마음, 비우고 엽시다.”

그의 멘트, 그의 노랫말 속에는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녹아있고, 의상대사 <법성게>의 ‘일즉다 다즉일’의 진리가 담겨 있다. 그의 소리에는 세상 사람들의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를 위로하는 간곡한 마음이 실려 있다. 그의 뮤직 힐링 콘서트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법회는 이런 모습, 이런 스승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될 때 모든 중생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널리 확산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민족사 주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법륜>, <현대불교>, <불광> 편집부장, 불교시대사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엮은 책으로 『행복해지는 습관-정무 스님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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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3-06-01 10:14:42
대한민국 최초로 힐링음악을 연주했던분이 바로 김태곤씨라는건 두말할것도 없겠네요? 그래서인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최강동안의 외모를 유지하셨던이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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