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왜 짠가
살림이 기울어 갈 데가 없어진 시인 함민복은 어머니를 이모 댁으로 모셔다 드리러 가는 길. 어머니는 요기나 하고 가자면서 설렁탕집으로 잡아끌었다. 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고깃국 먹이려는 것임을 알아채고 뭉클한 마음을 가다듬는데, 설렁탕 국물을 뜨던 어머니가 주인을 불렀다. “국물이 짜니 조금 더 주시오.” 주인은 국물을 더 주었고 어머니는 주인이 보지 않는 사이, 함민복 뚝배기에 국물을 부어주었다. 모자를 곁눈질로 지켜본 주인은 넌지시 깍두기 한 접시를 식탁에 갖다놓는데, 시인은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함민복은 얼른 땀을 훔쳐내는 양 물수건으로 눈가를 씻어 내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물은 왜 짠가.”
고달팠던 시절 누구라도 겪었을 법한 사연.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난 함민복(1962~)
.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을 비롯한 시 몇 편을 발표 등단. 1990년 첫 시집 <우물氏의 一日>을 펴내고 1993년엔 <자본주의의 약속>도 냈지만, 달동네 친구 방을 떠도는 떠돌이 신세를 벗지 못했다.
일산 신도시가 들어서려고 옛 동네들이 철거할 때 일산 마두리에서 세 살던 함민복과 친구들은 보상을 받은 주인집들이 하나둘 빠져나가자 잠깐 빈집에 들어가 주인 흉내를 내봤다. 그러나 구멍가게조차 이사 가버린 동네에는 길도 끊기고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아 여럿이 모여 냉방에서 공동취사 공동취침을 했다. 너무 추워서 조그만 소금 항아리를 하나 주어다 불을 지펴 화로로 썼다. 오랜만에 따뜻한 방에 모여 잠을 자다 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뻔한 적이 있을 만큼 늘 가난에 시달렸던 시인 함민복.
강화도 마니산에 놀러갔다가 동막리에 보증금 없는 월세 10만 원짜리 폐가에 둥지를 틀었다. 강화도 생활 10년 만에 <말랑말랑한 힘>이란 시집을 내놓았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수천수만 년 밤낮으로/ ……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란 시다. 바닷물처럼 섬으로 떠밀려온 시인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강화도 개펄에서 캐 올린 펄떡이는 시어로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허접한 문명인들이 잊고 지낸 태고 신비를 되새김질해줬다.
내 삶은 늘 ‘딴전’일 뿐
이 가난한 시인은 이태 전 나이 오십에 늦장가를 들었다. 상대는 김포에서 열린 시 강좌에서 만난 동갑내기 제자. 주례를 맡은 소설가 김훈은 “오늘 결혼하는 함민복 시인은 고통, 고생, 가난, 외로움 속에서 반짝이는 사람 아름다움을 시로 드러내온 시인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 사람인지 스스로 잘 모르는 데 있다.”고 했다. 재미있게도 함민복은 결혼도 하기 전에 주례부터 선 적이 있다. 식장에 서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원고지를 넘기는데 장갑 낀 손에 원고지가 미끄러져 넘어가지 않아 쩔쩔 매며 후배에게 해줬던 주례사를 ‘부부’란 시로 다듬어냈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시인 부부는 결혼 전에 강화도에 인삼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정작 함민복 시인이 여섯 달 동안 가게를 보면서 인삼을 판 적이 딱 두 번뿐으로 총매출 7만 1천원이었다. 그래서 김훈은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례사를 마쳤다. 부인 박영숙 씨는 늦게 결혼하면서 왜 이렇게 ‘돈 없는 남자’를 골랐느냐는 물음에, “어휴…. 돈 많은 남자 만나고 싶었으면 이 나이까지 혼자 살았겠느냐? 삼시세끼 죽만 먹어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살고 싶어 기다렸다”고 했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까, 긴 상이 따로 있지 않아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긴 상이에요. 하다못해, TV 프로그램은 뭘 볼 것인가까지 조율해야 하잖아요.”라며 털어놓는 함민복. 함민복은 오래 전 자신을 착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지 않아서 선량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혼자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늦게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관계들이 생겼다. 누구 이모부가 됐고 좀 더 씨줄로 확산된 다른 사람 삶을 떠올리게 되더라는 함민복. 신작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은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세상을 살지 못한다는 뉘우침에서 온 고백록이다. 함민복은 자기 삶은 늘 ‘딴전’일 뿐 둘레 사람들과 씨줄로 어우러져 아픔을 함께 하는 실천이 모자랐다고 털어놓는다. 강화도 다리 건너면 초지인삼센터 안에 가면 늦깎이 부부가 운영하는 깨소금 같은 가게 ‘길상이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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