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집
까치집
  • 현각 스님
  • 승인 2013.05.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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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11.
아침 공양을 마치고 처소로 가는 길이다. 늘상 다니는 길이 대웅보전 앞을 지나서 쌍사자 석등 앞을 지나게 된다. 법당과 팔상전 사이에는 보리수 네 그루가 있다. 법당 앞 동서로 자리한 나무는 가지가 우람하다. 반면에 팔상전 뒤쪽 보리수의 경우 동쪽 나무는 큰 수술을 받은 양이 타다 남은 대초마냥 뭉뚝뭉뚝 잘려나간 자국이 선연하다. 서편 원통보전 가까이 있는 나무는 혼자 힘으로 지탱하기 어려워 큼지막한 장대 같은 버팀목에 의지해 있다.

보리수의 본래 이름은 아슈바타(aṡvattha)이다. 성스러운 무화과나무라는 뜻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존께서 이 나무아래서 도를 이루었으므로 보리수, 즉 깨달은 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도량은 온통 초파일 행사 준비에 바쁘다. 그러나 오늘의 일손은 시작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다. 행사 준비 못지않게 바쁜 녀석이 눈에 띈다. 다름 아닌 까치다. 동쪽에 있는 보리수 가지에 까치집이 하나 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다. 까치 한 마리가 자기 집 보수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나뭇가지를 물었다 놓았다를 연발하고 있다. 마치 아기 엄마가 떼를 쓰는 아이를 잘 궁굴리 듯 하고 있다. 그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묘안을 짜내고 있는 양이 연장을 들고 있는 여느 대목수의 몸짓과 흡사하였다.

너는 참 대단하다. 연장 하나 없이 그저 부리와 발만 가지고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다니. 사람들은 집 한 채를 지으려면 땅을 다지는 기초공사에서부터 온갖 연장이 필요하고 수십 수백 명의 일손이 필요하건만, 소리 소문 없이 일찍 일어나 보수공사를 하고 있구나. 혹시 너의 곤한 잠을 깨웠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 스님들의 아침 예불 소리에 번뜩 잠에서 깨어나 새벽 예불에 동참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너는 분명 내세를 기약할 만한 선근 종자를 확실하게 얻은 셈이다.

속리산은 문장대를 비롯하여 소소리 높은 산봉우리가 한 둘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깊은 계곡도 많다. 산새들의 안락처가 지천인데 까치는 인적이 빈번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단 말인가. 간혹 내세에 의심을 하는 인간의 모습과는 유별나게 대조를 이루고 있는 까치의 삶이 대견스러워진다.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노릇만 할 것이 아니라 다음 생에는 중생의 미혹함을 일깨우는 사자후를 토하리라 기대해 본다.

<전등록> '도림전'에 조과(鳥窠) 선사의 기이한 행적이 나온다. 선사는 진망산(秦望山)의 큰 소나무 위에서 살았다. 그 옆에 까치가 둥지를 틀고 있어 작소(鵲巢)화상으로도 불렀다.

선사가 나무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시인이자 정치가인 백낙천이 찾아 왔다. 선사의 덕망을 시험해 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스님, 나무위의 거처가 너무 위험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스님이 대답하길
“티끌 같은 세상 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는 자네가 더 위험하네.”
백낙천은 선사의 기개에 눌려, “스님, 제가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법문을 들려주십시오.”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 ⋯.”
굉장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실망하면서
“그거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알기야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일이지.”
이 말을 들은 백낙천은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

오늘은 종일 까치집이 등에 마냥 눈에 얼씬거린다. 저들의 주택공사에는 리베이트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또 하청에 하청을 주는 일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 세상과는 영 딴판이다. 인간 세상과 흡사한 일이 있었다면 부실공사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집이 무너지고 엄청난 추락사고도 이어졌을 법하다. 오작교도 무너져 견우와 직녀의 애절한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까치의 세계는 건축공법을 배우는 건축공학과도 없을 듯 하다. 그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이론 보다는 실전이 우선이고 실행이 최선일 뿐이다. 그 실행은 모방이 아닌 정직에 기초한 실행이다. 진실은 꽃잎 마냥 나부시 내려 앉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거친 나뭇가지를 잔입으로 물어 나르는 수고로움이 인간은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치 뭉우리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긴 세월을 지나며  풍진에 깎여지고 닳아진 모양 말이다.

오늘 아침에 부지런을 떨었던 까치집 수리가 옹골지게 여문 보리 마냥 행복이 꼭꼭 채워진 가정이 될 것이라고 믿어 본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장ㆍ동국역경원장. 법주사 선학대학원장. 1972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동국대 석ㆍ박사 과정 후 선학과 교수. 정각원장, 불교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선학회 초대 학회장, 美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선학의 이해』 『선어록산책』 『행복에 이르는 뗏목』 『날마다 좋은 날』 『최현각선학전집』(全11권)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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