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용필이 10년 만에 <바운스>라는 신곡을 들고 돌아왔다. 가왕의 귀환이라는 사실만으로 화제가 되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45년차가 가수가 음원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LP·카세트테이프·CD를 거쳐 디지털음악시대에도 조용필의 음악이 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음원 차트 제도가 시작된 2004년 이래로 60대 가수가 신곡으로 1위에 오른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조용필의 저력의 바탕은 무엇일까?
정재승은 《과학콘서트》라는 책에서 ‘프랙탈 음악’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음정의 변화폭이 클수록 한 곡에서 나오는 횟수는 점점 비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음악을 ‘1/f음악’이라고 부른다(f는 주파수를 뜻하는 frequecy의 약자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곡일수록 1/f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음악뿐 아니라 새들의 울음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심장 박동 소리 등 자연의 소리들도 대부분 1/f의 패턴을 가진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일련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음악이 대부분 1/f 음악인 이유가 바로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음악이 자연의 소리와 유사한 1/f 패턴일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프랙탈 음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간단하다. 사람의 귀는 음폭이 크지 않은 음악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이 선호하는 음악은 자연의 소리와 유사한 ‘1/f 패턴’을 취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노래는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익숙함이고 다른 하나는 낯섦이다. 너무 친숙해도, 너무 낯설어도 그 곡은 대중에게 외면을 받는 것이다.
필자는 조용필이야말로 익숙함과 낯섦을 잘 조화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조용필은 민요, 트로트, 소울, 팝, 디스코, 록, 프로그레시브록, 일렉트로닉 등 수많은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그의 음악은 한국적인 정서에 뿌리를 둔 채 다양한 장르의 서구 대중음악들을 가지로 뻗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유행하는 서구의 대중음악들이 조용필이라는 필터를 거쳐 한국화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대단히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이다. 조용필은 1969년 경동고 3학년을 자퇴하고 파주 용주골의 초라한 클럽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음악인의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는 60년대 서구의 록과 리듬앤드블루스에 경도돼 있었다. 1971년 동료 보컬리스트의 군 입대로 얼떨결에 보컬을 맡게 됐다.
1976년 트로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데뷔한 조용필은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대마초 흡연으로 말미암아 그는 3년간 활동정지를 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 조용필은 전통 민요와 판소리 ‘흥부가’의 구걸하는 대목을 익혔다는 사실이다. 조용필은 뼛속깊이 한국적 정서를 지닌 가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1980년 조용필 1집을 들고 대중 앞에 나타난다. 조용필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용필의 회고에 따르면, <창밖의 여자>가 과거와 기존 세대의 갈망을 대변한 노래라면, <단발머리>는 미래와 다음 세대의 갈망을 담으려고 한 노래라고 한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그는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유일무이한 한국가요의 가왕이 됐다. 그의 목소리는 팔색조로 비유될 만큼 다채롭다. 록음악 특유의 탁성을 내는가 하면, 민요 특유의 소리를 내기도 한다.
<고추잠자리>와 <여와 남>에서는 진성과 가성을 넘나든다. <허공>과 같은 트로트 곡을 부를 때는 자유자재로 목소리가 꺾인다. 조용필의 음악세계는 신구(新舊)의 문화를 조화시킨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반보(半步)를 앞서갔다는 사실이다.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불교는 반보 뒤쳐진 측면이 있다. 구시대에 지나치게 기댔던 것이다. 늦었지만 전통문화에 바탕을 두되 새로운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야말로 대기설법을 할 수 있는 불교계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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