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서서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료후보 대여섯 사람이 잇따라 낙마함에 따라 지난 3월 30일 청와대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인사검증강화를 약속했다. 되풀이되는 지도층 인사 도덕성 장벽 어떻게 넘어야 할까?
대통령궁은 노숙자 쉼터
중고차를 몰며 아내와 텃밭을 가꾸며 시골집에서 소박하게 사는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를 지켜보는 누리꾼 눈길은 경이로움으로 늘 설렌다. 대통령 월급 1만 2,000달러(우리 돈 1300만원) 가운데 90퍼센트를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상공인을 돕는 자선단체에 건네고, 나머지 돈만으로 삶을 꾸려간다. 동네 평범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직접 산 변기뚜껑을 들고, 동네아이들 축구를 응원하는 호세 무히카는 소탈한 여느 이웃집 할아버지 같다.
1935년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José Alberto Mujica Cordano는 1960대 쿠바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우루과이 좌파 무장게릴라운동 투파마로스에서 활약했다. 군사 정권 아래서 6번 총에 맞고 1972년 군사독재 정권에 체포돼 14년 옥살이를 하는 동안 2번 탈옥을 시도하며 파란만장한 젊은 날을 보내면서 지나친 물질주의가 삶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한다. 1985년 우루과이가 민주화되면서 석방된 무히카는 무장투쟁과 헤어지며 “협상과 대화가 내 도구”라고 했다.
1994년 하원의원을 거쳐 1999년 상원의원이 된 호세 무히카는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 좌파 계열 정당 연합체 광역 전선(Frente Amplio, FA) 지지를 받은 대통령 후보 타바레 바스케스가 승리를 거두는데 앞장서 바스케스 행정부에서 농목축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2008년 12월 광역 전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호세 무히카는 중도 우파 계열 국민당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와 격돌해 1차 투표에서 득표율 47.96퍼센트를 기록하고, 2차 투표에서 52.6퍼센트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대선 유세 때 “이념은 몰락했고 폭넓게 생각하는 힘 있는 좌파가 떠오르고 있다”고 외친 무히카는 롤 모델로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을 꼽았다.
발전은 최소한 필요한 삶 나눔
옥살이가 통찰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무히카는 사람들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내가 전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작 가난한 사람들은 사치스런 삶을 살면서도 더 많은 욕망을 채우느라 급급한 사람들이다. 가진 재산이 많지 않으면 재산을 지키려고 노예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신에게 쓸 시간이 더 많아진다. 내가 정신 나간 늙은이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유로운 선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에겐 행복이 가장 소중하기에 발전이란 아이를 키우고, 관계를 이루며 사람답게 사는데 최소한 필요한 삶을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목청높이는 호세 무히카.
2012년 6월에 열린 브라질 리오20+정상회의에서 환경을 위하는 까닭이 사람 행복에 있음을 떠올려야한다. 온 인류가 부유한 나라 사람들과 똑같이 자원을 헤프게 쓴다면 어찌 되겠는가? 지구별 자원은 오늘날 부유한 나라 사람들이 보이는 낭비 행태를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할 만큼 넉넉하지 않은데, 모든 나라가 앞 다퉈 소비만 늘리려고 하고 있다면서 모든 사람에게 근검절약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소비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대통령이 대규모 경호원 없이 승용차를 운전할 수 있는 안전한 나라로 꼽히고, 다른 중남미 나라에 견줘 부패와 빈부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로 알려진 우루과이 사람들은 정치 노선 차이에 따라 대통령 선호 찬반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청렴성을 얘기할 때는 누구라도 선뜻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퇴임 뒤에도 지금처럼 살겠다고 말하는 무히카 대통령은 혼자 검소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다 돕지 못한다면서 온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앞으로 인사청문회에 나설 지도층 인사들이 지난날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며 움켜쥐었던 재산을 사회에 돌리고 나서 청문회에 나서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