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6중주는 ‘일즉다 다즉일’ 연상
영화 속 6중주는 ‘일즉다 다즉일’ 연상
  • 유응오
  • 승인 2013.03.26 09: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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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유응오의 ‘culture club’-5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한 한 소견
6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연기(緣起)
손미의 메시지 통해 자비(慈悲)사상 강조
영화 속 6중주는 ‘일즉다 다즉일’ 연상시켜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극단에 서 있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역사상 가장 야심찬 기획의 영화”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반면, 시사주간지 <타임>은 “대학 시절 마약 기운에 취해 주절주절 떠들어대던 고답적이고 뜬구름 잡는 말들”에 지나지 않다고 혹평했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논란적인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논란의 핵심은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구성에 관한 것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1849년부터 2346년까지 500여 년 동안 펼쳐지는 여섯 개의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교차로 진행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1894년 흑인 노예와 우정을 맺은 뒤 노예제에 맞서게 되는 백인 사업가 이야기, 1931년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라는 환상적인 곡을 작곡하는 동성애자 작곡가 이야기, 1973년 핵발전소의 기밀을 폭로하려고 죽음도 불사한 여기자 이야기, 2012년 감금당한 요양원에서 탈출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출판인 이야기, 2144년의 네오 서울에서 장혜주라는 반란군을 만나 혁명가가 된 클론 손미의 이야기, 디스토피아의 하와이에서 신문명의 여성과 만나 사랑을 나누는 사내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보니 미스터리, 로맨스, 스릴러, 코미디, SF, 판타지 등 그 장르도 장르 하이브리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채롭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흡사 모자이크 기법의 회화처럼 각기 다른 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영화의 주연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연령과 성별을 바꿔가면서 등장한다. 여섯 개의 이야기 조각을 하나로 엮어내는 솜씨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고 할 만큼 빼어나지만, 사건들이 교차 편집되다 보니 완결된 서사의 기승전결은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퍼즐게임의 즐거움을 제외하고 나면 산만한 이미지의 파편들만 뇌리에 남게 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관객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섯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관통하는 이음매의 뼈대가 약하기 때문이다. 구성상 1894년의 남태평양, 2144년의 네오 서울, 2346년의 하와이 이야기가 그나마 유기적인 결속력을 가질 뿐 나머지 세 개의 이야기는 구심점으로 유인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각각의 이야기가 장르들조차 다르다 보니 주제를 읽는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영화의 서사적 유기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배우들이다. 가령, 톰행크스는 1894년 돈에 눈이 먼 비열한 의사, 1931년 수전노 호텔 매니저, 1973년 음모를 고발하는 핵발전소 연구원, 2012년 다혈질 삼류 소설가, 2144년 영화 속 배우, 2321년 황폐화된 지구 외딴섬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여 혹자들은 “아마도 두 번은 안 통할 엄청나게 비싼 깜짝쇼”라고 혹평을 가하고 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구성의 이면에 들어 있는 주제의식을 봐야 한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감독들이 이런 구성을 취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해 연결돼 있으며, 그 삶의 양태는 반복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즉,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주제는 연기(聯騎)사상과 윤회설(輪回說)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배우들이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것도, 영화 속 인물들이 데자뷰(기시감)을 경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이 영화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존재하는 것이란 곧 지각되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조지 바클리가 한 말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 받아들여져야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누구도 혼자 인간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에서 사랑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고,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사랑이란 나르시시즘적인 자아를 버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런 사랑은 종의 한계를 초월해서도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예술이 그런 사랑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 받아들여져야만 가능하다. 누구도 혼자 인간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말은 영화에서 클론 소녀에서 혁명가로 발전하는 손미의 대사와 유사하기도 하다. 손미의 대사는 갈대다발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 붓다의 초전법륜 즉 연기설법과 일치한다. (영화 속에서 죽어서 여신이 된 손미의 메시지가 담긴 장소를 연꽃 형상으로 설정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최고 미덕은 그 주제가 연기사상에서 자비사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에 결코 무릎 꿇지 않고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간다. 누구는 흑인과의 우정을 통해서 노예제에 반대하게 되고, 누구는 인류와의 사랑을 통해서 클론임에도 혁명가가 되고, 누구는 마음 속 연인을 그리면서 ‘클라우드 아릍라스 6중주’를 작곡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관계 속에서 사랑(혹은 자비)을 마음에 발아(發芽)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그 사이에 놓인 마음의 벽을 허무는 순간,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삶과 관계에 대한 관습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전화를 들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결합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티야말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인 것 같다. 물론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 세계를 어떤 틀로 분리하려는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그런 목소리에 따르다보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통제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반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견이지만, 여섯 개의 이야기 중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1931년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을 작곡하는 동성애자 작곡가 이야기였다. 동성애자의 이야기여서 인지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톰 티크 베어가 직접 작곡했다는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의 선율도 아름다웠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몽환적인 선율의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에 여섯 개의 이야기가 모두 녹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의상대사의 법성게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처럼.

워쇼스키 남매의 《매트릭스》가 흥행에 성공한 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한문화)》라는 책이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서구 철학자들이 《매트릭스》를 다양한 철학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후 한 비구니 출신의 저자가 《매트릭스》를 불교사상에 입각해 푼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禪)》을 출간하기도 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불교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인만큼 불교지성들이 앞장서서 전문적인 영화평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관학, 유식학, 화엄학 등 불교사상에 입각한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불교 철학하기》 같은 책이 나왔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자유기고가이자 작가. 충남 부여 출생.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주간불교>와 <불교투데이> 편집장을 지냈다. 200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당선했고,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서 당선해 등단했다. 주요 저서로는 『10.27법난의 진실(화남출판사)』, 『이번 생은 망했다(샘터)』, 『벽안출가(샘터)』, 『불교, 영화와 만나다(조계종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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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hokgn@gmail.com 2013-07-09 23: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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